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노래하다

'보헤미안 랩소디' 감상문

by 김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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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록 음악에 문외 했던 사람들도 소싯적 머리 좀 흔들었다고 자랑하게 만드는 영화.

이 영화를 왜 꼭 봐야 한다 다짐했을까.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노래를 허영만의 '타짜' 만화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극중 주인공 박태영의 성격을 투영하는 쾌락의 노래. 벨제붑을 상징하는 악마의 노래.

도대체 어떤 노래일지 상상이 안가 검색을 통해 처음 들어보았을 때의 충격은 잊혀지지 않는다.

장르를 알 수 없는 곡의 흐름. 피아노를 치다 박차고 일어나 노래를 쏟아내는 콧수염 아저씨. 그리고 전율을 일으켰던 기타 솔로. 한동안 보헤미안 랩소디는 나의 출근길을 콘서트장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에 제목만 보고도 관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관을 위한 영화로 분류할 수 있었다. 더해서 한 사람의 외로움에 몰입하게 해주었으며, '퀸'이라는 좋은 브랜드를 알게 해주었다.




영화관을 위한 영화

모든 영화가 그렇듯, 조그만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더욱 좋다.

큰 화면뿐만 아니라 공간을 감싸는 소리의 울림과 어두운 조도도 영화에 몰입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도 있다. 영화적 장치보다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영화(개인적으로는 '맨 프롬 어스'나 최근 개봉한 '완벽한 타인' 등 한 공간에서만 펼쳐지는 영화)들이 그렇고, 얼마 전 개봉한 '서치'는 오히려 맥북으로 보았으면 더 몰입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더욱 더 영화관을 위한 영화라 생각이 든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느냐는 질문 뒤로 어디서 봤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맥스, 스크린 X, 메가박스 MX관, 싱어롱 상영관 등 이렇게나 많은 영화관의 종류가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떻게 이런 영화관 문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역시나 노래인 듯하다. '퀸'이라는 밴드보다 '프레디 머큐리'가, '프레디 머큐리'보다 그들의 '노래'가 유명할 만큼 퀸의 노래는 대중에게 익숙하다. 발을 두 번 구르고 박수를 치면 당신은 이미 퀸의 노래를 알고 있다 라고 얘기를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관람평은 하나같이 퀸의 노래에 주목을 한다. '이 노래도 퀸꺼였어? 퀸은 모르고 갔는데 노래는 다 알고 있었다' 등 그들의 노래는 이미 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영화 후반부의 'Live Aid' 공연 씬을 필두로 입소문을 탄 영화는 곧 다양한 영화관을 만들어 내었다. 특히 싱어롱 상영관 문화(가보지 않아서 실제로 활성화되는가 의문이긴 하나)는 영화를 즐기는 법을 새로 만들어낸 수준이 아닌가. 실제로 영화를 보면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니 이러한 흐름은 어찌보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에 대하여

마지막 하이라이트 신을 제외하고, 영화는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의 성장에 집중한다. 그의 인종적 특별함, 남다른 끼, 천재적인 능력, 그리고 성에 대한 정체성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외로움'이라는 성향을 자아낸다.


영화는 외로움의 장치를 곳곳에 심어두었다. 실제 프레디보다 더욱 강조된 앞니는 당찬 그의 모습에 유일한 부끄러움을 보여주었고, '메리'와의 관계를 심도 있게 보여주면서 혼자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담아내었다. 프레디는 소수자의, 리더의, 천재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메리를 향해 애타게 전등을 끄고 키는 모습은 파티가 끝나고 난장판이 된 집과 같은 그의 마음을 보여주었고, 에이즈 판정을 받고 나가는 그를 향해 '에오-'를 외치는 꼬마를 바라보는 머큐리의 눈에서 공허함이 보였다.

익히 들어오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가 영화 끝무렵 전혀 다른 의미로 와닿았던 것은 이러한 장치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퀸'이라는 브랜드

남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브랜드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는 항상 골칫거리이다.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자신감과 남들과의 차별성, 더해서 새로운 것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생각하는데, 영화 속 퀸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꿈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들은 '퀸'에 대해 망설임 없이 설명했으며,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자신있게 도전했다. 자신들이 옳다 생각하는 일은 투쟁(?)해서라도 실행하려 했다. 자신의 가치를 정의하고 이를 보란 듯이 보여주는 것. 그것에 반응하는 팬이 생겨나는 것. 어찌 보면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이 아닐까.




요즘 길거리를 가면 퀸의 노래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오래된 노래가 현재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넘어 열광할 정도로 좋다는 것. 그들만의 뚜렷한 색이 있으면서도 대중적이라는 것. 한 시대를 풍미한 것도 모자라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것.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자극을 주는 영화였다.

'퀸'이라는 브랜드는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나에게 롤모델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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