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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A Oct 27. 2022

입사 4개월인데 제가 다 책임지고 진행하라고요?

MZ세대의 사회생활 부적응기 -5

능력보다 중요한 건 '대표님 눈에 잘 보이기'

그날 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조그마한 스타트업이었던 회사는, 무엇보다 대표 눈에 잘 뜨이는 것이 능력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매일 오픈형 사무실에 같이 앉아 사원들을 지켜보던 대표님이 가장 많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이거였다.

XX 씨, 이거 왜 이렇게 했어?

사원들의 모든 결과물을 보고, 자신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사원을 불러서 이걸 왜 이렇게 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거 왜 이렇게 했어?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도, 결국 결론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다시 해오라. 이것이었다.

출장이 잦은 직업인 회사에 단 하나 있는 법인 카드를 자주 사용했는데, 법인 카드는 쓸 데마다 대표의 폰으로 얼마를 썼는지 알람이 갔다. 가끔은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썼냐며 출장 가서 먹은 점심 비용마저 나무라기도 했다. 허구한 날 지방을 왔다 갔다 하며 불려 나가던 나는, 점심조차 대표의 눈치를 보면서 적은 비용을 쓰려고 애를 쓰며 싼 가격을 찾아다녔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을 때는 사비로 식대를 지출하거나 그랬다. 그럴 거면 법인 카드는 왜 주는 건지. 내가 직원이 아니라 그저 회사를 위한 '돈 버는 기계' 같이 느껴진 거는 그때부터였다.

그 회사 대표님은 회사 매출을 위해, 계약 하나하나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지만 직원이 쓰는 사소한 돈 또한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다.


입사 4개월인데 제가 다 책임지고 진행하라고요?

입사 4개월 차. 안 하면 눈치 보이는 야근과 시도 때도 없는 외부 출장으로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시키면 안 시키는 대로. 사원 대부분이 입사한 지 1년 미만 주니어였다. 제대로 된 사수도 없이 일단 맡으면 어떻게든 해내면서 부딪히고 깨지며 배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앞으로 프로젝트 하나가 떨어졌다. 모 대기업과의 계약건. 그중에 하나를 나 혼자 담당해서 하라는 주문이었다. 네? 이걸 제가요? 어리둥절하면서 이걸 저 혼자 하냐고 물었지만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정 씨, 일 잘하잖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회사에 들어와서 혼자서 담당해본 프로젝트도 없는데. 갑자기 이걸 담당하고 혼자 하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심지어 컨펌해 줄 사수도 없다. 고객사 소통도 나 혼자. 기획부터 아웃풋까지 혼자 내야 했다. 아주 속이 답답해진다. 이걸 어떻게 혼자 하냐고. 난... 입사 4개월 차인데.


그래도 어떡해. 하긴 해야지.

그때부터 시작된 야근의 야근. 더블 야근은 더불어 주말출근까지. 대기업 담당자였던 고객사는 까다로웠다. 기획단계부터 문장 하나하나 태클 걸며 자신의 의견을 반영해주길 바랐다. 나는 머리를 싸맸고, 그 와중에 대표는 예산을 많이 쓴다며 태클을 걸었다. 하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고객사 담당자는 한밤중에도, 주말에도, 연차를 냈어도, 카톡으로 시도 때도 없이 피드백을 던지며 수정을 요구했다.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는 고객사와 예산을 많이 쓰지 말라는 대표. 그 사이에 등이 터져나갔다.

사실 이건 애초에 내가 담당할 수 없는 그릇이었다. 주니어가 혼자 담당하기엔, 큰 볼륨의 프로젝트인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주니어인 나한테 던져놓고 해내길 바랬다. 그 사이에 갈려나가는 나에게는 아무런 보호가 없었다. 그저 나만 괴롭고, 나만 힘든 구조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퇴근하면서 눈물이 났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버텨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힘들다. 정말... 힘들었다.


      

직장인 특징 : 지하철에서 노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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