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쉴 줄 아는 사람이 잘 달릴 수 있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살면서 힘들다는 감정을 ‘길게’ 가져가본 적이 없습니다.
회복탄력성도 좋아 힘들 일이 있어도 금방 털어낼 수 있었고, 도저히 안되겠을 경우에는 포기해버려서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다.
비교적 업무량이 많은 스타트업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 정도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를 너무 맹신해서였을까요, 잘 안 쉬었습니다.
근무시간을 좀 길게 가져가는 편이었고(10시간 이상), 필요할 경우 주말 하루 정도 일하기도 했고,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휴가도 잘 안썼습니다.
회사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고, 좀 극단적이긴 한데 쉬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ESTJ 특)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 비해 제가 뒤처지는 느낌이었달까요?
누군가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저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100m 달리기 같은 마라톤을 이어나갔습니다.
입사 이전에 겪었던 일들은 시간, 사람, 상황이 맞지 않고 내게 흥미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도저히 '못'하겠다고 느꼈던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처음으로 '못'하겠다고 느낀 것이 등장했습니다.
어떤 시도를 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못 얻을 것 같았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모두에게 민폐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넘지 못할 산을 마주한 느낌이었달까요?
처음으로 압도 당한다는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무력감으로 이어졌고, 업무에 대한 흥미 저하와 함께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수반되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수요일, 아무 생각 없이 휴가를 냈습니다.
선약이나 해야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쉬고 싶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꽤나 큰 도전(?!)이었습니다)
사람 없는 평일 오후에 혼자서 영화 한편 보고, 카페에서 책도 읽고, 평냉에 소주 한잔하며 평소에 지양해왔던 여유와 공백을 온전히 느꼈습니다.
아사나, 위키, 슬랙의 알림에서 벗어나 제 자신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했던 1인)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을 때 대표님이 제게 100m 달리기 대신 마라톤의 관점에서 에너지를 분배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업무의 그 말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이가 더해지는 만큼 소요되는 정신력의 양이 달라지고 있으며 과거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진짜 필요할 때 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본인이 힘들지 않은데 남들 말마따나 무조건 쉬는 것은 그다지 좋아보지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스스로를 너무 혹사시켰다고 말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렇게 달려봤기에 제 임계점을 알고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현재 속도는 과거에 비해 조금 느려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고 있으며, 임계점을 조금씩 올리다보면 내 마라톤이 누군가에게는 100m 달리기와 같이 페이스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성장일기는 여전히 ~ing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