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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20. 2020

# 편지 여섯 - 그대 나의 신부가 되어

    순결을 상징한다는 순백색의 웨딩 드레스로 고이 감싼 그대가 들어올 때 난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오.  웨딩 마치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마치 천사가 구름을 타고 오는 듯 하더이다.  그대 손을 잡고 함께 들어오시던 아버님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더구료.  새하얀 면사포 뒤로 보일 듯 말 듯한 그대의 얼굴은 슬픔에 찬 듯 감격에 붇받힌 듯 헤아릴 수 없는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오.  아버지의 손을 살며시 붙잡은 그대 손이 파르르 떨리니 손등을 반쯤 덮은 화려한 레이스도 함께 떨리더이다.  바닥까지 끌리는 드레스 밑으로 살짝 살짝 내비치는 하얀 구두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서있는 줄 여길만큼 그대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오.  걸음 걸음마다 혹여 넘어질까 조심스레 내딛던 그대는 어릴 적 아빠 손을 잡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오.     


    많은 하객들의 축하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몇몇 친지들은 눈물을 연신 훔치더이다.  그 사이를 지나 내게로 오는 그대에게 화려한 조명이 눈부시게 비춰주었지만 내 보기에는 그대가 또 하나의 조명인 듯 싶더이다.  조명으로 인해 그대 모습이 반쯤은 흐려져 보여 몽환적이기까지 했다오.     


    마침내 내 앞에 선 그대.  아버님으로부터 그대 손을 넘겨받는 순간 그대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알았다오.  파르르 떨리던 그대의 손은 그대 심정을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어 나마저도 떨리게 하였소.  얼마나 떨었던지 그대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려다 그만 걸려 넘어지고 말았잖소.  하객들의 웃음보가 터져 한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놀리던 친구들의 목소리도 들리더구료.  덕분에 긴장한 탓에 바짝 굳어있던 낸 몸이 조금은 부드러워지더이다.  그대 역시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렸는지 면사포 사이로 슬쩍 웃는 것을 내 보았더랬소.     


    한 시간 남짓한 예식이었지만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내 손을 붙잡던 그대 손에 가끔 힘이 주어지던 것을 보니 그대 역시 힘이 들긴 들었나 보오.  축사 말씀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던 그대를 보며 차마 안아 줄 수는 없어 손이나마 꼭 쥐어주곤 했는데 그대 알아듣기라도 한 듯 함께 힘을 주더이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니 참으로 좋더이다.  작은 몸짓에도 서로를 느끼고 있음이 참으로 뿌듯하더이다.     


    부모님께 인사할 때 그대 어찌 그리 많은 눈물을 쏟아내던지 내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이 다 젖어버린 걸 기억하오?  장모님이 화장 지워진다며 손수건으로 그대 얼굴의 눈물을 닦아줄 때 어찌 그리 조심스레 닦아주던지 장모님이 그간 그대를 어찌 키웠는지 알겠더이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딸을 잘 부탁한다며 잡은 손에 힘을 주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 꼭 그러마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도 함께 떨렸더랬소.     


    그대 그렇게 나의 신부가 되던 날 그대를 향해 그토록 구애하던 간절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장이라는 무게가 대신 하더이다.  지켜주겠다는 소망은 지켜야만한다는 의무가 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중압감을 느끼게 하였다오.  그래도 나 하나 바라보고 나 하나 믿고 살아가는 그대이기에 힘겨운 중압감마저도 웃으며 감당할 수가 있었소.  어찌보면 그대가 내 안에 있기에 한 몫이 아닌 두 몫의 힘으로 감당해 왔는지도 모르겠소.  그래서일꺼요.  그래서 내 쓰러지지 아니하고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오.  허허, 그러고보니 내 그대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그대가 나를 지켜준 셈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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