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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03. 2020

믿으라, 일반화된 속설은 진리다

운전 교습 실패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기를 아내에게는 절대로 운전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세상의 속설에 넘어갈 만큼 성질이 못되지 않았고 대단히 가정적인 사람이라 믿었다.  결혼 후 10년간 아내에게 반말을 해본 적이 없으며, 욕은 물론이거니와 때려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그 세 가지를 운전을 가르치며 다 해봤다.       


    아내는 타고난 기계치에 길치다.  집에 뭐가 고장 났다 싶으면 늘 범인은 아내였고 아이들 장난감은 죄다 아내가 고장내버려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지금은 아이들도 그러려니 하고 산다.  지금은 브라질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만 5개월째인데도 혼자 자신 있게 갈 수 있는 곳은 마트와 교회 뿐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직장 집 마트 정도만 왔다 갔다 하기도 하니 그 정도면 양호한 것 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내의 방향감각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트와 우리 집 사이엔 달랑 건물 하나뿐이고, 교회는 아파트에서 좌회전해서 두 블록 내려간 후 다시 좌회전 후 두 번째 블록에 위치해 있다.  이 얼마나 쉬운 코스인가.  이 코스를 알려주기 위해 마트는 일주일 교회는 두 달 걸렸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알려준 코스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길로 가면 길을 잃어버린다.  핸드폰에 있는 구글 맵에 저장도 해줬는데 문제는 봐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  모르는 사람은 귀엽다 보호본능을 일으킨다고들 하지만 막상 같이 살아야 하는 나는 심히 괴롭다.     


    그런 아내가 브라질행이 결정된 후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댄다.  남들은 죄다 운전면허증이 있는데 혼자 없다는 둥 브라질에 가면 자기도 운전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둥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졸라대지만 그때마다 나는 브라질가면 죄다 운전면허증이 없으니 창피할 이유 없고 브라질에서 운전할 일도 전~~~혀 없으니 걱정 말고 기사 딸린 택시를 이용하라고 타일렀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애교에 넘어가 버렸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아내의 애교는 마치 폭력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결국 한적한 공터에서 시동을 켜는 방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범생 출신인 아내는 그걸 또 노트에 적는다.  후...  운전석에 앉아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게 하고는 시동을 걸고 끄는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하게 했다.  다음 날 아내는 자연스럽게 전날 연습한 시동을 걸지 못했다.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참았다.  다음에 또 무엇이 나올지 모르니 아껴 두어야만 했다.  삼 일만에 시동을 마스터 했다.  기어 넣는 법은 오토 차량이니 생략하고 다음은 핸들 안 잡고 가속 안하고 앞으로 조금 가보기와 가속 페달 안 밟고 전진하기는 일주일 걸렸다.  핸들 잡은 채 움직이지 않고 가속페달을 살짝 밟아 보기, 천천히 큰 원 그리며 돌기, 정지하기로 약속한 곳에서 정지하기 등등 필요한 내용들을 주 5회 수업으로 총 6개월간 가르쳤다.     


    그동안 아내는 필기시험에 합격을 했고 코스 시험을 위해 차량이 드물고 심야에도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공장 지대에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제법 잘 따라온다.  그래서 내가 착각을 했나보다.  코스에 합격한 아내를 주행 연습 시키는데 지금까지 아내가 보여준 능력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100m 쯤 앞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정지했다가 가라고 했는데 1차선에서 출발한 아내는 3차선 끝에 있는 보행자 신호등을 향하여 스커드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달려간다.  아내는 직선 코스라서 핸들을 꽉 붙잡고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단다.  차가 그렇게 간 거라며 우기기 시작한다.  올라오는 열기를 꾹 참고 연습을 이어갔다.  한 시간째 차선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는 아내보다 참고 있는 내가 더 대단하게 여겨졌다.       


    결국 일이 터졌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해서 마지막으로 저 앞에 보이는 신호등까지만 가자하고는 출발 시켰다.  역시나 아내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신호등을 향해 갔다.  그런데 신호등이 가까워 가는데도 속도가 줄지를 않는다.  속도 줄여야지 하며 알려주는데 알아 하면서도 줄이지를 않는다.  결국 신호등이 5m, 4m, 3m 앞까지 오자 내가 볼륨을 높여 속도 속도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내는 내 다급한 소리에 페달을 꾹 눌렀다.  가속 페달을.  다행히도 신호등을 들이받지는 않았다.  대신 공장 담벼락을 들이받았다.  순간 참았던 열기가 뚜껑이 열리고 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폭발해버렸다.  야, 너는 아직도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도 구분 못하냐며 처음으로 반말을 시전 했고, 검지와 중지에 힘을 넣어 아내의 머리를 찌르며 바보야라고 욕까지 했다.  아내는 나 안 해 하며 차에서 내리더니 뒷자리로 가 앉는다.  안한다는 말을 해주는 아내가 오히려 고마웠다.     


    하지만 아내의 포기 선언은 두 달도 가지 못했다.  두 손 모아 싹싹 빌며 이번엔 잘 할 자신이 있으니 다시 가르쳐 달란다.  그 날 잘못한 것도 있어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잘 한다.  말만 하면 척척 이다.  서야 할 곳에 정확하게 서고, 속도도 적당하며 차선도 제법 잘 지킨다.  아내는 신이 나서 주행 시험을 신청했다.  일주일간 열심히 연습하더니 정말 합격까지 해버렸다.  신이 난 아내는 자기가 운전하며 가겠다고 한다.  이젠 거리낄게 없으니 나도 그러라 했다.       


    별 말 없어도 제법 운전을 하는 아내를 뿌듯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앞에서 신호가 바뀌며 차들이 정지를 한다.  아내도 서서히 정지를 하는데 거리를 잘 못 쟀나보다.  예상한 위치에서 섰어야하는데 자꾸만 앞차와 가까워지니 당황한 나머지 가속 페달을 밟아버렸다.  얼른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앞 차로 갔다.  된장, 에쿠스다.  앞 차량의 운전석을 앞에서 창문을 두드리고는 죄송하다고 고개부터 숙였다.  창문이 열리자 여성 운전자가 보였다.  많이 놀랐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 아내와 내가 간호계통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피해 운전자를 살뜰하게 보살펴 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우리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꼈는지 오히려 우리에게 걱정 말라며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호의로 뒤처리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500도 안 들었다.  아내가 면허를 딴 날이라 미처 보험에 아내 이름을 올릴 생각도 겨를도 없었던 탓에 생돈이 날아갔다.  아흑, 내 피같은 500.     


    아내는 대형 사고를 쳤으니 단단히 혼 날줄 알고 잔뜩 긴장해 있었다.  앉으라고 하고는 말해 주었다.  배울 때는 혼도 나고 하면서 배워야 잊어버리지 않으니까 그런 거고 진짜 사고 났을 때는 화를 내봐야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화를 낸다고 해서 사고 난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과거로 되돌아 갈 수도 없는데 뭐 하러 화를 내나.  당신도 이미 마음고생 꽤 했을 테니 비싼 경험했다고 생각하라고.  그나마 사람 크게 안 다친 것만 해도 감사하자고.  아내는 크게 감동했는지 그날 이후로 밥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지만 사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게 감사했다.  단지 아쉬운 건 한동안 외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후 아내는 한 달간 두 번의 사고를 더 내고는 지금까지 운전대를 잡아보지 못했다.     


    나 역시 보통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왜 부정했을까,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말리는 일을 감행했을까.  돈만 잡아먹고 운전도 안하면서 장거리 뛰는 나를 위해 조수석에 편히 앉아 주무시는 아내가 갑자기 얄미워진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성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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