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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Dec 14. 2023

고려대학교에 가다.

실패 속에서도 열매는 존재한다.

쏟아지는 불빛, 많은 차들이 줄지어 늘어선 도로.

금요일.

이 말만으로도 러시 아워의 그림이 상상된다.

그렇다. 그 그림의 중심에 우리 가족이 끼여있다.

같은 20km를 가도 우리 동네에서는 20분이면 가지만

서울은 40~50분이 걸린다.

막혀도 너무 막힌다.

하지만 오늘은 이 막힌 길을 뚫고 우리는 서울로 가야만 했다.


토요일.

고대하던 가을이의 SWAI아카데미 오프캠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달 넘게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아왔다.

다행스럽게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온 덕에 오프캠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가을이는 나름 무척이나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또한 지방에 사는 우리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SKY 중 한 곳인 고려대학교를 구경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떠나기 전까지 참여하는 게 맞는지 많은 고민이 되었다.

가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보상이니 당연히 참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쓸 때 없는 걱정이 산을 이루었다.

연락을 받고 문의해 보니 4학년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교육원 쪽에서도 5~6학년 인지를 고려해 만든 프로그램이라 4학년은 많이 어려워할 거라고

말씀을 하셨고 해커톤이다 보니 아이들을 강도 높게 몰아붙일 거라고 하셨다.

콘텐츠도 가을이는 해커톤에 필요한 파이썬은 접해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가기 3일 전 파이썬 기초 1,2를 사전 수행 권장이라는 공지가 떴기 때문에

공부해 볼 시간도 너무나 부족했다.


준비도 안된 상태에 가서 너무 기가 죽어 오는 게 아닐까?

아직 시작도 제대로 못해본 새싹인데 자기는 그럴 그릇이 아니라고 지레 겁을 먹진 않을지.

꼬리에 꼬리를 잇는 걱정 덩어리들을 싸안고 친구에게 상의를 했다.

친구는 미리 가을이에게 많이 어려울 것임을 말해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4학년은 참가만으로도 잘한 일이라는 격려와 함께  결정은 가을이에게 하게 하라고

나의 마음을 다독였다.

친구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받으니 한 결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래 현재상황을 가을이에게 설명하고  최종 결정은 직접 하게 하자.

그리고 가을이에게 나의 마음을 전했다.

내 걱정이 무안할 정도로 가을이는 선뜻 가겠다고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그 자리에 가을이가 가야 할 운명이라면 그 뜻이 있겠지라며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로 가는 여정에 기꺼이 우리의 시간을 반납했다.


그다음 날

오전 9시에 입장해서 오전에는 강의를 듣고 12시 30분부터 5시까지 해커톤이 진행되었다.

가을이를 기다리며 우리는 중간에 뛰쳐나오지 않으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의 우려와 달리 가을이는 5시 30분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걸어 나오며

"나는 여기 올 실력이 안되나 봐, 한 문제도 못 풀었어"라고 툴툴되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괜찮아 수고했어 많이들 포기할 거라고 교육원에서도 말했었어.

형 누나들  사이에서 고생했어."

라고 위로했지만 가을이는 자존심이 많이 상한 눈치였다.



우수상 5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은 한 문제를 맞힌 아이들, 최우수상은 3문제를 풀어냈다고 한다.

프로그래밍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주제를 주고 알고리즘 문제해결을 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으면서도 그 안에서 보고 느끼는 게 더 컸으리라 생각한다.

시작해 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들 한다.

내 걱정에 보내지 않았으면 가을이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고 있을 거다.

하지만 가을이는 스스로 한 발자국, 더 넓은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형 누나들 사이에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이는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세계가 훨씬 복잡하고 넓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며 가을이가 한 마디 한다.

"공부는 싫지만 고려대학교는 가고 싶어."

양심은 좀 없지만 가을이는 조금 더 넓은 꿈의 무대를 꿈꾼 게 됐다.

일단은 한 주 더 남은 수업을 마무리하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에필로그

동생 단풍이는 서울구경에 신이났다.

시골쥐가 서울구경을 하는거 마냥 두리번 거리며

하는 말들이 우리를 웃게 했다.

"서울은 한국말 써?"

고려대학교를 둘러보며

"우와 무슨 학교가 이렇게 커?"

시골쥐는 그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보고

대학로에서 과학관을 즐기며 탕후루를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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