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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 navorski Mar 11. 2018

작은 좌석에 남기는 슬픔

극장을 찾아 슬픔을 털어내는 눈물을 흘리는 시간에 대하여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은 영화를 보는 시간을 넘어 그날의 날씨, 공간의 분위기, 함께 간 사람, 그리고 그날에 내가 영화에 남는 경험이다. 개인적이지만 사소한 영화관에서의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이 경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영화관을 찾아본 '그 영화'에 남은 그날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내 모두 영화 한 편에 소중하게 남아있길 바라며, 그리고 글을 읽으며 그 기억을 추억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몇 편의 영화와 그 날을 연재를 해보려 한다.


힘든 시기였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힘든 시기였지만,

그 당시에는 스스로가 힘든지 조차 모르던 그런 날들이었다. 


유난히 영화관에 가면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는 영화를 고른 이유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많이 울었다. 

남들이 울 때도 울고, 울지 않을 때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슬픈 영화들을 골라서 봤다. 스스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관에서 흐르는 눈물이 영화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현실에 눈물이 나서였지만 그렇게 변명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영화관에서라도 마음 놓고 울 수 있으니까.


함부로 밖에서 울면 안 된다고 배우며 자랐다. 누가 가르친 게 아니라 혼자서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다. 

고3 시절 대입 준비로 힘이 들 때도 자습시간 홀로 운동장을 돌며 울었다. 누가 오면 눈물이 뚝 그쳤다. 그리고 혼자가 되면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친한 친구들 조차 내가 눈물짓는 시기를 보냈다는 걸 모를 정도로 남들 앞에서 울지 않았다.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왔던 이유는, 그 시기가 지나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깨달았다. 위로받고 싶지만 위로받을 용기가 없어서였다. 누군가의 앞에서 울게 되면, 우는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왜 힘든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전에 내가 힘들다는 걸 인정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비겁하고 용기가 없는 나에게 영화관은 울기 좋은 곳이었다. 내가 힘들다는 걸 인정할 필요도, 우는 이유를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는 영화 때문에 울었을 뿐이니까. 감정을 모두 게워내고 간단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시기였다. 영화관을 유난히 자주 찾아 취향도 아닌 슬픈 영화를 골라봤던 건. 

<땐뽀걸즈>를 보러 갈 때도 스스로 울 것을 예상했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휴지를 한 움큼 챙겨 들어갔으니. 

분명히 울거라 생각했다. 나에게 슬플 것이라. 



아니나 다를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오프닝 시퀀스부터 눈물이 터졌다. 글을 쓰는 지금 조차도 왜 자신이 힘들었는지 명확하지 않아 그 장면이 왜 그리 슬펐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말 너무 슬펐다. 

오프닝 시퀀스는 목표를 이뤄 꿈꿔왔던 무대에 화려하게 서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 과정으로 넘어간다. 

<땐뽀걸즈>는 KBS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영화판 개봉 직전 이미 방송분으로 편집되어 방영이 되었다. 그리고 상상마당의 투자 배급으로 영화화되어 재편집 과정을 거쳤고 기존의 방송용이라는 부분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청춘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다. 실제 관람을 해본다면 다큐보다 극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관이 굉장히 적었다. 배급을 담당한 상상마당에서 꽤 오랜 시간 스크린을 가지고 있어, 다행히 관람할 수 있었다. 상상마당은 기존의 멀티플렉스 상영관보다 작고 의자 간격이 넓으며 사람이 적다. <땐뽀걸즈>를 보러 갈 때에도 개봉 후 시간이 꽤 지난 탓도 있지만 100석 정도의 상영관에 10명 정도의 관객 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 편히 울어버렸다. 그리고 그때 같이 훌쩍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다들 같은 마음일까 잠시 상념에 빠졌다. 20대 여성 관객이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의 배경은 여고의 방과 후 활동인 댄스스포츠 반의 이야기이다. 다들 무엇을 떠올리며 울었을까. 나는 그 순간 함께 소리 죽여 훌쩍이며, 모두가 땐뽀반의 친구가 되었다 느꼈다.  작은 상영관은 교실이 되었고 모두가 고등학교 시절 화려하지만 초라했던 그날로 돌아갔다.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릴 때면 작은 좌석이 나의 전부가 되었다. 내 감정도 내 울음소리도 그 좌석을 벗어나면 안 될 거라 생각했다. 충분했지만 가끔은 부족했다.  <땐뽀걸즈>를 봤던 상상마당의 상영관은 나에게 더 넓은 공간과 연대의 친구들을 선물했다. 영화관의 불이 켜지자 모두 모래알처럼 흩어져 나갔지만, 분명 상영시간 내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마음 놓고 함께 울었고 함께 즐거워했고 행복했다. 작은 좌석에 갇혀 울었던 나는 좌석을 넘어 내 울음소리를 내보냈다. 의도하지 않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던 울타리를 무너뜨렸다. 


서울시내에 남은 멀티플렉스가 아닌 극장은 많지 않다. 

상상마당을 비롯하여 대한극장, 광화문 시네큐브 등이 남아있다. 

특히 오늘 언급한 상상마당의 경우 제작과 배급을 겸하고 있어 상영일정이 길다. 멀티플렉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하루일 틀 상영 후 밀려난 영화들이 1년 내내 상영되기도 하고, <라라 랜드>와 같은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자주 보고 싶은 영화는 1년 내내 상영되기도 한다. 상영관은 멀티플레스 상영관에 비해 한없이 작은 스크린이지만, 위에 언급한 대로 작지만 좌석 간격이 넓다. 사람이 많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를 위해 부러 그곳을 찾은 사람이 많아 색다른 영화 관람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땐뽀걸즈> 역시 적은 상영관과 홍보에도 부러 그 영화를 보러 시간을 내 상영관을 찾은 사람들로 적지만 가득 찬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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