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동심 지키기.
"엄마, 산타 할아버지 몇 밤 자면 와?"
1학년인 단풍이가 매일 물어보는 질문이다.
집 나간 서방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러할까.
단풍이는 하루하루 손가락을 꼽으며 산타할아버지가 어서 오길 오매불망 기다린다.
그런 순수한 마음을 보면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가도 별안간 얇아지는 내 지갑을 보면
그 동심의 선을 싹둑 잘라내버리고 싶은 거친 마음이 올라온다.
'매년 돈은 내가 지불하고 생색은 왜 산타 할아버지 몫인 거야'
산타 할아버지의 신뢰와 인기는 매년 리즈 갱신되고 있는 현실과
크리스마스 선물조차 안주는 매정한 엄마 아빠는 올해도 아이들이 보낼
아유의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 심보가 뒤틀린다.
어느 날.
단풍이가 산타 할아버지 얘기를 매일 해대니
현실을 제법 아는 4학년인 가을이가 한 마디 던진다.
"산타 할아버지 없어, 엄마 아빠가 사다가 몰래 주는 거야."
"아니거든 산타 할아버지 있거든, 나 어린이집 다닐 때 산타 할아버지 직접 만나서
선물도 받았거든."
서로 있다 없다 설왕설래.
끝날 기미가 안보이자 내가 한 마디 덧붙인다.
"산타 할아버지를 믿으면 있는 거고, 안 믿으면 없는 거야. 그만해
믿는 사람은 트리에 받고 싶은 선물 써서 붙여보자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해 주시지."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순간이동하는 한 인간을 보았다.
"제가 받고 싶은 선물은 레고 우주 왕복선입니다."
방금 산타 할아버지 없다고 싸우던 애 어디 있니?
현실은 없다고 믿지만 선물은 받고 싶은 4학년 가을이는 올해도 그렇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실 거라는 거짓을 믿기로 자신과 타협했다.
아이들이 써 붙여 놓은 쪽지를 보며
귀엽다는 마음은 잠시 저 아래쪽으로 눌러두고
현실 본능이 올라온다.
검색본능.
가을이 우주 왕복선 최저가 20만 원
단풍이 큐브콘돌 최저가 10만 원
'이런 양심 없는 어린이들'
최대한 애써 모른 척
"너무 비싼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 선물 못해주셔,
올해 경기가 얼마나 안 좋니? 불경기에 그 많은 아이들 선물해 주시는데
너희만 비싼 선물이 가능하겠니?"
"아니야 산타 할아버지는 큐브 콘돌 선물해 주실 거야."
1학년 어린이는 그 어떤 말로도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
"어휴"
그렇게 그 후폭풍으로 나는 아이들의 동심의 값으로 올해도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선물을 마련했다.
물론 우리 집도 경기가 좋지 않기에
내 선에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골랐다.
단풍이의 큐브 콘돌은 최저가 6만 원 선에서
가을이는 좋아하는 레고 대신 덜 좋아하지만, 좋아는 하는 프라모델 2만 원선으로.
올해도 이렇게 아이들의 동심 지키기는 성공했다.
크리스마스 날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면
선물을 준비하면서 뒤틀렸던 나의 거친 생각도 한순간에 날아갈 것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부모들이 25일 아침, 잠깐의 그 무해한 표정을 보기 위해
동심의 값으로 지갑을 여는 게 아닐까?
아이들의 환한 미소는 부모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일 테니까.
그 미소를 잊지 못하기에 매년 산타할아버지의 환상을 지켜내려 하는 부모님들에게
응원의 말을 보태고 싶다.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 속에 잠시나마 시름은 내려두시고
나 자신에게도 작은 선물을 해보세요. 작은 여유라도 좋아요.
많이 웃으시고 많이 사랑하세요.
스스로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