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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24. 2020

# 편지 여덟 - 왜 몰랐었던지

    그대 아프다는 것을 처음 알고 내 얼마나 화를 내었는지 기억하오?  아픈 것이 그대 잘못도 아니건만 왜 그리도 화를 내었는지 미안하기만 할 따름이오.  아마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 무척이나 서운했었던 모양이오.  미련하기가 곰보다 더 해 그대 아픈지도 몰랐던 나에게 화가 났었나보오.  미안하오.  이제사 말하지만 부디 용서해주기 바라오.  그대에게 그리 화를 내었던 것도 기실 못난 남편의 잘못을 그대에게 전가시키기 위함이었을 거요.  그대가 말을 안 해주어 몰랐다 핑계라도 대고 싶어 말이오.     


    처음 아이들을 통해 그대가 췌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들었소.  이미 치료의 시기도 놓친 상태라고 하더이다.  그 말을 듣고는 내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오.  머릿속이 텅 비어버려 백치가 된 것 마냥 그저 전화기만 손에 들고 있었다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아빠 괜찮냐는 아이들의 다급한 소리에도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오.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그저 눈물만 흐르더이다.  세상 모든 것이 무서워 바들바들 떨며 크게 소리도 못 내어 신음하듯 엄마를 찾는 있는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전화기를 드니 아이들 목소리가 계속 들리더이다.  그때까지 전화기 붙잡고 아빠를 불러대는 아이들이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그래도 나 괜찮다 하는 말에 작은 녀석이 그만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는지 엉엉대며 우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선명하게 들리더이다.       


    병원으로 달려가니 그대 이미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더이다.  얼굴은 아침에 본 그대로건만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으니 곧 죽을 사람인 것처럼 보이더이다.  그 모습에 내 가슴이 찢어지더이다.  대체 이게 뭔 일이냐 묻는 내게 웃는 모습으로 괜찮다며 걱정 말라는 그대 말을 들으니 화가 나더이다.       


    그대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고 그대 곁에 편하게 앉아있을 수도 없어 아이들 앞장 세워 의사에게 갔었소.  아이들에게 들었던 말과 별반 다르지 않더이다.  의사는 담담하게 사무적인 투로 이야기해주더이다.  췌장암이라는 게 초기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 발견하기 힘들다고 하더이다.  아쉽게도 말기에 들어선지 이미 오래라 치료는 무의미한 상태이며 앞으로 두어 달 정도의 시간 밖에 없으니 원하는 것 다 해주라 하더이다.  그 소리가 왜 그리도 차갑게 들리던지, 왜 그리도 무덤덤하게 들리던지.  왜 치료가 무의미하냐며 당장 치료 시작하라고 의사의 멱살을 잡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소.  의사라고 치료를 포기하고 싶었겠소.  남의 일이라고 그리 쉽게 결정했겠소.     


    의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내심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대 고운 모습 조금이라도 더 간지하게 하고 싶어서였다오.  항암치료가 많이 힘들다고들 하더이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져 가발이나 모자를 써야 한다고 그러더이다.  치료 중에 통증도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들 하더이다.  통증을 견디지 못해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다고들 하더이다.  결국 살이 다 빠져나가 뼈만 남은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치료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하더이다.  그간 흘려들었던 말들이 떠올라 그만 겁이 났소.  그대 고운 모습 죄 사라지고 형편없이 야위고 고통에 젖은 모습으로 그대를 보낼 생각을 하니 도저히 그리 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소.  그냥 의사 말대로 치료 포기하고 남은 시간이나마 그대 먹고 싶은 것 다 사주고 그대 보고 싶은 곳 다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주는 게 백 번 천 번 낫다 싶었소.     


    아이들도 그러더이다.  의사 말대로 그대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게 제일 낫겠다 말하더이다.  그리 말하는 입술이 바르르 떨리며 더듬기까지 하더이다.  그리 말하는 눈에 눈물이 가득하더이다.  그리 말하는데 아이들 주먹이 꽉 쥐어져 있더이다.  그래 너희들도 참 많이 아프겠구나, 많이 슬프겠구나, 많이 괴롭겠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래 어미 맘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보내자꾸나.  그리 말하는 내 입술도 아이들의 것처럼 떨리더이다.  눈에서 눈물이 속도 모르고 주책없이 자꾸 흐르더이다.  울지 말자 하면서도 울었더랬소.  아빠 울지 마 하며 내 팔을 잡고 있던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오.     


    근래 들어 유난히 많이 체하고 속이 아프다던 그대였건만 크게 마음 쓰지 않았소.  툭하면 체해서 손을 따 달라 했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었소.  며칠 간 계속되어도 이번엔 유독 심하네 하고 지나갔더랬소.  아프면 아프다고 말도 안하는 그대였지만 그래도 죽을 만큼 아프면 말하겠지 하며 모른 체 했었더랬소.  그대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기에 외면하였던 것 같소.  그대가 아파 누워버리면 그때부터 아이들마저 출가해버려 아무도 없는 집안 살림 내가 다해야하니 그게 싫었나 보오.  그게 귀찮았나 보오.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소.  국수를 그리 좋아하면서도 조금만 많이 먹거나 급하게 먹을라치면 여지없이 언치는 바람에 툭하면 속이 부대껴 고생하는 그대를 보며 미련하게 조심도 못한다고 화를 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힘겹게 입가에 미소 지으며 손 좀 따달라해야 겨우 일어나 바늘 가져오곤 했으니 참으로 미련하고 또 미련한 것은 그대가 아니라 나였소.  연말이면 가족들 위해 김장한다고 그 무거운 것들 이고 지고 장 봐오면 또 몇날 며칠 고생해가며 김치 담그던 당신이 밤이면 무에 그리 미안한지 조심스레 팔이랑 다리 좀 주물러 달라는 말에 혼자 김장 하냐며 궁시렁대다 가끔 마지못해 주물러주기라도 하면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얼굴이 아이처럼 밝아지곤 했었소.  당신이 이렇게 주물러주니 싹 낫어 분 것처럼 좋네 하면서 행복해하였더랬소.       


    왜 그땐 그 무거운 것들을 혼자 짊어지고 다니나 불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가는 그대를 보면서도 얼른 빼앗아 대신 짊어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내가 참으로 철부지였소.  끝날 줄 모르는 설거지 때문에 늘 손목이 아파 혼자 주물러가며 참는 그대를 보며 대신 해주기보다는 아파하는 그대 모습 보기 싫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던 내가 참으로 밉지 않았소?     


    그렇게 힘들었으면서도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다면 부리나케 약국까지 달려가 약을 사오곤 했던 그대에게 내가 그만 길이 들어버렸나보오.  조금만 피곤한 기색이 보일라치면 부엌으로 가 꿀물을 타오던 그대 손길에 익숙해져 버렸나보오.  내 힘든 것은 결코 못 보겠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휘청거리는 발걸음에도 남자는 이런 거 드는 것 아니라하며 기어코 앞서 가던 그대였기에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소.  안 도와줘도 괜찮은 줄 알았소.       


    제 몸 아파 죽게 되었는데도 병원비 걱정하는 그대 모습에 버럭 화를 내곤 하다 보니 그대 죽을병이란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다오.  그러고 보면 그대도 참으로 나만큼이나 미련하오.  왜 내게 무거우니 대신 좀 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소.  나 혼자 다 먹을 거 아니니 좀 거들어 달라 말을 안 하였소.  손목이 아파 죽겠으니 파스 좀 사다 붙여 달라 그러지 그랬소.  그런 당신이 참으로 야속하오이다.  참으로 서운하오이다.  말 안하면 그대 힘든줄도 모르는 미련 곰탱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한 마디 말도 안하고 기색도 안하는 그대 참으로 미련하오.  어찌 그런 것까지 하나가 되었더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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