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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07. 2020

#5 신비한 거울

거울은 어디로

    영환과 진태는 깨진 거울 대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동전들에 넋을 놓고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본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기에 함께 본 상대를 통해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서로의 표정에서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다시 바닥의 동전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서로를 얼굴에 쓰여진 표정을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였지만 바닥의 동전들은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니 본래의 모습이라기보다 깨어져버린 거울의 모습이다.  두 사람은 더욱 놀라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 분명 동전들이었는데.

- 그죠, 우리 잘 못 본거 아니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가 보았던 동전들의 존재에 대해 확인을 해보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깨진 거울의 파편들뿐이다.  그래도 영환은 세월을 제법 경험한 터라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아들 진태를 위해 말을 꺼낸다.

- 이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분명한 것은 내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야.  이런 건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줄 뿐이야.

    진태는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런 진태의 혼란을 알기라도 하듯 영환은 다시 한 번 진태를 타이른다.

- 진태야, 이건 분명 사람을 미혹시키는 힘이 있어.  이왕 깨진 거울 다시 붙일 수도 없으니 아쉬움 갖지 말고 버리자.

    진태는 깨져버린 거울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이킬 방법은 없을 것이라는 영환의 말에 동의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걱정부터 든다.  깨진 거울을 바라보며 어찌할 줄 모르는 진태를 뒤로하고 영환은 깨진 거울들을 더욱 잘게 부수어 쓰레기봉투에 쓸어 넣는다.  혹여 청소부들이 봉투를 들다 손이라도 베이면 안 되지 싶어 종이로 몇 겹을 덧씌운다.     


    우식은 오늘도 주린 배를 잡고 골목길로 접어든다.  골목길에 먹을 것은 없지만 가끔 제법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쓰레기 취급을 받고 버려지기 때문이다.  가끔 마음씨 좋은 아줌마라도 만나면 천 원짜리 지폐 한두 장은 얻기도 하기에 낮에는 늘 골목길을 전전한다.  그런데 오늘은 영 소득이 변변찮다.  골목에 내놓은 돈이 될 만한 가전제품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장마다 꼴뚜기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벌써 며칠째 우식은 허탕만 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우식의 눈에 방금 쓰레기를 버리는 소리를 들었다.  제법 묵직한 소리가 나는 게 뭔가 돈이 될 만한 것도 섞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걸음이 빨라졌다.  쓰레기봉투 안에는 종이로 감싼 무언가가 들어있을뿐 다른 것은 섞여있지 않았다.  우식은 이런 봉투에는 종종 돈이 될 만한 것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기에 종이를 찢어 내용물을 확인해 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깨진 거울 조각들이 들어있을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거울 조각들을 싸고 있던 종이를 들고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순간 우식은 눈에 이물감이 들어 쥐고 있던 종이를 버리고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손이 어느 부위를 지날 때면 유독 따가운 것이 작은 거울 파편이 들어갔나 보다.  이럴 땐 손으로 비비면 더 큰 상처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식은 한 쪽 눈을 감고는 눈물이 고이기를 기다렸다.  눈물이 흐르면서 거울 파편도 함께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행히 파편이 그리 크지는 않은 듯하다.  잠시 후 눈에는 여전히 이물감이 남아 있지만 따끔거리는 통증은 사라졌다.

    우식은 소득 없이 일어나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서둘러 다녀야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을 테니 아무 것도 없는 두 손을 마주 쳐 터는 시늉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하늘이 우중충허니 비라도 내릴 듯 싶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보석들이 하늘에 뿌려져 있다.  바람마저 불지 않으니 오늘은 밤에 춥지는 않겠구나 싶다.  그나저나 잘 때 고생하지 않으려면 뭐라도 뱃속에 집어넣어야 할 텐데 하며 식당들이 밀집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걷다 보니 골목 입구에 앉아 뭔가를 먹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보니 종종 마주치던 한 씨였다.  길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서글픈 인생들이기에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보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어 그저 한 씨라 부른다.  우식 역시 김 씨라 불리고 있다.  한 씨가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우식을 발견하고는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안 그래도 한 씨 쪽으로 가던 중인데 자기에게 오라는 듯 손짓하는 한 씨를 보고는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싶었다.

    한 씨 옆에 선 우식은 막장에서 막 나온 광부의 얼굴 뒤로 밝게 웃고 있으면서 건네주는 도시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깨끗한 포장상태를 보아서는 결코 쓰레기통에서 주을 수 없는 것이었고 훔칠 수는 더더욱 없는 편의점 도시락이다.  한 씨는 이미 하나를 반 이상 먹은 상태였고 앉아있는 자리 오른 편에 또 하나가 있으니 총 세 개의 도시락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묻는 우식에게 오늘 개업한 편의점이 있는데 주문을 실수해서 도시락이 많이 들어왔다고, 그래서 많이들 나눠주었다고.  

    오늘 정말 횡재한 날이라며 밝게 웃는 한 씨를 보니 그냥 지나치며 볼 때는 몰랐는데 제법 인물이 훤하다.  함께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제법 배운 티가 확연했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라고 원해서 그리 되었겠나 괜한 말 꺼내어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 싶었다.  하지만 한 씨는 묻지도 않은 내력을 술술 꺼내기 시작한다.  거리에 나앉은 지 벌써 2년째지만 내가 과거에는 어쩌구 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음에도 다른 이들을 깔보는 이는 종종 보았어도 자신의 잘못들을 꺼내며 후회하는 이는 우식은 처음 본다.  사연 많은 인생사를 덤덤하게 풀어내는가 싶더니 이내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한 씨를 보며 우식은 내심 당혹스러웠지만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말없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 허, 내가 무슨 주책을...  김 씨 눈을 보자니 왠지 마음을 털어놔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만 실례를 해버렸네.  미안하오.

    한 씨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서둘러 변명을 해본다.  사실 한 씨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지만 김 씨의 눈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왠지 자신을 이해해 줄 것 같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김 씨의 눈에선 자신을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것 같아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빗장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던 한 씨의 빗장이 풀려졌다.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어깨를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한 씨는 큰 힘을 얻는 듯 했다.

    우식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하는 신세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작은 몸짓 하나로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 한 씨를 보니 가슴 한 켠이 뿌듯해져 옴을 느낀다.  한 씨의 사연을 듣다보니 거리로 내쫓기던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 가슴이 쓰려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한다.  형편에 상관없이 아파하는 이들이 있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이들 또한 주위에 존재한다.  때론 그 둘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우식 자신도 고통 가운데 몸부림치면서도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지 않은가.

    우식은 자기 자신과 한 씨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달리 보이고 사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우식의 마음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식의 눈에 들어간 거울이 우식이 보는 것들을 거울의 시각으로 보게 만든 것이었다.       


    장난의 신 로키가 거울을 만든 것은 사실 인간들을 골탕 먹이려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  로키 역시 신의 하나였기에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어야하는 신의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로키는 인간들이 세상과 삶의 본질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돕는 거울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난끼 많은 로키는 늘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습성이 있어 거울의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았고 사용법을 모르는 인간들은 거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었다.  

    거울에겐 인간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힘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이미 주어진 힘이다.  거울은 단지 신이 세상을 만들면서 바라보았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고 감춰진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줄 뿐이다.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을 발견한 후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에 사로 잡히느냐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느냐 하는 선택은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 에필로그

    습작이긴 하지만 나름 구조와 표현에 대해 살짝 고민을 했다.  산만한 아이디어들로 인해 산으로 바다로 룰루랄라 휘파람 불며 가버리는 글을 붙잡으며 이게 뭔 고생이냐 싶기도 했다.  좀 더 노력했으면 좋았겠지만 내 실력이 노력한다고 될 만한 것도 아니기에 한 동안은 이렇게 내 안에 담겨있으리라 믿고 있는 순수한 글들이 나오기까지 펌프질을 해댈 생각이다.  한참 펌프질을 해대다 보면 먹지도 못할 더러운 물들이 모두 나올 것이고 그 후엔 시원하고 깨끗한 생수가 나오겠지 하면서.  그렇게 오늘도 열심히 작두 펌프의 손잡이를 잡고 한없이 사정해본다.

    글을 얼렁뚱땅 마무리 지으면서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거울은 깨져 돈으로 변했는데, 돈은 깨지면 무엇으로 변할까?


----------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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