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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18. 2020

# 편지 다섯 - 결혼해주시겠습니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들 하지 않소.  어려운 말이라 잘 이해는 안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소이다.  어려서는 가족들과 함께, 커서는 친구들 혹은 동료들과 함께 삶을 이루어가고 마침내는 가정을 이루면서 각자만의 삶을 만들어 가지 않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보면 서로의 역할들이 모여 큰 일들을 해내곤 하듯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소.          


    매일의 삶이 행복과 고통들이 섞여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시련 역시 그 무늬를 더해주는 재료가 되더이다.  그대가 그린 조각들과 내가 그린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가며 모자란 부분들은 또 그려가며 그렇게 퍼즐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하오.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그 퍼즐의 완성을 기뻐하지 않겠소.  완성된 퍼즐이 어떤 모습일지 아직도 궁금하긴 하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일거라 믿소.     


    어쩌면 그런 과정과 결말을 기대하며 그대에게 청혼하였나 모르겠소.  그대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다우며 모든 것이 기쁨일 것이라 여겼소.  그대가 정성스레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고, 그대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면 비록 동네 어귀일지라도 평화롭고 한적한 유럽의 어느 이름모를 시골 마을일 것 같았소.  홀로 그리움에 지쳐 잠들지 아니하고 나란히 같은 이불 덮고 함께 잠들 수 있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그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가장 설레는 일일 것이라 여겼소.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그대 얼굴을 보고, 직장에서 하루종일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다 집에서 기다릴 누군가를 생각하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맛은 참으로 일품일 것이라 생각했소.  집에 와 그대와 저녁을 먹고 함께 산책하며 함께 노래하며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어느 영화에서조차 담아내지 못하는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오.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서 모래놀이하고 주말이면 한적한 시외로 나가 흐르는 시냇물에 발 담그고 서로 물장구치며 노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는 유토피아가 아니겠소.  혹여 몸이 아파 고통 중에 있을 때 먼저 달려와줄 사람은 가족 밖에는 없을 것이고 밤을 새워가며 두 손 부여잡고 간호해줄 이도 가족 뿐일 것이오.  그런 때야말로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겠소.  그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에 함께 있기를 바라는 이가 바로 그대였다오.     


    그랬기에 그대에게 결혼 해달라 하리라 다짐하였소.  하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리기를 얼마나 했었는지 모른다오.  혹여 거절한다거나 좀 생각해보자 하면 어찌해야 되나 싶어 안절부절 못하기도 했었고 간혹 좋은 기회들 놓치고 집에 와 바보같은 놈이라며 제 머리 쥐어박았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르겠소.  그러다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내어 더듬거리며 ‘나와 결혼 해 주겠소.’하며 손에 든 반지를 보여주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제발 난처한 표정일랑 짓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다오.  


    다행히 그대 그런 내 손에 든 반지를 보며 말없이 눈물 흘리며 안겼다오.  말없는 그대의 대답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꾸며진 대답보다 더욱 화려한 화답이었소.  한참을 그리 안겨있다 떨어져서는 그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밀며 끼워달라는 말에 내 손이 다 떨려 두 번이나 반지를 놓치지 않았소.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너무 근사하다고 너무 예쁘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던 모습은 그 어떤 무용 선수들보다 아름다웠다오.  값나가는 다이아 반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련된 디자인도 아닌 그저 평범한 금반지 일 뿐이었지만 그대 그렇게 기뻐하며 행복해 하였더랬소.     


    반지를 껴줄땐 그리도 떨리더니 껴주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담담해져 내심 놀라기도 했지만 이럴 때 떨지 않고 준비해둔 말들을 해 줘야겠다 싶었소.  내 그대에게 많은 것들을 해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눈물만은 흘리지 않게 해주겠소.  절대 한 눈 팔지 않겠소.  홀로 어려움 감당하지 않도록 해주겠소.  홀로 있어 외로움 느끼지 않도록 늘 함께 있어주겠소.  지금은 가진 것 없는 처지이나 열심히 일해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기도하고 고기도 구워먹을 수 있는 좋은 집 하루라도 빨리 마련해 주겠소.  그렇게 당신 듣기 좋은 말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내 진심을 담아내려 며칠간 궁리해온 말들을 쏟아내니 그대는 가만히 듣고 있다 제가 필요로 할 때 같이 있어주시면 족해요 하며 말하더이다.   

  

    지금에 와 따져보니 그대는 이미 그것들이 그저 공염불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보오.  필요할 때 같이만 있어주면 된다고 말한 것을 보니 말이오.  혼자 신이나 많은 약속들을 남발했건만 정작 지킨 약속이라곤 절대 한 눈 팔지 않겠다는 것 달랑 하나 뿐이었으니 참으로 면목없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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