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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16. 2020

브런치의 새내기 작가 길들이기

아, 관종의 DNA여!

    브런치를 시작하지 40여일이 지난 지금 나는 브런치의 길들이기로 짐작되는 수법에 완전히 말려들었다.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조회수 폭발로 인해...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해묵은 상처들을 치유해보고자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과거들을 꺼내어 글로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간 용서와 이해의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방황하던 이야기를 써보기로.  가해자에 대한 용서와 이해를 위해, 피해자인 나 자신에 대한 용서와 이해를 위해...  나아가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을 객관화하고 좀 더 친숙해졌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아직 통증이 적잖게 남아있어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려 허구로 포장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옮겨가고 있는 와중에 마무리 단계에서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그간 막연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만 있었던 이해되지 못한 상처는 글로 표현되기에 커다란 무리가 있었다.  이제와 왜 상처가 생겨나게 되었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뼈아픈 고민 없이 그냥 마무리하기에는 억울도 하고 이미 8편을 올린 터라 시기적으로도 늦었기에 모두 잠든 사이 해묵은 감정들을 끌어올려 마주 대하기 시작했다.  십 수 년을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날뛰기 시작했고 당황한 나는 도무지 제어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이틀에 한 편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겠다는 다짐이 허사로 돌아갈까 틈틈이 써놓은 글 가운데 하나를 올려 하루 이틀 시간을 벌어보려 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날뛰는 감정들을 다스려보고자 했는데 아, 이런 된장.  대충 쓴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다듬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글이 그만 조회수가 터져버렸다.  브런치 고수 작가님들에겐 평상시 조회수에 불과하겠지만 나 같은 초보에겐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7,000
    하루 만에 조회수가 7,000에 달하더니 이튿날엔 5,000을 더해주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웬 순대’는 누적 조회수가 13,000을 넘어섰다.

    앞으로 두 편만 더 쓰면 끝나는데, 침착하게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워야 하는데 계속해서 울리는 브런치 알림은 도저히 집중을 못하게 만들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한 자세로 감정을 억제하고 객관화해야만 하는 중요한 단계에 서 있던 나로서는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이 짜증이 나 알림 설정을 꺼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알림만 울리면 얼른 앱을 열어 이번엔 무슨 알림일까, 조회수가 얼마나 올랐나, 새로운 댓글은 어떤 내용일까 확인하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결연함을 나타내야할 내 입 꼬리는 귀에 걸려 대롱대롱 거리며 혼자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다.  아, 이 얄팍한 인간아...

    도무지 글에 집중할 수 없어 노트북을 아예 덮어버리고 폰을 들고는 커피 한 잔 내려 머그컵에 담아 편안한 소파에 반쯤 누워 올라가는 조회수를 즐기기 시작했다.  며칠 전 큰맘 먹고 샀던 에이스 크래커와 함께...  신난다.  재미난다.  조회수가 올라가면서 내 심장박동수도 함께 올라간다.

    한편으로 ‘근데 왜 내 글이 이렇게 된 거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글의 완성도를 파악할 실력도 없으니 조회수가 올라가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떠한 꼬투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댓글에 문장이 좋아요, 흡입력이 있어요라는 칭찬에 아무리 글을 살펴보고 살펴봐도 어디를 두고 그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내 실력이란, 정말 울고 싶다.

    여러 브런치 작가님들의 조회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다.  ‘알 수 없는 추천 기준’, ‘파악할 수 없는 전파 경로’, ‘브런치 팀의 음모’ 등등...  그 가운데 ‘브런치를 떠나 수 없게 하려는 운영팀의 술수’라는 표현이 가장 크게 공감이 간다.

    어렵고 힘든 구간을 써나가고 있던 나에게 브런치는 계속해서 메시지를 던진다.  조회수라는 어마 무시한 무기를 이용해서.  메인 화면에 띄우고, 인기 글에 띄우고, 여기저기 막 띄우면서 조회수를 올려 일관된 메시지를 전한다.  가 쓰고 싶은 글보다 남들이 읽고 싶은 글을 써.  조회수를 봐봐.  가 쓰고 싶은 글은 쓰기도 어렵고 조회수는 바닥을 칠 뿐이야.  네가 힘들여 쓴 글들이 조회수가 얼마나 되는지 잘 알잖아.  쉽게 쓰고 조회수를 즐겨.  너에겐 관종의 DNA가 있잖아.


    하아...  그래, 관종의 DNA.  나에게 관종의 DNA가 있음을 나보다 브런치가 더 잘 알고 있었구나.  브런치는 그런 나의 DNA를 자극하여 길들이고 있었구나.  브런치에 충성하라고.  브런치에 뼈를 묻으라고.  그런데 거부할 수가 없다.  외면할 수조차 없다.  아니, 솔직히 거부하기 싫다. 외면하기도 싫다.  귀를 통해 들리는 음성이라면 차라리 손으로라도 귀를 막을 텐데...  DNA를 자극하는 브런치의 초슈퍼울트라하이테크널리지 수법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경외심마저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안의 보이지도 않는 관종의 DNA는 좋단다.

    아, 나는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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