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시 산소마스크는 내가 먼저 써야 한다

'의도적인 여유'를 확보하는 것에 대하여

by 주드남

얼마 전, 가족과 친척들을 모시고 이집트를 다녀왔다.

자유 여행이었고, 모든 준비를 직접 했다.

과거 미국으로 비슷하게 다녀온 경험이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집트는 달랐다.


현지 가이드와 일정 조율, 상인들과의 흥정 실랑이, 돌발 변수 대응, 어른들 컨디션을 챙기고 비용 관리까지. 나도 처음 가는 나라인데 관광객으로 즐길 틈이 없었다.


일정이 다 끝나고 귀국 전날에서야 그 차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미국은 과거 1년 정도 머무른 경험이 있었기에 심적인 여유가 있었던 반면 초행길인 이집트에서 모든 것은 내게 긴장의 연속이었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옆을 볼 수가 없었다.




비행기에서 비상 상황 발생 시 산소마스크에 대한 사용 방법을 안내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산소마스크는 어른이 먼저 착용하신 후, 아이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직관에 반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어른이 먼저 쓰러지면, 아이도 함께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한다.

일도 크게 다르지 않더라.




과거 입사 2년 차 때, 함께 일하던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주드가 제가 해야 할 것을 명확히 말해주면 좋겠어요."

당시 세일즈 방향 자체가 모호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답을 찾는 중이었고, 함께 고민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 말을 '불만'으로 들었고, 명확한 지시를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최근 같은 질문을 다른 동료에게 또 들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혹시 어떤 부분이 특히 불명확하게 느껴져요?"

대화가 이어지자 진짜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만 팀에서 제대로 된 쓰임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 소외감.


내가 받은 질문은 같았지만, 이에 대한 내 생각과 반응은 것은 전혀 달랐다.

그 사이 내게 생긴 것이 무엇이었을까.

경력? 연차?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따로 있었다.


나에게 여유가 생겼다.




바쁘게 달리는 사람은 신호를 놓친다.

동료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그 뒤에 숨은 맥락. 머릿속이 꽉 차 있으면 그것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2년 차의 나는 동료의 말을 표면 그대로만 받아들였다. 지금의 나는 그 말 뒤를 물을 수 있었다.

차이는 능력이 아니었다. 차이는 '공간'이었다.


리더는 더 많이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잘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읽으려면, 먼저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의도적인 여유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만들어야 한다.

나는 요즘 주말 중 하루를 아무도 없는 오피스로 혼자 출근한다.


밀렸던 동료들의 문서를 챙겨보고, 독서나 경제주간지를 읽으며, 다음 주의 업무 방향을 한 번 톺아본다.

최근에는 여러 AI 툴을 직접 써보며 레퍼런스를 찾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시간도 더했다.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그게 또 다른 실행 아닌가요?"

하지만 이는 확실히 다르다.


이 시간의 목적은 성과가 아니라 감도를 높이는 것이다.

한 주를 복기하고, 내가 놓친 신호는 없었는지, 내가 가야 할 방향은 맞는지. 이 글도 그 시간의 산물이다.


당신은 지금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고 있는가. 아니면 마스크도 없이 옆 사람을 도우려 하고 있는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확보하고 있는 의도적인 여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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