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브런치 생활 두 달이 되었다.
처음 시작은 내 안에 오랫동안 묵혔있던 바람에 삭을 대로 삭아 악취를 풍기는 고약한 상처들을 글을 통해 풀어내 보고자 했던 것인데 공모전이 있다는 안내를 보고 호기 반 호기심 반으로 접수를 해버렸다. 공모전에 참가하려니 작가 신청을 하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는데 그게 뭔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신청했다. 예전에 블로그에 올려놨던 글과 사진을 제출하고 자기소개 조금, 앞으로의 계획 대충 써서(솔직히 계획은 쓰지도 않고) 신청 아이콘을 클릭했다. 사흘 후 작가 심사에 합격했다고 메일이 왔다. 아, 별거 아니었구나 하는 무지에 기반한 착각을 제대로 장착한 채 하루 동안 글을 쓰고 하루 동안 수정하여 공모전 신청을 했다.
겨우 이틀간의 노력(?)으로 공모전 작품이랍시고 뚜닥뚜닥 만들어 냈으니 정말이지 하루 강아지 겁 없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예전에 그림을 잠시 배울 때 무려 두 달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 있다. 그럼에도 서툰 솜씨들이 여실히 드러나 실력의 한계와 좀 더 시간을 들여 조심스레 그렸어야 한다고 초보 화공의 아쉬운 푸념을 내뱉었다. 빨리 그림을 완성하고픈 욕심이 나를 재촉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도 공모전 출품작에 고작 이틀이라는 시간을 공 들였다. 공을 들여 봐야 얼마나 들였을까. 마음에 공(空)을 담고 글에 공(功)을 담았어야 했지만 작가 지망생은 분명 바꿔 담았을 것이다. 공모전에 덜컥 당선되었다는 허황된 상상조차 못할 만큼 서툰 솜씨니 탈락은 기정사실. 다시 읽어봐도 얼굴이 화끈 거릴 만큼 허접한 글이기에 발행 취소 아이콘을 클릭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못난 글보다 그런 글을 읽고도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이 있어 매번 취소 아이콘 클릭하기를 취소한다.
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분들도 많고, 필력이 상당하신 분들도 많은 브런치. 하루에도 몇 번씩 감탄하며 빠져드는 글들을 읽고 있자면 내심 부러움이 고개를 든다. 나 역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오래 되었지만 계속 쓴 것도 아니고 몇 번 쓰다 몇 년 쉬고 또 몇 번 쓰다 몇 년 쉬기를 반복했다. 글을 썼다기 보다는 가끔 분위기에 휩쓸려 한 번씩 손을 대보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천재적인 재질 역시 전무하기에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작가의 꿈을 제대로 꿔보자 마음 먹은 게 지금에 와서니 무슨 노력이 있었겠나.
그래도 두 달간 꾸준히 밤을 새워가며 글을 썼다. 낮에 쓰고 밤에도 썼으면 좋았겠지만 낮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불러대는 통에 영 집중할 수가 없어 그리된 것뿐이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 패턴이 형성되어 툭하면 아내에게 타박을 받고 있지만 어느새 발행한 글들이 40편이 넘는다. 3일에 두 편 정도니 적지 않은 양이다. 그러다보니 우연찮게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글들이 조금 아주 조금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자판의 신이 임하여 정신없이 써내려간 글들이 그러한데 나는 아직도 그 글들 어디가 그리 예뻐 보였는지 모른다. 나름 정성을 기울였고 수십 번의 퇴고 과정을 거쳐 완성시킨 글들은 영 인기가 없다. 내 새끼 내 눈에만 예뻐 보인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얼른 실력을 쌓아야 어디가 잘 못되고 어디가 잘 된 것인지 알게 될 것이고 퇴고도 제대로 해낼 텐데.
한 번의 공모전 탈락으로 덜컥 겁을 먹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겁이 없다. 이미 한 차례 공모전에 출품했고 또 다른 공모전에 출품할 글들을 쓰고 있다. 당선을 살짝 기대케하는 내 눈에만 예쁜 아가들이 있긴 하지만 워낙에 많은 기라성 같은 작가님들이 계시기에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 중이다.
공모전에 공을 들이는 것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작가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어찌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주하는 것에 겁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습작으로 소설을 쓰다가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종종 그러긴 하지만 그때는 제법 힘이 들었다. 힘을 내 마주하여 하나씩 파헤치다보니 해묵은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느꼈고 글 쓰는 재미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특히 내면의 상처들이나 못난 자아와 관련된 주제들이 튀어나오면 여전히 두려움이 앞선다. 좀처럼 글을 쓰지를 못하고 쓰더라도 표현이 영 어색해서 몇 번이고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다른 작가님들의 표현을 참고하려 해도 컨닝한 것을 들킬까 겁내는 소심한 수험생인양 얼른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문제를 푸는 척한다. 그리고는 어려운 문제들을 남겨놓고 쉬운 문제들을 먼저 푼다. 성적을 조금이라도 잘 나오게 하는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나는 지금 좋은 성적을 받으려하는 게 아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만 굳게 닫힌 방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건너 갈 열쇠를 얻게 되는 것이니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데 그 어려움이 자꾸 성적이라는 안경을 쓰고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글들을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나만의 표현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이 갈수록 어렵게만 느껴져 자꾸만 내 시선이 타인에게 쉽고 재미있게 읽혀지는 글들을 지향한다. 그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건만 가야할 길을 가지 않고 좀 더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처럼 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좀 더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은 종종 현명한 선택이 되기도 하지만 정석을 저버린 선택은 회피에 불과할 뿐이다.
고민 끝에 예전에 그림 그리던 것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데 적용을 해보기로 했다. 그림을 그릴 때 이미 완성된 그림을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하듯 그렇게 머릿속에 완성된 글을 상상하며 조금씩 그리다보면 완성되겠지. 어렵겠지만 어차피 쉬운 길은 어디에도 없질 않은가.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한 지가 두 주 째. 조회수가 두 달 전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다시 오르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말고 하자. 그래도 두 달 전에 비하면 엄청 유리한 고지에 서있는 것이다. 내게는 이미 2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있지 않은가. 푸하하하.
내친 김에 이 기분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탐스러운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 한 마리가 친구들과 재미나게 노는 꿈이라도 꾸는지 입가에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다. 그러다 문득 하품을 한다. 아, 강아지 하품하는 소리가 들린다.
두 달만에 완성한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