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해가 쨍하다. 어젯밤도 밤새 추위에 떨며 잠을 설쳤지만 아침 해를 보니 피곤이 싹 사라졌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이 추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카라반에 대부분의 식기도구가 있어 큰 짐은 풀지 않아도 되었고, 차도 카라반 앞에 바로 세울 수 있어 쉽고 빨리 짐을 쌀 수 있었다. 대충 아침을 해결하고 세수 후 체크아웃을 하러 리셉션으로 향했다.
친구가 예약을 하며 80% 정도의 숙박비를 미리 지불한지라 체크아웃 시에는 그 나머지와 여행자 세금만 내면 된다. 정산을 하고 지불을 하려는데 직원이 혹시 현금으로 계산하면 10%를 할인해 준다는 제안을 한다. 마침 친구가 환전한 현금이 꽤 있어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10% 할인이 어디랴! 요즘 휴대폰 클릭 한 번이면 온갖 것을 세상 어디에서도 주문 수 있고, 환전도 알아서 해주는 신박한 세상인데, 그래도 여행하면서 약간의 현금은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이런데 있다. 우리는 10% 할인의 기쁨에 밤샘 추위도 잊었다.
이제 오늘의 행선지. 돌로미티 동쪽의 왕! 우리 여행 대미의 트레킹을 장식할 트레치매 디 라자르도(Tre Cime di Lavaredo)로 출발이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는 돌로미티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세 개의 거대한 석회암 봉우리(Cima Grande, Cima Ovest, Cima Piccola)가 특징이다. 트레치메라는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특히 봉우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순환 트레일 (Circular Hike)과 암벽 등반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포자 디 파사에서 트레치메 까지는 약 91km 정도 되는데, 자동차로 이동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카나제이와 동 돌로미티의 거점 도시이자 올림픽 개최지(1956년과 내년 2026년)로 유명한 코르티나 담페초를 지난다. 카나제이를 지나 얼마 안돼 유명한 고갯길 중 하나인 파소 포르도이 (Passo Pordoi)가 등장한다. 2시간 30분이라는 꽤 긴 이동시간이 지겹지 않을 만큼 시시각각 아름다운 뷰를 선사한다. 코르티나담페초에서 20분 정도 지나니 미수리나 호수가 (Lago di Misurina) 오른쪽으로 펼쳐졌다. 카레차 호수를 비롯해 우리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브라이에즈 호수 등 돌로미티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약 450개 되는데, 미수리나 호수도 그 중하나이다. 호수는 바로 도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접근성이 좋아 보였으나 오늘 우리의 행선지는 트레치메 이므로 차 안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
이렇게 미수리나 호수를 지나 10분 정도 더 운전을 하면 트레치메 입구에 도착한다. 트레치매는 곤돌라를 타지 않고 차로 바로 오를 수 있다. 대신에 주차장을 미리 예약해야 하고, 요금은 40유로다. 주차장이 일찍 매진될 수 있니 미리 예매해 두는 것이 좋다. 트레치메 주차장 예약을 안 한 사람은 아예 이 입구 통과가 불과하다. 극 J인 친구 덕분에 우리는 예행 초반에 맑은 날을 찾아 일찌감치 주차장을 예약해 두었다. 당당히 입구를 통과 후 다시 한 10분 정도 산길을 운전하면 아우론조 (Rifugio Auronzo) 산장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은 아우론조 산장 바로 옆에 있어 마치 아우론조 산장은 주차장 쉼터 같은 느낌이다. 차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곳이라 그런가 다른 산장과 다르게 화장실 요금을 받는다. 일단 우리는 1유로씩 내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본격적인 트레킹 길에 올랐다.
앞서 언급한 데로 트레치메는 동 돌로미티의 왕이라고 불린다. 많은 이들이 돌로미티에서 최고의 한 곳을 꼽으라면 트레치매를 뽑을 정도로 돌로미티를 대표하는 곳인데, 사실 주차장에 도착 후 트레킹을 1/3쯤 마쳤을 때도 우리는 이 명성을 반신반의했다. 어떻게 둘러봐도 왜 트레치메인지 이해가 안 되는 돌산이 덩그러니 서있는 느낌이랄까... 서 돌로미티와 다른 점이라면 이곳도 친퀘토리와 마찬가지로 암벽이 많고 등산로가 대부분 돌길이라는 것이다. 산등성이 옆으로난 돌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알피니 샤펠 (Cappelle degi Alpini)가 나오고 10분 정도 더 걸으면 라바레도 산장 (Refugio Lavaredo)이 나온다.
라바레도 산장에 도착하니 1시가 조금 넘었다. 점심을 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우리 여행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는 홈메이드 샌드위치와 사과 그리고 커피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장과 산장 주변은 트레커들로 북적인다. 이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고 나면 약간 난도가 있는 트레킹길이 펼쳐진다. 난도가 있다고 해봤자 경사가 약간 더 있고, 돌길이 더 많다는 정도다. 다음 목적지는 로카델리 산장 (Refugio A.Locatelli)인데, 이 로카델리 산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 본인의 취향과 수준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로카델리 산장을 가기 위해서는 트레치메 봉우리를 왼쪽으로 두고 가야 하는데, 트레치메 봉우리옆을 바로 지날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위엄이 대단하다. 슬슬 왜 동 돌로미티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봉우리 앞에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서운하니 사진을 친구와 주고받고 하나씩 찍을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트레치메 봉우리를 지나 30분 정도 더 트레킹을 하면 로케델리 산장 입구에 도착한다. 로케델리 산장은 언덕으로 조금 더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산장까지는 오르지 않고 그 앞 넓은 바위평원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제 트레치메 세 개의 봉우리가 한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아 이제 트레치메의 왕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근처에 자리를 잡은 트레커들은 국적,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이 왕의 면모를 사진에 담아내는데 여념이 없다. 우리는 일단 사진은 미뤄두고 커피를 꺼냈다. 맑은 가을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그 앞에 펼쳐진 트레치메를 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우리는 이 호사를 맘껏 누렸다. 아직 돌로미티에서의 일정이 더 남아 있지만 트레킹 다운 트레킹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 대미를 장식한 곳이 동 돌로미티의 왕인 트레치메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벅차오른다. 그리고 초기 우리의 우려와 달리 왜 돌로미티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지, 왜 많은 사람들이 돌로미티의 최고로 꼽는지 이해가 됐다.
자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트레치메를 내려와 다시 아우론조 산장 주차장에 닿으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는 돌로미티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숙소 "사쓰 드라시아 (Camping Sass Dlacia)”이다. 첫 번째 숙소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만들어진 숲 속 텐트인데, 크기는 작지만 침구가 제공되고 난방이 된다! 난방이라니!!! 지난 3일 동안 추위에 떨었던 터라 마지막 숙소가 너무나 기대가 된다.
트레치메에서 우리의 마지막 숙소까지는 차로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데, 친퀘토리를 방문한 날 지난 곳이기도 하다. 숙소에 도착하니 여섯 시가 다 돼 간다. 리셉션 옆에 간단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슈퍼가 바로 붙어 있는데, 계산도 리셉션에서 함께하고 있어 간단한 먹거리를 사러 온 사람들과 체크인을 하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엉망이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줄이 체크인을 위한 줄인 지 여러 번 확인한 후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혼잡스러움과는 별개로 체크인은 비교적 빠르고 간단하게 끝났다. 첫 번째 숙소에서는 직원이 자전거로 함께 우리를 숙소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이곳은 캠핑장 안내 지도를 통해 우리가 묵을 곳만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앞쪽에 있었던 캠핑카를 보니 캠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직원이 와 자리를 안내해 주는 것 같았다.)
캠핑장에서 나눠주는 지도는 대부분 상세지도라기보다 간단하게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만 보여주는 정도라 캠핑장과 캠핑카 사이트가 얼기설기 섞여있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없어 처음에 길을 잘 못 들며 헤맸다. 숲 속 텐트 입구즈음 도착하니 직원이 얘기한 주차장이 보였다. 우리는 10번이 적힌 곳에 주차를 하고 앞으로 나흘동안 우리의 보금자리가 될 숲 속텐트를 먼저 확인했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첫 번째 숲 속텐트와는 다른 맛이다. 첫 번째 숲 속텐트는 캠핑사이트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위치해 있어 독립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이곳 숲 속텐트는 10개 이상의 숲 속텐트가 스머프 마을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어 안락한 느낌이 들었다. 숲 속텐트 앞쪽으로 잘 가꿔진 정원과 벤치등이 잘 배치되어 있고, 마을(?)의 중간 즈음엔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산속 약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맥주 한 병과 요구르트를 시원하게 보관하기 위해 담가 놓은 것을 보고 우리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면 통창으로 숲 속이 한눈에 보인다. 하얀 침구와 타월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고, 그 옆에 샴푸와 샤워젤도 놓여 있었다. 이 정도면 호텔급 어메니티다! 오늘 밤, 저 하얗고 깨끗한 이불과 푹신한 침대에서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잠을 잘 호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밤이 기다려진다.
자 그럼 이제 이 캠핑장에 어떤 시설이 있는지 알아보자. 우리는 리셉션에서 준 지도와 체크인 시 직원이 안내해 준 푸드트럭과 야외 공연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 캠핑장은 매주 주말 야외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오늘 일요일이라 마침 공연 이 있는 데다가 날씨 또한 맑아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된다. 우리는 머무는 동안 한번 와서 먹어보자고 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시설과 화장실 그리고 식기세척실은 규모는 작지만 새로 지어 깔끔했다. 파우더룸이 별로로 없는 것과 화장실과 샤워실이 함께 있어 피크타임에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과 샤워실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꽤 북적이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오늘 장은 별로도 보지 않아 남은 재료들로 대충 저녁을 해 먹고 따뜻한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멋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