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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01. 2020

저 탈랜트 되는거예요?

연예계 입성 실패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모습... 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그래도 의도치 않게 출연료도 안받고 몇 차례 티비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던 내게 정식으로 연기자가 될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초반.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와 늘 함께 다니는 절친이 하나 있었는데 꽤 낯익은 아역배우였다.  그 선배가 나를 두어 번 보더니 배우할 생각 없냐고 하는 것이다.  배우??!!!  오 마이 갓.  와이 낫.     


    어려서부터 매주 일요일이면 아톰, 요술공주 세리, 요괴 인간, 은하철도 999 등 재미난 만화 영화가 시작하는 9시 15분 전 할머니 손에 강제로 끌려 간 곳은 교회였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만화영화를 볼 수 있는데 그 시간에 교회에 가야하는 나는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엄마와 떨어져도 그리 서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교회에 반강제로 앉아 있다 보니 처음엔 몰랐는데 나름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문학의 밤 같은 행사들은 당시 청소년들에겐 꽤나 매혹적인 제법 세련된 문화 수준을 자랑하던 때였다.  그 가운데 연극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코너였다.  남들 앞에 서있기만해도 발발 떨던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연극을 할 때면 전혀 떨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다.  덕분에 일 년이면 서너 차례씩 연극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배우로 수년간 활동하던 선배가 배우할 생각 없냐고 물어본다.  왜 없겠습니까.  당근 만땅 있지요.  그날부터 나는 그 선배 곁에 찰싹 달라붙어 졸졸 따라다녔다.  선배는 그런 나를 꽤나 예뻐해 주었고 종종 매점이나 선배의 교실에 따라가기도 했다.  그러다 수업 종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해 들어오신 선생님께 뒤통수 한 대 맞고 나서야 선배 교실에서 뛰쳐나올 때도 있었다.  우리 교실로 들어가면서 한 대 더 맞는 건 덤이었다.     


    나중에 선배가 해주는 말이 나를 티비에서 많이 봤다고 한다.  지난 학기 중에 동아리 행사로 전국 청소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행진 중이던 우리를 방송국에서 청소년의 달 특집이라며 촬영을 하고 갔다.  그런데 그 행진 장면이 그것도 나를 중심으로 편집된 장면이 무려 한 달간 하루에도 몇 번이고 청소년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광고 시간에 방영이 되었다.  덕분에 학교에서 스타 탄생했다고 난리가 나기도 했었다.  그 장면을 본 선배가 카메라에 잘 잡히는 얼굴인데다 인상적이라 생각해서 말을 건넨 거라 한다.     


    하루는 선배가 중간고사 끝나는 날 방송국에 같이 가잔다.  오, 방송국.  KBS 여의도 본관.  종종 여의도 광장에 가서 자전거나 로라 스케이트를 탈 때 보던 그 KBS.  선배는 나름 시간이 괜찮은 때를 골랐겠지만 나에게 중간고사를 준비할 정신따윈 없을 것이라는 걸 간과했다.  덕분에 중간고사를 망쳤다.  이전에도 망치긴 했지만 이번엔...  그래도 얼마 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을 읽은 덕분에 발걸음 가벼웁게 방송국으로 갔다.     


    방송국은 지나가며 보던 거랑 많이 달랐다.  우선 무척이나 컸다.  커다란 건물 안에는 미로 같은 복도들이 있었고 수많은 방들이 사방에 산재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예인이 많았다.  티비에서만 보던 배우들을 실제로 보니 정말 신기했다.  넋 놓고 연예인 구경하는 나를 선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1층 로비에서 길을 잃을 뻔 했다.  촌놈 서울 구경하느라 코 베어가는 줄 모른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었다.  나는 연예인 선배를 놓칠 새라 곁눈질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연예인 구경 하면서 따라가고 선배는 누군가를 찾아 갔다.  당시 찍고 있던 잘나가는 드라마의 담당 PD였다.  선배는 PD에게 나를 인사시키고는 뭐라 뭐라 하는데 나는 방송국 구경하느라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잠시 후 PD가 나에게 말을 한다.


- 생긴 건 잘 생겼는데...  음...  좀...  많이 시커머네.     


    헉, 흑.  내가 좀 까마귀 소리를 듣고 살기는 했지만 그렇게 대놓고 말씀하시면...  카메라 기술로 어케 안 되나요? 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무척 많이 낙심한 얼굴로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데 선배가 거들어 준다.  분장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고.  오, 우리 선배님 최고!  앞으로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PD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며칠 생각하면서 적당한 자리 있는지 보자고 하신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러려고 교회에 다니게 하셨고 연극도 미리 시켜주셨군요.  앞으로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친구들에겐 말도 안 해주고 혼자 신나 있었다.  이제 얼마 후면 난 KBS 방송국의 탤런트가 된다.  공부?  어차피 상고를 다니는 판에 무슨 그런 망측한 말씀을.  물론 어지간한 인문계 학생들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자랑하는 학교이긴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졸업하고 대학 갈 학생들은 몇 명 없을 테고 죄다 직장에 취직해 한 평생 그렇게 살 텐데.  나는 1학년에 이미 끝내주는 직장을 잡게 되었단 말이다.  크하하.  친구들에겐 티비에 나오면 그때 말해야지.  무척이나 겸손한 태도로.  그게 그렇게 되었네 하며 머리를 긁적이면 더 좋겠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내가 만난 연예인들 이야기도 해주고 싸인도 얻어다주면 나는 학교에서 완존 스타 되는 거다.  이렇게 혼자 갖은 상상을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내가 그리도 존경하고 사랑하던 선배가 그만 담배 피다 걸려서 정학을 먹었다.  담배 정도야 몇대 맞으면 될 일이었지만 지도하시는 선생님께 꽤나 심한 실수를 했었다 한다.  그리고 그게 창피했는지 정학 중에 유학을 간다고 자퇴를 해버렸다.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선배의 학과 함께 연락은 끊겨 버렸고 방송국에 찾아가봐도 땅바닥만 쳐다보던 탓에 그 PD를 찾아낼 수도 없었다.  아, 선배, 그때 왜 담배는 펴가지고.  선배가 피던 담배 연기와 함께 내 꿈도 연기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지나가버린 중간고사의 후유증으로 인해 따블로 쓰라린 가슴을 안고 한동안 교회를 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여전히 연극을 좋아하지만  반백을 넘긴 지금도 연예계 진출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의 감정이 남아 있었나보다.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만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뭘 써서 낼까 고민하다 문득 생각이 났다.  그 선배는 그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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