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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A Nov 01. 2022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방송국 생활기

MZ세대의 사회생활 부적응기 -8 


열정으로 살아남는 곳

사실 이제 와서 결론만 말해보자면, 방송국 생활은 최악이 아니었다. 사실 의외로 재밌기도 했다. 처음 다녔던 회사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젊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굴러가는 곳. 건물에 꺼지지 않는 불. 24시간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같이 고생하면서 돈독해지는 팀 사람들. 이런 것들이 좋았다. 저번 회사를 관두고 약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던 나에게 무언가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열정을 다시 끓어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말해서, 동시에 열정이 없으면 도무지 버틸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열정, 열정, 열정... 그곳을 이거 말고 다른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열정 없이는 이틀을 밤새며 일하지 못하고, 열정 없이는 전국 각지를 쏘아다니지 못하고. 열정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일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내 속에 있는 열정을 꺼내기도 하고, 없는 열정을 억지로 꺼내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살아남아라 방송국 생활

나는 그곳에서 작은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나마 할 수 있었던 편집 기숙 덕택에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조연출은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피디 밑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보조하는 일이다. 말이 보조지, 사실 하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고 볼 수 있다. 일을 하고 나서 깨달은 점이, 방송을 만든다는 거... 사실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분문율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편씩 나가는 방송 스케줄에 무조건, 무조건 맞춰야 한다. 어떠한 사정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시간에 완성된 방송이 나가야 한다. 이게 사람을 꽤나 미치게 만들었다. 주말에도 못 쉬는 거는 당연. 새벽 3시, 4시가 넘는 건 당연지사. 그냥 밤을 새우고 거기서 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편 나가는 방송이라는 게, 이렇게 해야만 나갈 수가 있었다. 그게 너무너무 당연했다. 단언하건대 세상에 방송국이 생기고 나서,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이런 식으로 나갔을 게 분명하다.

누군가는 꼭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해야만 하는 스케줄. 그게 너무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었다.


이거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곳이 맞아요?

그래도 나도 열심히 했다. 그 열정 속에 있는 게 좋기도 했고. 또 하다 보니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쏟아지는 일거리. 밤을 새워서 해야 하는 편집. 각종 잡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막내 포지션. 그런 것들도 다 좋았다. 다만 견디지 못하는 건. 며칠 밤을 새우고 또 새고.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자, 무너져내리는 나의 체력이었다.

그때의 나의 스케줄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읊자면 대충 이렇게 됐다.


일요일 : 입고
월요일 : 예고편 편집
화요일~목요일 : 가편집(자막, 효과음을 입히기 전 컷 편집 상태) -> 1차 시사-> 수정-> 2차 시사 (무한반복...)
금요일 : 자막 쓰기, 종편실 넘기기
토요일 : 최종 시사

시사란? 관계자들이 다 같이 모여서 방영될 회차를 보면서 리뷰를 남기는 일이다


방송국마다 세부 스케줄은 다르지만 대부분 비슷한 루틴으로 돌아갈 것이다. 저 스케줄이 어긋나거나 마감기한을 맞추지 못한다면? 방송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영상편집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몇십 분 분량을 편집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심지어 조금 스케일이 큰 예능이라면 카메라가 몇십대... 그 nn대 존재하는 화면을 눈이 뚫어져라 전부 훑어보고, 재미있게 편집을 해야 하는 일이 정말 고됐다.

그렇게 매일 새벽 5시가 넘어서 돌아가거나, 차라리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돌아가는 일이 밥 먹듯이 잦아지다 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했던 몸에서 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피곤하고요 쉬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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