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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Dec 02. 2023

향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향수를 뿌리기 시작한 지는 한 세 달쯤 되었다. 이전에 좋아하던 이가 사용한다길래 따라 뿌렸던 바이레도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 향수는 이제 구석에 수그리고 있다. 당시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향수를 구매했더란다. 장미 향에 가까운 향이었다. 심플하게 장미 향 향수라 불러도 무방하다. 지속력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후각이 익숙해져 향을 금방 못 느끼게 되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주관적인 지속력 판단이다.


지금 뿌리는 향수는 향수 공방에 가서 직접 제작한 향이다. 베르가못과 더불어 풀 향이 맴돈다. 요즘엔 그것만 뿌린다. 향에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굳이 붙이자면 ‘청춘의 향’이라 하겠다. 함께 제작하러 갔던 이가 내 청춘의 궤도를 달리해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해보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향수를 만드는 일 역시 그중 하나였다. 향수를 좋아한다 하면서, 딱히 만들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상대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진 경험이었다.


솔직히 향수를 좋아한단 고백보다는 향을 좋아한단 단순한 농담이 좀 더 적합하다. 향수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공방에 가서 직접 만들어 보기 전까지는 top note, middle note, base note도 몰랐다. base부터 시작해서 향을 추가해 가더라. 그리고 발향 직후 맡게 되는 향이자, 향이 사라지는 순서는 top note가 먼저였다.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top note에 끌려 구매를 하게 된다고 한다. base note는 마지막으로 남는 잔향. 가장 먼저 쌓은 향이 끝까지 남는다. 가장 나중에 쌓은 몇 방울이 제일 일찍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먼저 사라지는 향에 이끌려 구매의 단계에 서게 된다.


어찌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동안의 나는 첫 느낌에 집착해왔다. 처음 보았을 때 형언할 수 없는 느낌적인 느낌이 팍! 오지 않으면, 얄짤없이 만남을 끊었다. 두 번 세 번 더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첫 느낌이란 부질없음에 사로잡혀 더 좋은 면이 있을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단 것이다. 그리하여 놓친 인연들이 많았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하나같이 좋은 인물들이었다. 다정을 알고 배려를 알았던 인간들, 그런데 왜 그땐 느낌이란 게 오지 않았을까? 너무 느낌 쪽으로 치중되었던 까닭에 되려 딴 길로 샜던 걸까?


향수의 잔향을 맡게 된 시기는, 앞서 얘기한 바이레도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를 구매하게 되었을 적이다. 향이 궁금하여 아침에 뿌린 뒤 점심, 저녁 즈음까지 골고루 손목에 킁킁 코를 대어봤었다. 그때 잔향이란 게 첫 향과는 다름이 있을 수 있구나, 알아챘다. 아울러 오히려 발향 직후 맡게 되는 향보다는 은은하게 남는 잔향이 향수를 구매하는 데에 있어 더 중요하지 요건이지 않나, 싶어졌다.


잔향이 오래 남는 경우에는 옷에도 스며들어 한 며칠 간다. 심지어는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엔, 다음 날이 되어서까지 그 사람의 향수 냄새가 주위에서 진동을 하는 적도 있다. 그 사람의 잔향이 오래 남아 머물기도 한다. 이처럼 첫 느낌의 강렬함은 아니었을지라도 두고두고 볼수록 매력적인 인간도 있다. 이젠 첫 느낌보다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그런 매력을 보고자 찾는다. 찬찬히 살피고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만의 고유한 특징을 관찰한다.


어느덧 은연중에 배인 향처럼 누군가가 길게 남는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거듭되는 만남과 닮아가는 모습에서 잔상이 남아 보고픔이 생생해진다. 편안해진다. 늘 뿌리는 향수처럼 자꾸만 손이 가고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감정은 여전히 달려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예민한 후각이 무뎌져 금방 익숙해지는 향을 사라졌다고 착각해선 안되는 점과 비슷하다 볼 수 있겠다.


이전의 난 한 향을 고집해야겠다, 선언했던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 그 향을 맡을 시 날 떠올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또한 내 향수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경우 그 이름과 동시에 날 기억해 내기를 원해서였다.


이젠 소중한 이와 함께 다정히 만든 향수를 뿌린다. 선반 위에 있는 다양한 향수들을 제치고서 제일 먼저 집게 된다.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게 당연해진다. 지인들 사이 나를 떠올리면 누군가가 떠오를 것이다. 나쁘지 않다.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맥박이 뛰는 곳에 향수를 뿌린다. 처음과 끝으로 머무는 향까지. ‘청춘의 향’ 온통 한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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