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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Nov 17. 2023

미움도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거다

눈이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얗다. 엄마가 거실에서 내 방까지 한달음에 달려오신다. 눈 소식을 알려주셨다. 올해 보는 첫눈이다. 첫눈은 꼭 너랑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맘이 어지간하다.


눈이란 걸 떠올릴 경우 연상되는 기억은 이번 연도 구월 중순쯤 퇴사한 회사에서 사원들이 모두 나와 제설 작업을 하던 장면이다. 삼삼오오 모여 얼어붙은 눈덩이를 깨부수고 퍼올리고 함께 코너로 내달리던 광경이 귀여웠다. 뒤집어쓴 패딩 모자 위로 소복이 쌓인 흰 눈들. 두꺼운 옷을 입어 움직임이 둔한. 마치 장난감 병정들 같았다. 팀원들과는 눈싸움도 했었다. 날아온 눈덩이가 볼 옆을 스쳐 생채기가 날 뻔한 아슬한 상황에서도 크게 웃었다. 함박눈 따라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함박웃음이었다.


베란다 너머 눈발이 더욱 굵어졌다. 일순간 반짝였던 눈빛도 잠시, 그새 잠잠해졌다. 추억여행은 머릿속에서만 가능하다. 영영 그럴 거란 걸 안다. 네게 눈이 온다는 사실을 알린다. 들뜬 척한다. 척을 하다 보면 그게 곧 자신이 될 거란 글귀를 어디선가 접했다. 사람이 미워질 적에도 아닌 척을 했다. 상실을 하였을 적에도 마찬가지로 아닌 척 다른 것들로 서둘러 채우려 급급했다.


나는 내가 슬퍼할 마음의 공간을 비워두지 않으려 했다. 본인은 본인이 만들었단 판단을 아끼지 않았다. 너그러워서는 안되는 노릇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 새기겠단 결심은 아직 지키지 못했다. 늘 이런 면에선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겁이 많은 건 오히려 좋은 거라 했다. 그만큼 대비할 수 있다고. 난 내가 겁대가리 상실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막 저지르고 막 수습하려다가 말고 그냥저냥 속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해결되지 않는 걱정에 걱정을 밀어 넣으며 구겨지고 싶지 않다. 한데 반듯해지려 할수록 점점 더 구깃 해지는 건 어떤 식으로 뒤바꾸어야 할지 의문이다.


누구한테든 미운 감정이 들면 얼렁뚱땅 지워버리려 한다. 미워해 봤자 좋을 게 없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도 사랑이라더라. 누군가를 덧대어 사랑할 여력은 없다. 현재 내 사랑은 하나여도 충분하니 덧붙여 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으련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일어나는 미워하는 감정에 혼란이 올 때가 있다. 사랑한다면 이런 것까지 받아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싶어 우왕좌왕하는 거다.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미워지는 경우가 있고 미워하다가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사랑하다가 미워했으며 결국엔 다시 사랑하게 되다가 진짜 끝으론 미움이 남는 경우도 있다. 미움이 앞으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고. 미움이 발생하는 시기는 예측불가이다. 난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워지려 한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사정을 어림해 보려 한다.


사람마다 다름이 있다. 다름은 맞춰가면 된다. 맞출 의향이 없다면 안 보면 된다. 인생에서 무시하기 버튼을 누르고 살면 된다. 어떻게 보면 사는 건 참 심플하다. 심플한데 심플하지 않은 생각들로 인해 배배 꼬이며 어려워진다. 엉킨 실타래는 좀처럼 풀리지를 않는다. 다름이 닮음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 적이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랑이지 않나 싶다. 인정하는 순간도 닮음이나 다름없다. 인정하겠단 것은 받아들이겠단 거니 말이다.


그간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던 까닭은 미움에서 끝이 날까 봐,였던 거 같다. 다시 사랑으로 만회하거나 어떠한 반전도 없이 그대로 미움에서 굳힐까 봐,였다. 하지만 이젠 미움을 모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 미움에서 사랑으로 바꿀 생각이 있는 이들은 내가 애원하지 않아도 그리해준다. 미워했다가 금방 사랑으로 따스히 감싸 안아준다.


우리는 부족하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누구에게나 흠은 존재할 거다. 그 흠과 틈 사이를 잘 메꾸며 단단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눈이 금세 그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세상은 말끔하다. 마음의 응어리 또한 머잖아 녹아 사라질 거다.


너와 다툰 후에도 네게 눈이 내리는 찰나를 찍어 보낸다.

이것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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