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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06. 2020

외로워서 사랑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는 불 꺼진 집이 싫다.  살 무렵부터 그랬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어 손의 감각만으로 스위치를 찾아야 하는 것도 싫었고, 바로 안  켜지고 꿈뻑꿈뻑 게으름을 피우며 거만하게 불을 밝혀주는 형광등도 싫었다.  아무도 없어 차가워진 공기가 내 몸을 감쌀 때면 한 겨울 처마 밑에 달려있던 고드름이 살짝 녹아 내 목덜미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몸서리 쳐지는 그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면 늘 불이 꺼져 있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집을 뒤로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곤 했다.  때로는 당구장으로, 때로는 만화방으로, 카페로, 교회로 그렇게 정처 없이 동네를 배회하곤 하였다.  술이라도 마실 줄 알았다면 아마도 일주일에 일곱 번 이상은 마셨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의 온기가 필요할 때면 어디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라면 기꺼이 찾아갔는데, 그 가운데 만화방은 최고였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곳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만화책을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성비는 최고였다.  정신없이 만화의 세계에 빠져들면 내가 외롭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러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자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면 집으로 들어가 불도 켜지 않고 씻지도 않고 낮은 포복으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출근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퇴근 무렵이면 동료들의 눈치를 살폈다.  술은 못 마셔도 안주는 잘 먹으니 따라갈 셈으로 안테나를 돌려보지만 안주발만 세우는 나는 잘 안끼워줬다.  하긴 나라도 안끼워주겠다만은 섭섭한 건 섭섭한 것이다.  가끔 동료들의 술자리에 참석이라도 할라치면 너무나 좋았다.  코 끝을 톡 쏘는 쏘주의 그 진한 향기는 온 몸을 흔들어야 겨우 떨쳐낼 수 있었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대화에 집중했다.  다들 얼큰하게 취해 발음이 부정확해질 즈음이면 주변의 손님들 목소리도 커져가는 기이한 현상으로 집중하기가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시간이 지나 헤어질 때면 아쉬움에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었지만 맨 정신으로 취권을 구사하는 동료들을 감당할 수 없어 다음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결혼한 동료들이 집 대신 술자리로 향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랑 놀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때론, 아니 무척이나 자주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나를 보면 반가워 해주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도 편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오직 나만을 위해 정성스레 밥을 차려주고, 함께 먹어주고,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으면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서로의 귀에 이어폰을 한 쪽씩 끼고선 같은 음악을 듣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산책을 다닐 수 있는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과 함께 영화 속의 장면들을 연출해 보고 싶었다.  

    아니, 솔직하게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기 보다는 그저 지금의 외로움을 떨쳐 버리고 싶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그런 사랑을 상상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지금의 외로운 감정을 잊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까싶다.  외로움이 나의 온 몸을 감싸고는 살가죽을 찢으며 감춰진 내면의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는 지금 아름다운 상상으로 방어해보려는 어설픈 계책이 아닐까싶다.  누군가와 만나서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사무치기에 만나려는 것은 아닐까.  
    배우자와 성격이 안 맞아서 가치관이 안 맞아서 이혼을 생각하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그래도 잘해보자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밀려오는 거센 감정의 물결들이 두려워서는 아닐까.  아이들 생각해서 참았다는 말은 내가 겪은 외로움의 시간들을 아이들에게는 주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닐까.

    나도 막상 결혼 해 보니 알게 되었다.  나만을 위해 밥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바램은 내가 가족을 위해 밥을 차리는 걸루 강제 변경되었고, 무릎에 머리는 개뿔, 설거지하기도 바빠 죽겠구만.  이어폰을 한 쪽씩 끼고 음악을 들어 본 적도 없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어서...  간만에 책 좀 읽을라치면 아내랑 아이들이 불러대는 통에 손에 든 책을 집어던진 것은 몇 번이었던가.  화장실에까지 쫓아와서 불러대니 이거 참 난감할 때가 한 두 번도 아니고 정말 못살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한 둘도 아니고 셋이나 있기에, 밥 먹을 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고 대가리 들이밀고 젓가락 싸움하는 시끌법석한 분위기가 너무 즐겁다.  잘못해서 엄마한테 혼나고 나한테 와서 엄마 혼내달라는 아이들이 도대체 왜 나를 위험에 빠뜨리려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가끔 아주 가끔 가족들을 피해 밖으로 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에도 내 머리 속엔 온통 가족 생각뿐임을 발견하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는 내 발걸음이 경쾌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을 하나보다.  사랑을 하는 것이 외로워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서.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만나면 행복하여도
헤어지면 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못견디게 가슴 저리네
비라도 내리는 쓸쓸한 밤이면

남몰래 울기도 하고
누구라도 행여 찾아오지 않을까

마음 설레어 보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 이 정선의 ‘외로운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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