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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10. 2020

육아 도전기

아빠!  힘내세요!

    오후 5시 반.

    심장박동이 자꾸  빨라 지려 한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아내는 친정에 급한 볼일이 있어 오늘과 내일은 내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나름 가정적이라 자신했지만 막상 혼자서 두 아이를 감당하려니 왠지 모를 두려움이 고개를 내민다.  까짓것 못할 건 또 뭔가.  마음속으로 '도전'을 외치며 다짐해 본다.


    잠시 후 '아빠'하며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보니 어린이 집에서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옷이 장난이 아니다.  한창 부잡할 나이 2살, 4살.  두 녀석의 하루 일과를 스테레오로 들으면서 집으로 올라갔다.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기고 내 보내자 장난감들을 끄집어낸다.  아침에 애써 정리한 건데.

 

    배고프다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바로 코 앞에 대령하지 않으면 난리가 나는 녀석들이라 슬그머니 부엌으로 가 저녁을 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고프다며 밥 달란다.  장난감 정리해야 밥 준다며 시간을 벌어 보지만 오늘따라 배가 많이 고팠는지 금세 정리를 끝내고 나와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어휴.  이놈들아, 난 엄마가 아니라 아빠야.  이런 일은 엄마처럼 못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알아들을 리 없겠지.

    녀석들은 김치 없으면 난리 치고, 국물 없으면 안 먹는 토속적인 식성을 가지고 있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지만 막상 준비하는 입장으로선 그다지 반갑지 만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초스피드로 밥상을 대령하자 큰 녀석이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더 달란다.  작은 녀석도 덩달아 아직 밥이 남아 있는 그릇을 내어민다.  그래 많이 먹어라.  위대(?)한 녀석들.


    실컷 밥을 먹고 나서 다시 놀기 시작한다.  대충 뒷정리를 하고 나니 벌써 8시가 다 되어 간다.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내 평소 신조인지라 재울 준비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목욕하기.  한 겨울이라 아이들 추울까  따뜻한 물로 욕조를 얼추 채우고 헹굴 물까지 옆에 준비한 다음 옷을 벗기고 한 놈씩 물속에 집어넣었다.  원체 물놀이를 좋아하는 녀석들이라 물이 얼추 식을 때까지 때도 불릴 겸 둘이 놀라고 하고는 이부자리를 피러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큰 녀석의 다급한 목소리에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얼른 달려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  왜 불렀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으어어어어...  욕조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저것들은...  진한 갈색의 작은 덩어리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큰 녀석이 아빠가 그게 뭔지도 모를 까 봐 얼른 가르쳐 준다.  

    "아빠 건이가 똥 샀어요."  

    '야, 이 녀석아!' 하며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다.  얼른 두 녀석을 물 밖으로 피신시켰다.  감기라도 걸릴까 빠른 속도로 욕조를 비우고 대충 헹군 후 다시 물을 받았다.  잠시 후 다시 두 녀석을 욕조에 집어넣고 아까 하다만 잔소리를 작은 녀석에게 퍼부어 주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여는 순간 큰 녀석이 또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아빠, 건이가 똥 쌌어요."

    으아아아아!  다 싼 줄 알았더니.  조금 전의 그 작업을 다시 반복하고는 이번엔 좀 더 수위를 높여 작은 녀석을 쏘아붙이는 순간, 큰 녀석이 갑자기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고는 노래를 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아흐흐흐.  황당하고 미칠 지경이다.

    '니들만 아니면 내가 이렇게 힘들 일이 없다.  이놈들아!' 노래를 부르던 큰 녀석이 손을 내밀며 "아빠, 울지 마요." 하며 눈가에 튄 물을 닦아 준다.  닦아 준 건지 물을 묻힌 건지.  제 딴엔 아빠가 운다고 생각해 닦아 주는 게 고맙고 듬직하다.


    우여곡절 끝에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는 우유를 데워 주었다.  형이 컵으로 우유를 마시는 것이 샘이라도 났는지 작은 녀석도 컵으로 달랜다. 실랑이하기 싫어 컵에 따라서 줬다.  

    아뿔싸.  컵을 사용하는데 미숙한 작은 녀석이 그만 원샷을 해 버린다.  그 작은 입에 우유가 들어가 봐야 얼마나 들어갈꼬.  대부분 옆으로 흘러 옷을 적시고, 그것도 모자라 이불까지 적셔 버렸다.  그 두꺼운 겨울이불을.  얼른 이불을 돌돌 말아 한쪽으로 치워 놓고는 작은 녀석의 옷을 벗겼다.  샤워를 시켜야겠지만 아까의 사건으로 인해 힘이 다 빠져 버린 상태라 몸에 묻은 우유는 물티슈 신세를 지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젖은 옷을 들고나가 세탁기에 집어넣고 이번에는 우유병에다가 우유를 담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사이 작은 녀석이 제 형의 우유를 뺏으려 하자 뺏기지 않으려 컵을 들고 냅다 도망가던 큰 녀석이 그만 이불에 걸려 엎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키힝... 여보야...'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힘을 내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젖은 이불을 내어 놓고 두 녀석들의 젖은 옷을 벗겨 물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아 주고는 새 잠옷으로 갈아 입혔다.  더 이상의 두꺼운 이불이 없어 얇은 이불을 두 겹씩 깔고 그 밑에는 전기장판을 깔았다.

    밖에 나가 회초리를 들고 들어와 두 녀석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니들 그냥 잘래, 아니면 맞고 잘래."

    지들도 짐짓 미안했던지 그냥 잔단다.  찍소리라도 내면 들어와 맴매한다며 협박을 마무리하고는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 버렸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키워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용한 것에 오히려 겁이나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보았다.  

    잔다.  진짜 잔다.  색색 거리며 자는 녀석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니 왜 이리도 이쁜지.  아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녀석들이...  아이들은 크면 클수록 잠자는 모습이 더 예뻐진다더니...


    그나저나 내일은 또 어떻게 견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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