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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10. 2020

'작가'라는 이름에 도전하는 불순한 의도

    강의를 많이 하다 보니 어지간한 강의는 제목과 요지만 설정해놓으면 한 두 시간 정도는 거뜬하다.  듣는 이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고 불러주는 곳도 제법 있으니 바쁘다는 핑계로 원고를 따로 작성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강의 준비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늘 최선을 다하지만 수 십장의 원고 대신 한 장의 용지에 주제와 요지, 흐름 등을 요약해놓고 강의의 진행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려본다.  그러면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강의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준비는 잘하고 있는데...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읽고, 주제에 맞는 예화를 발굴하기 위해 인터넷도 검색한다.  그래도 예전 강의와 비교해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기 시작한 지 벌써 서너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문제의식은 있는데 원인을 모르니 자신감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몇 년의 해외 생활로 인해 불러주는 곳이 확연하게 줄어드니 초조해지기까지...  
    간절하면 길이 보인다고, 찾다 보니 찾게 된 한 가지.  또 다른 원인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드디어 하나 발견했다.  바로 강의에 사용하는 문장 구성이나 표현력 등이 20년 전의 수준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20년 전에야 주변에서 인정받을 만큼 세련되고 직관력이 있어 수년간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  
    처음 강의를 할 때를 떠올려보면 한 시간의 강의를 위해 한 달간 관련 서적을 십 여 권, 표현력과 폭넓은 상식을 위해 문학 장르별로 매 주 두 권씩 읽었다.  그러던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청중들의 반응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책 읽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고, 원고 작성도 요령이 생겨 요약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달랑 메모지 한 장 들고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리했어도 오랜동안 반응이 좋았기에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참으로 거만했었던 것이다.  서른 전후의 나이라 세상이 만만해 보였나 보다.  지금 돌이켜보면 애송이에 불과한데...

    책이야 워낙 좋아하는지라 계속 읽고는 있었지만 의무적으로 읽었던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장르만, 읽기 편한 책만 고르게 되었다.  질에서 멀어지니 양에서도 멀어졌다.  글보다 말에 치중하다 보니 정제되지 못하고, 뚜렷하게 목표를 향해 전개되는 힘이 점점 약해져 강의 자체의 내용은 흠잡을 데 없지만 산만해지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의 한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그랬다.  그때는 영어가 문제였다.  어느 정도 일상 회화가 되니 내가 원하는 내용을 전하기에든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휘력 부족으로 인한 자세하고 정확한 전달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학생들이 내 강의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좀 더 좋은, 좀 더 많은 것들을 가르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자기 성장에 전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인을 알았으니 대책을 세워야겠지.  다시 원고를 써야겠다.  아니, 원고를 쓴다고 하기보다는 글쓰기 자체에 노력하자.  이왕이면 아주 오래전, 기억도 희미해져 버린 시절에 잠시 꿈꿔봤던 ‘작가’가 되어보자.

    작가.
    왠지 온 몸에 닭살이 돋고 손발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문학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불순한 의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목표로 정하자.  실현 가능성이 없더라도 목표를 높게 잡고 노럭해 보자.  가끔, 아주 가끔, 주변에서 작가냐는 소리도 들어보지 않았던가.  내 강의가 좋다는 사람이 있었으니 내 글도 좋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말하는 재주와 글 쓰는 재주가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인데...  그래도 해보자.  아니, 반드시 해내자.

   굳게 마음먹고 글을 쓰려는데 안 써진다.  펜을 들고는 있는데 펜이 종이 위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써야겠다는 의지는 있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그냥 써보자.  막 쓰자.  그래서 내 안에 들어있는 온갖 배설물들을 다 쏟아내 보자.  십 수 년을 쌓아두었으니 그 양이 어마어마하겠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해롭게만 하는 배설물일 뿐.  반드시 쏟아내야 할 것들이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깨끗한 것들이 나오리라 믿고 쏟아내자.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아이들 선물로 아빠가 쓴 소설 한 편을 건네준다면, 남편이 쓴 시 한 편을 아내에게 준다면 어떨까?  나 혼자 감상해도 나쁠 것 없다.

오늘도 이렇게 온갖 더러운 것들이 섞인 배설물을 한가득 쏟아내고 ‘나도작가다공모전’이라 쓰여있는 물 내림 레버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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