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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22. 2020

# 편지 일곱 - 든든한 버팀목

    IMF로 인해 나라가 어지럽고 많은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참혹한 시기에 나 역시 다르지 않기에 참으로 어려웠다오.  외국에 주문한 물건 대금이 환률 파동으로 인해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선주문한 거래처들의 취소요청이 잇따르면서 회사 역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오.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는 몸짓으로 인해 내 입에선 신음소리들이 새어나왔고 그런 나를 보면서도 그대는 아무 말도 없이 새벽마다 나를 위해 눈물 흘려가며 기도해주었더랬소.       


    못난 남편 아침은 꼭 해 먹이겠다고 기도하다가도 집으로 와 아침상을 차리는 그대의 두 눈은 언제나 퉁퉁 부어 있었음을 내 어찌 몰랐겠소.  하지만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돈이라는 생각에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했었다오.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못했건만 그대 내가 쓰러지지나 않을까 언제나 걱정에 휩싸여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건강이라도 잃지 않을까 밥이며 반찬이며 정성을 다해 차려주었더랬소.  누가 보면 눈물이라도 흘릴까 두려운 마음에 팔뚝을 얼굴에 얹고 누워있으면 슬그머니 곁에 앉아 내 팔이랑 다리를 주물러주곤 했다오.  몸이 힘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기에 그대 손길이 그닥 달갑지 않았음에도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던 그대의 손길이 어느새 마음까지도 주물러주더이다.     


    회사가 최종 부도를 선고 받았을 때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소.  신문에 오르내리던 안타가운 소식들이 내 이야기가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오.  그날 유독 일찍 들어온 나를 보며 뭔가 잘못되었구나 짐작한 그대가 말없이 내 옷을 받아주며 내 근심까지도 받아주었다오.  처음으로 맞닥뜨린 역경의 시기에 그대가 내 손을 잡고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린다고 해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며 확신에 찬 음성으로 위로해 주었소.  그렇게 말을 잘 하는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소.  그리 말을 잘 하면서도 내 말을 언제나 잠자코 들어주던 그대 모습이 또한 고마웠고 듬직했었다오.     


    회사를 문 닫던 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짐들을 정리하는데 절로 눈물이 나더이다.  따라온다는 그대를 두고 나왔건만 그대 기어이 와서는 함께 치우자며 두 팔 걷어붙이고 정리하던 억척스러운 모습에 잠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외로움과 서글픔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더이다.  점심때가 되자 짐 정리하는 날은 짜장면이라며 입맛도 없는 나를 웃으며 한 젓가락 크게 집어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정리가 다 끝나니 오늘 같이 힘쓴 날은 고기를 먹어주어야 한다며 아이들까지 불러 자주 가던 고기 집에 밀어 넣었더랬소.  그날 고기값이 꽤 나오긴 했지만 고기를 잔뜩 먹어서인지 그대 격려를 먹어서인지 그리 든든할 수가 없었다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했지만 이왕 시간이 많이 났으니 자기 좀 데리고 좋은 곳에 구경 시켜달라는 말에 정신없는 소리라 받아쳤건만 이럴 때 일수록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잘 보인다며 나를 앞 세워 참 많이도 데리고 다녔소.  그때 아차 싶었다오.  사업한답시고 그 좋아하는 꽃구경은커녕 가까운 공원에 산책도 함께 해주질 못했잖소.  그대 그리 좋아하는 것을 왜 그리 무심했던지.  이참에 그간 못했던 구경 실컷 하라고 설악산이며 무주며 그대 좋아하는 섬 마을까지 다녔더랬소.  돈이 있을 때는 시간 없어 못 다니던 여행을 돈도 없는데 참 많이도 다녔소.  그러고 보면 함께 여행하는 것이 꼭 돈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싶더이다.     


    그렇게 다니다보니 생각이 절로 정리가 되더이다.  먹고 싶다는 것 사주다 보니 같이 먹게 되어 끼니를 거르지 않아 속 버리지 않았고, 함께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 운동 절로 되어 건강 해치지 않더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대 따라다니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더이다.  구경 다니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닌 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들이 될 줄은 나도 몰랐소.  나 한 입이라도 먹이려 나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 그대가 먹고 싶은 것이라며 식당에 먼저 들어가 언능 오라며 손짓하였고, 마음 차분하게 만들라고 어머니 품 같은 자연 속으로 내 손을 잡아 인도해준 그대 참으로 현명한 여인이오.     


    아이들에게 들어가야 할 돈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대 내게 한 마디 말도 없이 홀로 감당하며 내 스스로 일어설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오.  묵묵히 곁에서 지켜보며 눈물로 기도해주니 내 그대 어깨를 짚고 일어설 수 있었음을 고백하며 감사하오.  그대 힘들 때 나는 그러지 못했건만 그대는 가녀린 그대 어깨를 짚으라고 내게 내어주어 많이 미안했다오.  그대 어깨가 그리도 든든한지 몰랐소이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 가족을 짊어진 가장의 어깨에 다름 아니었소.     


    밖으로 다니며 일자리를 구하다 식당일을 하게 되었다며 기뻐하면서 내게 걱정 말고 차분하게 일어서라 말해주었소.  그 말에 내 속으로 눈물 흘리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오.  잠시만 견뎌주오.  내 반드시 다시 일어나 그대 고생시키지 않으리다.  꼭 그렇게 하리다.       


    추운 날 아침 일찍 나가 밤 느즈막이 들어오는 그대에게 면목 없어 집안일이라도 도울라치면 언제나 나를 밀쳐내고 그대가 하곤 했소.  남자가 어딜 주방에 들어오느냐며 호통을 치며 방으로 들어가라 했다오.  지금 젊은 친구들이 들으면 거품 물고 따질 일이건만 그대는 옛날 어머니들이 그리 알고 지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리 대했다오.  그래도 그런 그대의 마음 씀씀이에 보답하려 무던히도 애를 썼더랬소.     


    거진 반 년이 지나서야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소.  환율이 안정되고 다시 거래처들이 돌아왔지만 그것은 진정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  그것은 하늘이 그대의 끈질긴 기도에 항복한 것이었소.  그대의 눈물을 어여삐 본 것이오.  그렇기에 나는 아낌없이 그대에게 모든 공을 돌리오.  그대 나를 만들어준 열정의 예술가요 나는 그대로 인해 다시 만들어지는 한 줌 진흙일 뿐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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