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캠핑장에 온 이후로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비를 뿌리는 것 같다. 어제는 밤새 비가 와서 인지 카라반 안으로 찬기운이 들어와 밤새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 침대 옆에 놓고 잔 물병을 드니 냉장고에 넣어둔 것처럼 차다. 따뜻한 레몬 물로 몸을 데우고 아침을 먹었다.
예보에는 오늘도 비가 올 거라 했는데 아침 날씨는 꽤나 화창하다. 오늘은 이 마을을 잠깐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카나제이(Canazei)에 가볼 생각이다. 카나제이는 이 동네에 온 첫날 체크인 전 들러 점심을 했던 이 지역에서는 꽤나 큰 마을인데, 그때 자세히 들어보지 않아 다시 가 보기로 했다.
마을을 에두르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 마을 중심부까지 나섰다. 마을은 첫날 우리가 봤던 거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예뼜다. 버스 정류장은 마을 중심에서 넷 가로 난 트레킹 길을 따라 200미터 정도 더 걸으니 나왔다. 가는 길에는 어린이들은 위한 공원도 조그맣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조랑말이나, 닭, 등을 키우고 있었다. 정겹다.
버스 시스템은 수드티롤리와 조금 달랐다. 티롤리 지역 버스는 캠핑장에서 나눠준 게스트 카드를 버스를 탈 때마다 스캔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곳은 버스에 있는 큐알코드를 “미 트렌티오“라는 로컬 앱으로 스캔을 해 승차하는 방식이다.
버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적힌 시간표를 보다 성수기에는 비수기 보다 버스가 자주 다닌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중간중간 관광버스가 배치되어 있는 것도 알았다. 이걸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말 그대로 전세 관광버스를 임대하여 사용하는 듯 해 겉으로 보기엔 전혀 시내버스같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말 그대로 전세 관광버스 같았는데, 안전벨트를 메라는 스티커가 안내로 붙어 있다. 우리는 잘 배운 글로벌 시민 아닌가, 벨트를 매려고 보니 안전벨트가 아예 없다. 그러고 보니 버스 앞에 시계는 시간이 5시간이나 빠르다. 전형적인 시내버스가 아니니 다음 버스 스탑을 알리는 안내 스크린도 없고, 벨도 없다. 그냥 대충 눈치껏 정류장을 확인하고 버스 운전사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마침 우리가 내리는 카나케이 정류장은 꽤나 큰 정류장이어서 놓치지 않고 잘 도착했다. 정겨운 경험이었다.
카나케이 센터 버스정류장은 관광센터가 있는 광장 바로 옆에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주변을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 목요일에 한번 왔던 터라 대략 어디가 어딘지는 알고 있었다. 그때 봐둔 쇼핑센터에 (쇼핑센터라고 하지만 규모는 매우 작다. 아웃도어 용품점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의류브랜드 베네통, 약국, 그리고 지역 특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샵이 전부이다) 갔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3시 30분까지 문을 닫는다고 표시되어 있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빈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폭포가 있고 짧게 트레킹을 하기 좋을 것 같아 그곳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시내에서 1킬로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곳인데, 시내 길을 따라 내려가다 교회가 보이면 교회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작은 트레킹 코스가 보였다. 트레킹 코스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아담한 규모의 폭포가 보였다. 그 옆길로 더 긴 트레킹 코스가 있어 보였으니 우리는 폭포까지만 보고 내려왔다. 알프스 산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트레킹 코스가 심심치 않게 있는 듯했다. 알프스 마을이 가진 장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짧은 랜덤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마침 달달한 것도 먹고 싶던 차에 광장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광장을 둘러싸고 커피와 디저트, 간단한 음식을 파는 카페가 3개 정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가장 클래식한 (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함) 곳을 선택했다. 친구는 아포가토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메뉴에 아포가토는 없었다. 그런데 아포가토가 뭐 별거인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뿌려 먹는 게, 그게 아포가 토지. 우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개와 에스프레소를 시켜 셀프 아포가토를 제조해 먹었다.
로컬 등산객 한 두 그룹 들어오더니 자리를 잡는다. 밖을 보니 빗 방울이 더 거세졌다. 그칠 비가 아닌 듯 보였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 쏟아지는 비를 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3시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우리는 비를 뚫고 아담한 쇼핑센터로 향했다. 시골 아웃도어 샵에 뭐 대단한 것이 있으랴, 예상했던 대로 물건들은 실망스러웠다. 한국에서 이제는 한물간 그러나 유럽, 이탈리아에서는 여전히 건재한 베네통. 베네통 아동복에 꽤 괜찮은 셔츠와 니트를 발견했는데 일단 마음속에 킵하는 걸로. 그렇게 마을의 샵이란 샵은 거의 다 둘러보고 나니 5시 정도 된 듯했다. 우리는 근처 슈퍼에서 저녁거리 장을 본 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우연히도 아침에 탄 그 버스였다. 집에 도착하니 6시가 다 되어 가는데 배가 고팠다. 우리는 너구리 컵라면에 식은 보리리조또를 말아먹었다. 친구는 아침부터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가 아프다고 하더니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카라반 안은 저녁이 되니 더 추워졌다. 오늘 밤 이 추위에 다시 하룻밤을 더 보내려니 걱정부터 앞섰다. 동시에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것에 안도했다.
내일 도착하는 우리의 마지막 캠핑 사이트는 난방도 되고 이불과 베개도 제공되는 거의 호텔급 숙소이다. 그리고 내일은 이 여행의 백미인, 많은 이들이 돌로미티 제1의 명소라 불리는 “트레치매”를 여행하는 날이니 더 힘내 보자. 우리는 두 겹 씩 옷을 껴입고 양말까지 챙겨 신고 잠에 들었다. 그래도 밤새 추위에 떨었다. 알프스에서의 캠핑은 한여름에도 추위에 대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