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일'에서 '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로의 확장
스타트업에서 세일즈로 일하며 나는 줄곧 스스로를 '선봉대장'이라 정의했다.
거래처를 발굴하고, 계약서를 쓰고, 숫자를 가져오는 것이 내 역할의 전부라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 타이어 공급 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매처 사장님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으며, 나는 그동안 내가 세일즈라는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공격적인 성장의 발목을 잡는 진짜 원인은 영업력 부재가 아닌 '공급의 불안정'에 있었다.
"그건 운영팀이나 지원 부서의 일 아닌가?"라는 초기 혼란은 현장을 마주하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현장의 감도가 가장 높고, 파트너와 장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세일즈야말로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턱대고 재고를 늘려달라고 떼쓰는 대신, 마이클의 발주 데이터를 들고 현장으로 향했다.
제조사별 메인 패턴(많이 팔리는 품목)과 특이 패턴을 구분하고, 각 도매처의 '발주 가능율'을 수치화해 제시했다. 수십 년의 경험을 가진 베테랑 사장님들에게 데이터는 때로 '치기 어린 간섭'처럼 비쳤지만, 결과적으로 데이터는 강력한 필터가 되어주었다.
1. 나침반: 마이클을 믿지만 방법을 몰랐던 파트너에게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2. 거울: 본인의 성적을 과신하며 안주하던 이들에게는 차가운 위기감을 주는 거울이 되었다.
3. 필터: 변화를 거부하며 "돈 없다, 부지 없다"는 변명 뒤에 숨는 이들을 억지로 설득하는 대신, 우리가 에너지를 쏟아야 할 진짜 파트너를 선별해낼 수 있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하지만 데이터 앞에서는 방어 기제가 무너진다. 객관적인 수치가 제시될 때, 사장님들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내 목소리에는 경청의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일궈낸 변화는 내부 조직의 공기를 바꿨다.
타이어 발주와 정산을 담당하는 경영지원팀과의 협업이 그 증거다. 발주 가능율이 높아지자 경영지원팀의 업무 난이도는 낮아졌고, 후순위 도매처로 발주가 넘어가며 발생하는 배송비 손실도 눈에 띄게 줄었다.
동료들의 언어가 바뀌는 순간은 짜릿했다.
"성수기 때 재고 없어서 OFF했던 상품들, 이제 다 ON 해도 되겠네요."
"전라도 광주 지역은 진짜 답이 없었는데, 이제 수급이나 배송비가 너무 안정적이에요."
과거에는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세일즈가 현장에서 가져온 데이터 기반의 변화가 전사적인 프로덕트 개선과 팀원의 역량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세일즈의 정의를 새로 썼다.
세일즈는 단순히 밖에서 숫자를 따오는 조직이 아니다.
내부의 판을 짜고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는 '비즈니스 오퍼레이터'다.
만약 당신이 지금 세일즈 커리어의 정체기를 겪고 있다면, 혹은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나는 지금 물건을 파는 테크닉에만 매몰되어 있는가, 아니면 비즈니스가 성장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를 찾고 있는가?"
직무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그 담장을 넘어서는 순간, 세일즈맨은 비로소 비즈니스 리더로 성장한다.
우리가 부순 것은 단순히 공급망의 병목이 아니라, '세일즈는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그어두었던 직무의 칸막이였다.
당신이 정의하는 세일즈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그 한계를 부수는 순간, 비로소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