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역사>, 그리고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
<개의 역사>란 영화는 우리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답이 없는 숙제와 같다.
동네의 항상 보이는 ‘백구’의 이야기인 줄 알아 속아서 들어갔더니 ‘역사’를 다루는 영화였다. 영화 제목의 백구는 영화가 다루는 많은 이들의 역사 중 하나인 동시에 이들을 대표한다. 동네의 백구는 동네를 오가는 계단 옆으로 보이는 건물의 옥상에 살고 있다. 돌보는 주인이 가끔 와서 밥을 주고 갈 뿐 동네의 누구도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백구가 오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백구의 역사처럼 많은 개인의 역사가 순서 없이 나열된다. 이사를 반복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자신, 젊었을 적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늙은 여인, 고등학교 시절 퇴임하신 미술교사, 동네 정자에 매일 나오는 노인 분들 중 한 명⋯. 길지 않은 상영시간 내내 일일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개인의 역사(사연)들이 지나친다. 하지만, 관람이 끝나면 영화를 수놓았던 수많은 개개인의 역사는 몇몇 백구와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점차 기억에서 흐려진다.
서사가 뚜렷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임이 분명했다. 의도가 읽히지 않는 화면들이 무수히 많이 들어가 있었다. 흐름에 맞지 않는 인물의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백구와 인물들을 넘어 동네와 촛불시위 현장으로 보이는 대한민국의 역사까지 영화 안에 흩트려져 있다. 사실 흐름이 무엇인지 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영화 전체의 서사에 따르기보다 튀어나오는 작고 사소하며 잊혀가는 역사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서사를 찾다가, 이게 뭐지? 하는 순간 문득 서사 진행이 뚜렷한 영화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감독의 의도를 찾으려 하고 이야기 속 '떡밥'을 회수하길 기대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영화보기에 익숙했던 나를 말이다. <개의 역사> 이러한 기존의 영화보다 훨씬 불편하다. 영화보기에서 객체에 머물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을 즐기던 나에게 영화를 보는 객체이면서 영화의 서사를 만드는 주체가 될 것을 강요한다.
한동안 묵혀두었던 실력을 발휘해볼 즐거운 경험을 주는 영화이다. 어지럽게 이어지는 인물과 이야기들을 내 경험을 토대로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다. 이젠 감독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의 끝에 눈물이 났다. 흐트러진 조각들이 내게 준 의미는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개(백구)의 역사처럼, 나에게만 중요한 남에게는 옥상에 방치된 개 '백구'의 역사와 다름없는 우리의 개인의 역사를 돌아본다. 감독의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퇴임식날 자신을 뭉클하게 한 학생회장의 축하사를 간직하고 싶어 직접 학생의 집에 전화를 걸어 부탁한다. 십여 년이 지난 후, 그 학생회장은 모교에 들려 미술 선생님이 걸어뒀던 그림을 보며 그 일을 떠올린다. 전화를 받고 드리기로 한 뒤 까맣게 까먹고 전달해 드리지 못했던 십여 년 전의 일을. 수십 년의 교직생활을 퇴임을 앞둔 선생님에겐 자신의 교직생활은 어떤 역사보다 소중했다. 때문에, 이를 축하하는 학생이 읽어 내려간 문장은 소중한 역사의 한편에 같이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30대의 어른이 되어버린 학생회장에게 그 역사를 아우르는 문장들은 십여 년 후 학교를 방문해서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 스치듯 지나치는 기억일 뿐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어쩌다 방문한 학교에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다. 어쩌면 이처럼 나의 소중한 역사가 출처를 알 수 없는 백구의 역사처럼, 잊히고, 가볍게 사라질 것 같았다.
<개의 역사>는 출장차 방문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람을 했다. 하루종일 일에치여 이곳저곳을 다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고, 아쉬운 마음에 찾은 티켓발매소에서 얼마없는 마지막 회차의 영화들 중 '백구'의 모습에 끌려 그 이유 하나로 선택을 했다. 마지막 회차 영화로 늦은 시간에 진행되며, 또, 다큐멘터리 영화 특성상 상영관엔 참 사람이 적었다. 늦은 저녁, 오전부터 시끌벅적 했던 전주영화거리와는 사뭇 다른 영화관 분위기였다. 다큐멘터리영화를 보러온 사람들은 모두 뚜렷한 제각기의 이유가 있는 듯 보였다.
짧은 GV시간은 쏟아지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영화관의 공기가 얼어붙을 만큼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난 질문과 대답을 따라가느라 정신조차 차릴 수 없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영화 막바지에 짧게 삽입된 촛불시위 장면의 의도와 의미를 묻는 질문이다. 김보람 감독의 답변은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넣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질문자는 만족하지 못했고, 대신 모더레이터가 추가 답변을 해주셨다. 나의 역사가 잊히고 가볍게 사라질 것만 같다는 슬픔에 빠져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 듯 몇몇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을 떠올렸다. 영화에 끝에 갑자기 등장하는 촛불시위 장면, 남산 근처의 높은 동네에서 계단에 앉아 폭죽놀이를 구경하는 동네의 사람들. 외국에 간 친구와의 전화통화.... . 시간상의 순서도. 이야기의 흐름에도 알 수 없던 조각난 파편 장면들. 사실 너무 많아 모든게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크고작은 역사의 이미지를 파편처럼 서사내에 흩뜨려놓았다. GV가 끝날 때까지 그 장면들을 생각했다.
그날 늦은밤, 생각에 가득 차 영화관에서 나왔다. 북적이는 거리로 나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자꾸만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한 그 관객의 질문과 떠오르는 파편같은 장면들의 의미를 생각해보려 애썼다. 결국 그날 뜬구름 잡는 생각들만 반복하다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한해가 지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촛불시위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새로운 대통령의 발언에 뉴스마다 촛불 시위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나는 다시 이 영화를 떠올린다. 역사가 되어버린 그때의 시간과 공간, 그 이미지, 그 속에 있던 나를. 그 안에 있던 천만명의 역사는 어떠할까 고민한다. 천만명의 역사가 만들어낸 국가의 역사는 잊히지 않지만, 천만명 개개인의 역사는 어쩌면, 언젠가 잊힐지 모른다.
<개의 역사>는 기존 영화와 달리 길고 긴 시간이 주어진 정답이 없는 자유주제 숙제 같다. 학창 시절 답이 정해진 객관식 문제와 달리, 답이 없는 글짓기, 그림 그리기 문제가 주어지는 날이면, 숙제를 하면서 내내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뭘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 어떤 숙제보다 오래 고민하고 자리 앉아 긴 시간 힘들어했지만,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정말이지 어렵지만 흥미롭고 즐거운 숙제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