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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Aug 08. 2018

무주산골영화제

수수하지만 굉장해!  무주에서 펼쳐지는 작지만 알찬 낭만

무주산골영화제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수수하지만, 알찬. 완벽하지 않지만 완전한
그리고 무엇보다 색다르게 따스했던 무주에서의 순간 3곳을 뽑아봤다.






무주,

처음 이 지역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전라도일까 경상도일까? 일단 서울에서 남쪽은 맞겠지? 였다.  무주'산골'영화제이니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오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주는 첫 질문과 같이 전라북도에 위치한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2-3시간이면 금세 도착한다. 그렇게 도착한 무주는 작은 '마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영화제의 로고처럼 둥근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넓은 듯 좁은 강이 흐르는 곳이다.


무주에 처음 도착을 하면 무주에 하나밖에 없는 작은 버스터미널에 내리는데, 서울에서 같이 버스를 타고 가는 승객 대부분이 영화제를 찾은 게스트분들이다. 그래서인지 출발 전부터 버스 기사님께서 승객 숫자를 통해 영화제의 흥행의 점치시기도 한다. 무주에 도착해서도 이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진다. 첫 식사로 어죽을 먹으러 갔을 때에서 옆, 뒤 테이블에서 영화제 관객들을 만났고, 이어서 들어간 카페에서도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타 영화제와 같이 상영관 근처 관객들로 붐비며 영화제 분위기를 뿜어내진 않는다. 영화제 기간 중에도 마을 전체는 유난히 조용한 느낌이다. 다만, 마치 마을에 일원이 되어 마을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이 이곳저곳에서 귀를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영화제 관객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영화제마다 순간의 깊은 느낌을 남긴 영화관을 다루고 있다. 전주에서는 전주 돔을 주제로 다뤘는데, 무주에서는 등나무 운동장, 덕유산 국립공원, 그리고 무주예체문화관 세 곳을 다루려 한다. 세 곳 모두 독특한 매력을 가진 상영관이다. 멀티플렉스에서의 영화상영이 너무나 익숙하고, 이제는 대부분의 영화제에서도 멀티플렉스를 대여하여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무주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없다.



 등나무 운동장

등나무 운동장 관람석과 관람석에서 보이는 영화제 현장

등나무 운동장은 무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가면, 도대체 건축물이 어디 있다는 거야? 할 수 있다. 건축물이라고 하기에는 드넓은 운동장과 그 운동장을 감싸고 있는 초록색, 노란색 물결의 관람석 그리고 그위를 휘감고 있는 등나무만 있기 때문이다.


등나무 운동장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동장이자 고 정기용 건축가의 작품이기도 하다. 등나무 운동장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이다. 관람석 위의 등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초록색, 노란색의 의자를 반짝이게 하는 순간, 모두들 카메라를 들어 빈 의자를 찰칵찰칵 찍고 있다. 초여름에 개막하는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볼 수 없지만, 등나무와 햇빛, 의자의 조합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등나무 꽃이 피는 철 등나무 운동장의 아름다움은 극에 달한다.


무주 산골영화제에서 등나무운동장의 개폐막식 장소로 사용되며, 영화제 기간 중에는 운동장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토크 콘서트와 같은 소소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올해에는 영화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을 만든 김종관 감독의 토크 스테이지가 열렸고, 영화 <용순>과 <리덜리스>의 코멘터리 상영이 있었다. 더불어 올해에는 빈백에 누워 책을 읽거나 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등나무 운동장에서 뽑은 순간은 2번이다.

처음 등나무 운동장에 도착에 짐을 맡기고 햇빛에 반짝이는 의자에 앉았을 때. 관람석은 계단식으로 꽤 높은 곳까지 의자가 설치되어있다. 높은 곳에 앉아 나무 그늘 아래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멀리 분주한 영화제 현장을 바라보는 느낌이 잊히지 않는다. 나의 주위는 고요하게 바람소리까지 들리지만, 그 사이사이 멀리 자원활동가의 목소리와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든다. 초여름 날씨에 등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따스했다. 시원한 바람까지 솔솔 불어오니 무주산골영화제가 낭만을 외치는 이유를 절실히 느꼈다. 누구라고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여유를 선물했다.


두 번 째는 영화제가 폐막한 뒤 운동장에 앉아 폐막후 자리를 정리하는 스텝과 자원활동가 분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폐막식 이후까지 이어지는 영화를 보고 나오니 이미 폐막후 자리를 거의 정리한 상태였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시간이 남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조용히 등나무 운동장에 앉아 쉬고 있었다. 운동장 정리를 거의 마친 자원활동가 분들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영화제 홍보영상을 찍는 모습은 홀린 듯 30여분 조용히 바라보았다. 등나무 운동장 관람석의 장점은 광활하고 넓어 앉아있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일행과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몇몇 관객들이 그렇게 앉아 그들을 보고 있었다. 30분 간의 웃음소리와 장난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짧은 폐막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무주 예체문화관

예체문화관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예체문화관의 상영관은 영화관이 갖춰야 할 설비라고는 스크린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상영관 크기에 맞지 않아 좌석 선택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관내 강당 무대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그 앞에는 파라솔 의자가 깔려있다. 계단 식으로 이어지는 뒤편에는 기존의 강당 좌석을 그대로 이용한다. 화룡정점은 ㄷ자로 둘러싸고 있는 2층 좌석이다. 2층 좌석에는 고등학교 강당에서 보던 빨갛고 파랗고 하얀 리본이 줄줄이 달려있다.


대체 빛 차단은 어떻게 하는 거지? 하는 순간 영화가 시작한다.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빛 차단은 없다. 저 멀리 문밖을 나가는 관객의 얼굴까지 확인할 수 있다.


무주산골영화제 상영작은 대부분 기 개봉작이거나, 타 영화제 기 상영작이다. 즉, 프리미어거나 영화의 작품성을 확인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좋은 평을 받은 영화들이 선정되어 상영된다. 덕분에 4일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모든 작품이 단 1회 상영이 되어 작품 수가 많고 전 일정을 짜임새 있기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축제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나, 저예산, 다양성 영화들로 포진되어있어 영화팬들의 여름휴가로 선택받고 있다.


이렇게 무주 산골영화제의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예체문화관과 같이 영화관의 기본 설비가 갖춰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변명을 하고 싶어서이다. 대부분 작품성을 따지기보다 좋은 영화를 휴가차 놀러와 친구,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관객들이 많다. 나 역시도 영화제 분위기에 휩쓸려 그렇게, 영화가 아닌 영화를 보는 시간을 즐겼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영화 <홈>을 보고 있을 때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가족 대여섯 명이 영화관에 들어왔다.


<홈>의 초반 스토리는 두 형제의 이야기이다. 형은 엄마의 전 남편의 아이, 그리고 동생은 유부남 남자친구 사이에서의 아들이다. 곧 엄마는 유부남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함께 차에 탔다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작품은 형과 동생의 거취 문제를 다루며 새로운 가족의 형성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다룬다. 귀여운 아역배우들의 연기와 새로운 가족 간의 사랑이 느껴지는 가벼운듯 생각이 깊어지는 주제를 다루는 따뜻한 영화였다.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에 들어오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볼 것도 없다' 외치시며 가족들을 부르며 나가고 계셨다. 뒤따라 가족들이 눈치를 살피며 할아버지를 이끌고 자리를 떴다. 영화 <홈>의 배경은 부산으로 모든 등장인물이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그 사이로 잠시 거친 전라도 사투리가 스쳐 지나가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관객석 사이로 따스한 미소들이 연이어 터졌다. 마치 그 순간은 관객들이 만드는 <홈>의 한 장면이었다.  작품에 나오는 형제의 구슬픈 사연을 향해 날리는 웃음이 담긴 위로 같았다랄까. 그 특별히 슬픈 사연도 아니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실제로 무주산골영화제의 여러 상영관에서는 생각지 못한 영화 내용에 놀란 어르신들이나 아이들 부모분들이 영화 상영 중간 탈주하시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해가지고 어둠이 깔리면 이제 덕유산 국립공원 야외상영장의 시간이다.

개막식날과 폐막실 날을 제외하고 3일간 저녁 8시 반이 지나면 덕유산 국립공원 야외상영관에서 3개의 작품이 이어서 상영된다. 상영이 모두 끝나면 새벽 1시간 넘는 시간이다. 덕유산 국립공원까지는 영화제 셔틀이 영화 시작과 종료 시점에 맞추어 펜션이 모여있는 덕유산 입구까지 운행한다. 입구에서도 시내까지 셔틀이 운영돼 마음 놓고 쏟아져 내리는 별을 보며 영화를 관람하면 된다.


상영작품 역시 야외 언덕에 누워 보기 좋은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러빙 빈센트>,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같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시청각적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작품들과 더불어 필름 상영도 이뤄진다. 저자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35mm 상영을 관람했는데, 영화 상영 내내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실제 영화 중간 필름을 가는 순간도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볼 수 있다.

덕유산 국립공원 23-24일 양일 상영작품 스틸컷


덕유산 국립공원 상영관은 낮은 언덕 앞에 스크린이 설치되어있다. 관객들은 저마다 돗자리를 들고 언덕에 앉거나 누워 영화를 감상한다. 앞서 말한 필름 상영기는 작은 트럭에 실려 언덕 중간 자리하는데, 영화처럼 영사기사님이 빛을 내뿜으며 큰 원형 필름을 들고 나타난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영화제를 찾아 야외상영을 갈 분이 있다면, 경량 패딩을 챙기시라고 알려드리고 싶다. 저자 역시 춥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요와 후드 집업을 챙겨갔지만 3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고지대로 땅에도 습기가 차니 돗자리와 담요는 모두 두툼한 것으로. 있다면 경량 패딩이 필수템이다.
상영관 근처에서는 간식거리나 음료를 팔지 않으니, 셔틀을 타기 전 소소한 간식거리를 챙겨가는 걸 추천한다. 물론! 자연보호와 다음 관객을 위해 쓰레기는 챙겨 오고 음식물과 음료를 잔디에 버리지 말기를 부탁한다.


덕유산 국립공원 상영관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작은 영사기 트럭에서 그림같이 필름을 돌리고 필름을 가는 모습응 마주 했을 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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