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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Oct 10. 2018

나는 너와 나를 마중 간다

영화 <5일의 마중>이 대답하지 못한 질문



역사는 가족을 강제로 무너뜨리고, 다시 선심 쓰듯 가족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개인은 사랑의 힘으로 시대가 부숴버린 가족을 재탄생시킨다. 그러나 절대로 사랑만으로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해피엔딩인 듯 새드엔딩인 듯 애매하다.









2014년에 개봉한 <5일의 마중>은 장예모와 공리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중국의 90년대 영화를 이끈 이 세대들은 이번에도, 그들의 청년시대를 회상하듯 문화 대혁명을 들고 왔다. 5세대 감독들은 문화 대혁명 말기에 10대를 보내고 개혁개방시기 청년기를 보낸 격변의 세대이다. 이들은 역사가, 시대의 흐름이 개인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서술하는데 집중한다. 특히 혁명 말기, 혁명의 정당성에 갇혀 현실의 고난이 극에 달했을 때를 주로 그린다.


<5일의 마중> 또한 같은 결을 가진 영화다. 영화는 문화대혁명이 개인의 평범한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단 2일의 모습으로 그린다. 공리가 연기한 주인공 펑완위는 딸 단단과 둘이 살고 있다. 남편이자 아빠인 루옌스는 딸이 태어나자마자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고 반동분자로 몰려 10년 넘게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가 노역장을 탈출했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그녀의 집에는 감시가 붙는다. 그리고 그날 밤 루옌스는 감시가 붙어있는 아내의 집에 몰래 찾아오지만 펑완위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에 루옌스는 펑완위에게 다음날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쪽지를 남기고 떠나는데, 때마침 같은 날 아버지의 이력 때문에 연극에서 억울하게 원하던 주연 배역을 놓치게 딸 단단이 이를 고발한다.


다음날 기차역을 찾은 펑완위와 기다리던 루옌스가 만나려고 할 때, 루옌스를 잡으러 온 공안들이 이들을 폭력적으로 갈라서게 한다. 그리고 루옌스는 다시 끌려가고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날의 충격으로 펑완위는 돌아온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단은 발레를 그만두고 집에서 쫓겨나 있다. 영화는 루 옌스가 펑완위와 단단 그리고 그 간의 사이를 회복하고 문혁 이전 꿈꿨던 모습의 가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어떻게 다시 가족이란 형태를 구현해 나가는가, 이는 자연스레 시대의 폭력으로 과거에 갇혀버린 ‘동지’와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애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루옌스가 선택한 방법은 감싸 안기였다. 펑완위는 끝까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펑완위는 그가 돌아오기 전 그녀에게 보낸 편지만을 기억하며, 매달 5일에 그를 마중 나간다. 계속되는 그녀의 삶 속에서, 루옌스만이 과거에 남아 기차역, 그날에 머물러있다. 그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자신을 끝내 용서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 옆에서 루 옌스는 짐꾼, 피아노 수리공, 편지 읽어주는 이웃 등 그녀가 필요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게 하려 하지만, 끝내 그녀는 과거에 머문다. 그리고 그런 그녀 옆에서 루옌스는 그저 주변에 머물며 함께한다. 과거에 상처에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하는 방법으로 영화가 제시하는 답은 '함께 나아갈 수 없다'로 보이기도, '이 것마저 나아가는 방식'이다 라고 말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시대가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런 그들과 함께 변화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은 무엇이 최선일까. 끝내 영화의 마지막까지 기차역으로 루옌스를 마중 나가는 펑완위의 모습은, 미래로 나아가기보다 그대로 과거에 갇혀버린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 옆의 루옌스 역시 그가 돌아오는 그날 그 시간에 갇혀 매일 그녀와 자신을 마중 간다. 








영화는 분명 절절한 로맨스물이지만, 끝내 기억에 남은 건 ‘고민’이다.

영화 <박하사탕>이 생각났다. 

영화 <박하사탕> 

2000년 1월 1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새로는 천년이 시작하는 날을 기념해 과거에 역사를 다룬다. 그리고 청산되지 않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피해자로 남겨진 사람, 김영호를 그린다. 김영화는 얄궂을 만큼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굴곡을 모두 거친 남자이다. 사진을 좋아하던 청년 김영호는 군인으로 광주사태에 참여했고 이후 고문경찰이 되며 변해버린 사람이다. 영화는 다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그가 철로에 올라 죽음을 택하는 이유로 시대의 폭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던 김영호가 서 있던 곳은 철로였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 세 시점에서 영화는 미래를 다루지 않는다. 철로 위의 김영호는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상처를 없애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안되기에 철로에서 현재를 그만두는 죽음을 선택했다. 












역사는 끊임없이 개인이라는 피해자를 만든다. 개인의 삶이 역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5일의 마중>과 <박하사탕> 두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개인이라는 역사 흐름 속에 상처를 입은 피해자이다. 그리고 이 둘은 그 시절에 갇혀 미래로 나아가길 포기했다. 한 사람은 절망과 희망 사이의 하루를 살고, 한 사람은 살기를 포기한다. 


<5일의 마중>은 절절한 로맨스 물이다. 공리가 연기한 펑완위가 보여주는 사랑은 마음을 울린다. 그녀는 시종일관 덤덤하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루옌스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대해 말할 때만큼은 깊은 사랑을 눈으로 행동으로 스치듯 드러나는 기쁜 표정으로 보여준다. 그 작은 표현들이 평소의 무덤덤한 모습과 대비되며 깊이 마음을 울린다. 루옌스 또한, 아내와 딸을 향한 희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자신을 고발한 딸을 용서하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 곁을 묵묵히 지킨다. 그런 그의 희생이 결국 조금은 다른 모양이지만 다시, 가족이란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끝에, 하나의 고민만이 남았다. 과거에 남겨진 사람, 역사의 피해자와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저 옆에 머무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까. 고민만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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