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큰 오류 중 하나가 '객관식 시험'이라는 의견을 본 적 있습니다.
각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답이 존재하는 논술형 시험과는 달리,
객관식은 반드시 선택지에 명확한 정답이 있는 구조로
이 세상 어딘가에 정답이 있다는 가치관을 학생들의 마음속에 심어줄 수 있다고 합니다.
('Why'를 궁금해하는 대신 '정답'을 암기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인생을 살수록 12년 학창 시절 배움과는 달리 정답이 없다는 점을 여러 번 느낍니다.
이를 가장 먼저 느낀 영역은 제가 좋아하는 배드민턴입니다.
배드민턴에는 정석이라고 불리는 자세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련도와는 별개로 다른 방법으로 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단순 동호인이 아닌 국가대표 포함)
왜 그런 것일까요?
그들도 정석의 방법으로 입문하고 실력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훈련 과정에서 각자의 체형, 플레이 스타일, 트렌드에 맞추어 조금씩 변형했고, 각자의 스타일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정답(자세)만 있었다면,
모든 경기는 정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승리하겠지만
막상 경기를 보면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다양하기 그지없습니다.
(본인에게 최적의 플레이를 선택하고 만든 결과물=다양한 양상의 경기 영상)
정답이 있다고 믿는 시기에는 실패를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딘가 있는 정답을 찾지 못한 제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것 같았고,
헛된 짓을 할까 두려워 '정답'으로 분류된 것들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습니다.
허나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이 덜해지고(이 또한 내 자산이니까)
실패 또한 정답을 향한 여정의 중간과정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실패에 대한 유연한 사고는 보다 폭넓은 사고를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끊임없는 학습과 건강한 소통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정답이 없기에 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낭비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탄탄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정답' 혹은 '체계'에 대한 갈증이 더 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하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은,
절대적인 참 혹은 명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찾는 것은 '현재'시점에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이며
이 정답은 언제나 바뀔 수 있기에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대비하자는 것입니다.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도드라지는 요즘에야 말로,
정답을 찾는 대신 변화의 바람에 반응할 수 있는 기민함과
실패를 인정하고 나아갈 수 있는 깡다구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