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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초딩, 요리 에세이에 빠지다.

요리 에세이의 폐해.

by 주다

먹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겁고 재밌다는 먹깨비가 있다.

이 소스, 저 소스에 따라 맛을 비교해 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레시피를 물어보는

먹을 것에 진심이 아이.

그가 요리 에세이에 빠져 한 달째 같을 책을 번갈아 들여다본다.

내가 물었다.

"그 책들만 반복해서 읽는 이유가 뭐야?"

"요리를 만드는 상황 하고, 레시피가 재미있어."

"아 그렇구나."

엄마는 이해 못 할 그만의 철학.

책 한 권 읽고 나면 끝인 나와, 마지막장을 덮음과 동시에 다시 앞장으로 가서

반복독서를 하는 꼬마 독서가를 평생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가을이가 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월 초.

배지영 작가님의 강의를 듣고 작가님의 아들이 쓰신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를 선물로 받았다.

그 책을 보고 가을이는 자신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소방서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소방관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주인공을 가을이는 재밌어했다.

식당에서 재료를 손질해 요리를 하는 장면들과, 세세히 나오는 레시피들이 가을이의 흥미를 돋우는 거 같았다.

그 책들을 탐닉하며 가을이는 작가가 더욱 궁금해졌나 보다.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을 그려낸 <소년의 레시피>도 읽어 보고 싶다며 도서관 대출을 요청했다.

그리고 소년의 레시피를 읽어보며 주인공의 요리세계로 빠져들었다.

주인공이 만든 음식들을 보여주며 엄마에게도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도 집에서 돈가스 수제로 만들어 줄 수 있어?"

"음, 만들 수는 있지만 기름으로 튀겨내야 해서 기름 냄새 장난 아닐 텐데 돈가스 집에서 먹는 게 더 맛있지 않을까?"

"그럼 내 생일 때 집에서 직접 만들어줘 알겠지?"

생일은 10월인데 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아이를 보며 약간의 죄책감이 밀려왔다.

게으름을 이겨보며 애써 몸을 움직여 본다.

'그래 방학 때 여유도 많은데 한 번 만들어 주지 뭐.'


그리하여 때아닌 수제 돈가스 만들기에 돌입한 나.

요리를 하며 요 똥들은 레시피 읽기에 한 참 시간을 기울인다.

느릿느릿 레시피를 정독하고 정육점에서 등심을 구입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계란을 풀어 넓적한 그릇에 담아주고, 밀가루, 빵가루를 준비해 등심에

옷을 입히듯 빈틈없이 입혀준다.( 밀가루-계란물-빵가루순으로)

옷을 입힌 등심에 이제 화려한 액세서리를 장착해 줄 시간.

액세서리의 적당하면서 우아한 색을 만들기 위해 기름의 온도가 중요하다.

빵가루를 떨어뜨려 바로 떠오르면 준비가 됐다는 신호.

등심을 넣으니 귀를 간질이는 청량한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언제 빼야 하지? 레시피를 봐도 몇 분 튀기라는 이야기는 없다.

두께에 따라 적당히 튀기라고만 되어 있을 뿐.

요똥이에게 제일 곤란한 문제.

색깔을 보며 타는 냄새가 나는 거 같아 얼른 돈가스를 건져낸다.

그래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걸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며 결과물을 가을이에게 내민다.

돈가스를 받아 든 가을이는 흐뭇한 미소로 돈가스를 자른다.

하하, 하지만 안이 덜 익었다.

'미안하다, 아들.'

"잠깐만 이리 줘 볼래."

돈가스를 잘라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안까지 익혀주는 걸로 이 사태를 해결해 본다.

잘라먹는 재미는 없지만 버터향이 나는 돈가스를 가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먹기 시작한다.

요리가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당분간은 튀기는 요리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가을이는 여전히 두 책을 번갈아 가며 책을 서치 한다.

내가 보기에 다음엔 엄마에게 어떤 음식을 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거 같다.

요리에세이 책에 빠진 아들 덕분에 엄마는 때 아닌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낄낄 웃어대며 한 마디 거든다.

"아들이 해달라는 건 그래도 다 해주네, 내가 해달라고 하면 어림도 없는데."

당연한 소리를 하는 남편에게 미소로 화답한다.

"안 그래도 저 책들을 그만 읽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야. 당신은 알아서 사 먹어."


저 책들의 주인공은 본인이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걸로 행복을 느꼈던 거 같은데.

'아, 너는 다른 시점으로 저 책들을 보고 있어구나.'

요리를 하는 시점이 아닌 먹는 시점으로

반복 독서가에게 요리에세이 책에서 벗어나게 해 줄 책들을 서치 하는 걸로 기나긴 2월을 마무리 해본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감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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