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싼타페 Jun 21. 2020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그게 어버버버...

    나도 꼰댄가 보다.  아이들이 성에 관한 질문을 하면 대답보다 뒤통수에서 땀부터 먼저 흐르니 말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교육도 꽤 해봤는데도 내 아이들에겐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나름 꾀를 내어 이야기 식으로 풀어 설명을 해봤다.




    (주의 – 아래의 내용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준비....... 땅.
    출발 신호가 울리자 긴장하며 출발선에 대기하던 모든 선수들이 일제히 바다로 뛰어들어.  오직 일등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지.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알아도 정확한 위치는커녕 얼마나 멀리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엄청 어려운 게임이지만 모든 선수들은 일체의 의문이나 불만을 말하지 않아.  그 많은 선수들 가운데서 자발적으로 참가하거나 참가해야할 이유를 아는 선수도 없어.  단지 출발 신호가 울리면 단 한 명의 우승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 그저 죽을힘을 다해 헤엄쳐 갈 뿐이야.  

    자유영으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선수들, 얼마나 먼지 몰라 힘을 아끼려고 배영으로 나아가는 선수들, 우승이 뭐야 난 오직 폼생폼사라며 접영을 고집하는 선수들, 다른 선수들을 보며 남들 안하는 평영을 택하는 선수들.  그렇게 선수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헤엄을 치지.  그나마 엄마라는 바다에는 파도가 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래도 옆에서 빠르게 가는 선수들을 보면 조바심이 나서 힘을 더 내보기도 하지만 승부욕이 지나치면 탈이 나듯 얼마 가지 못해 탈락하고 만다.  여기서 탈락은 죽는 거야.

    한참을 가다보면 어느새 선수들이 20% 정도가 줄어들어.  그들은 다른 방향을 선택한 거야.  누가 올바른 방향을 선택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방향을 바꿔보는 선수들도 있지만 오히려 나쁜 결과만 불러올 뿐이야.  그게 똑똑한 거야.  알 수는 없지만 왠지 이쪽이 맞는 것 같아, 아냐 이쪽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아냐 이쪽이 느낌이 더 좋아하면서 자신들이 선택한 방향이 맞기를 바라며 헤엄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꾸준하게 한 방향을 고집하면서 나아가지.  달리고 있는 선수들은 알 수 없지만 출발한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1/3 정도의 선수들이 무리한 초반 스퍼트로 인해 혹은 타고난 저질 체력으로 인해 바다 속에 빠져 죽게 된단다.  초반 스퍼트란 처음부터 온 힘을 다 해 달리는 것을 말해.

    시간이 지날수록 1등 그룹과 2등, 3등 그룹이 나눠져.  그 뒤로는 이미 가망이 없다고 봐야겠지.  경쟁도 치열해지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른 선수를 방해하기 시작해.  특히 2등 그룹에서 방해를 심하게 하고 반칙도 대놓고 해.  때론 거짓으로 편먹기도 한다.
- 야, 야, 재 좀 막아봐.
- 내가 왜?
- 공동 일등이라는 게 있잖아.  우리 둘이서 힘을 합치자.
- 그럴까?
    옆 선수의 말에 솔깃해진 선수가 바로 앞에 달려가는 선수를 방해하는 동안 정작 그 선수는 혼자 앞으로 나아가 버린다.  일타쌍피의 절묘한 수.  음, 일타쌍피는 한 가지 방법으로 두 개를 동시에 얻는 것을 말해.

    네댓 시간 정도 지나면 반 이상의 선수들이 탈락하고 남은 선수들 역시 팔을 내저을 힘도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  나아가지 않으면 죽음뿐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지.

    드디어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 하며 다시 힘을 내.  목적지를 발견한 1등 그룹은 뒤를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속도를 올려 목적지를 향해 헤엄을 쳐.  
- 영차, 영차.
- 어푸, 어푸.

    잠시 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1등 그룹.  뒤를 돌아보니 2등 그룹은 저 멀리서 힘겹게 헤엄치고 있고, 3등 그룹은 아예 보이지도 않아.  이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목적지에 있는 커다란 성 문으로 달려가는 선수들이 있어.  그리고 그 중 한 선수가 결국 성문에 먼저 도착하는 거지.

- 아빠, 그럼 그 일등한 선수가 아기가 되는 거예요?
- 아니, 잘 들어봐.

    원래 정자들이 난자를 만나려고 죽을힘을 다해 자궁 속을 헤엄치지.  수 억 마리가 출발했지만 결국 1등은 단 하나이듯 제일 먼저 도착하는 정자가 1등 선물로 난자를 가지는 게 맞지만 제일 먼저 도착했다고 승리하는 것은 아니야.  난자 주위에는 커다란 벽이 둘러있기 때문이지.  1등 그룹은 바로 그 벽을 부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결국에는 지쳐 쓰러지고 말아.  자기가 들어가기 위해 벽을 부쉈지만 정작 들어가지 못하고 2등 그룹에게 넘겨주게 되는 거지.  2등 그룹을 위해서 한 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버려.  잠시 후 2등 그룹이 도착해서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1등 그룹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자기들끼리의 경쟁이 다시 시작되지.  그 중에 가장 눈치 빠르고 행동도 빠른 정자 하나가 잽싸게 무너진 벽을 뛰어넘어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승리의 왕관인 난자를 차지하게 되는 거지.  그 순간 난자는 승자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어막 마법을 써서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리지.

- 어, 그건 너무 치사한 거 아니에요?
- 응?  뭐가?
- 1등 했는데도 상을 못 받고 2등이 받는 거잖아요.
- 으응.  그렇지.  치사하긴 하지.  원래 인생이란 게 그렇게 치사한 거란다.  하나의 세포가 인간이 되기 위한 첫 단계부터 치사하니까 그 이후에도 치사해지는 거지.
- 아빠, 그럼 사람들은 전부 1등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기가 된 것이 아니라 2등 정자와 난자가 만난 거니까 굳이 1등할 필요가 없겠네.
- 응???

    아니, 성 교육을 한다고 한 건데 왜 결론이 이상하게 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것들이 출발선에 서서 출발신호를 받는 과정들을 설명해달라고 하면 어쩌나.  책이나 보라고 해야 하나.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의 새내기 작가 길들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