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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25. 2020

# 편지 아홉 - 아내가 어미되어

    그대를 쏙 빼닮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찌나 신기하고 방통하던지.  하루 종일 눈에 어른거리는 아이 모습에 일은 뒷전에 두고 안절부절못하다 퇴근해서는 바로 집으로 달려가곤 했었다오.  문 열고 들어갈라 치면 손부터 씻으라는 호통에 곁눈질로나마 아이 얼굴 한 번 힐끔 보고 게걸음으로 미적거리며 욕실로 가곤 했었소.  어미젖을 소리 내며 빠는 아이의 모습은 또 얼마나 신기하고 야물딱스럽던지.  의미 없는 배냇짓이건만 나보고 웃는 걸로 알아 아빠를 알아본다며 혼자 호들갑을 떨던 모습 아직도 생생하오이다.     


    너무 작아 차마 손에 쥐면 부서질까 조심 조심해가며 들어볼라치면 어설프고 거친 내 손길에 아이가 화들짝 놀라 울기라도 하면 내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 마음에 얼른 그대 손에 넘겨주고는 괜스레 괘씸한 마음에 서운하기도 하더이다.  그래도 그리 울던 녀석이 지 어미 품인 것은 어찌 알고 울음을 뚝 그치면 내심 서운하면서도 신기해 몇 번이고 그대 품에 안긴 아이를 뺏곤 하였더랬소.  아이 울리는 게 그땐 왜 그리 재미 지던지.  그러다 그대 작은 손이 내 등짝을 후려치면 그제야 얌전히 먹이 주는 주인 손만 바라보는 강아지마냥 바짝 엎드려 얌전히 고개 들고는 그대와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오.  헌데 그 손 참으로 맵더이다.  그 조그마한 손에 무슨 힘이 그리도 많이 들어갔는지.     


    아이는 한 번 아플 때마다 쑥쑥 큰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더이다.  아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애만 태우고 눈물만 흘리던 그대 모습에 나 역시도 아이와 그대를 번갈아 쳐다보며 그저 안아주며 달래보지만 참으로 답답하고 답답하더이다.  병원에 가보아도 그저 성장통이니 걱정 말라며 웃으며 말해주던 의사와 간호사였지만 참 별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만 같아 서운하기까지 하였더랬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기운을 차리는 아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하지 않았소.  그러고 나면 훌쩍 자라버린 아이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던지.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붙이는 그대를 보며 아이를 안고 슬쩍 거실로 나와 아이와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오.     


    큰 녀석 다쳤을 때 있잖소.  혼자 잘 놀다가 그저 엎어졌을 뿐인데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가 일으켜 세우니 이마에서 피가 울컥울컥 솓구치더랬소.  바닥을 보니 날카로운 작은 돌이 하나 있더이다.  아마도 그것이 아이 이마의 큰 혈관을 건드렸던 모양이오.  얼른 손수건으로 지혈을 해주며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그대 어느새 앞장을 서더니 택시를 잡더이다.  내 아이를 안고는 있었다지만 그대 어찌 그리 나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소.  평소 달리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아마도 어미의 힘이 발에 힘을 주었나 짐작할 뿐이오.     


    병원에 가서도 전혀 당황치 않고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더이다.  나는 손발이 떨려 말은커녕 아이 옆에 붙어있는 것도 힘들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대는 집에 돌아올 때 까지 의연하게 행동하더이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던 그대 모습에 짐짓 놀랐지만 그때까지 참고 감정을 억누르며 아이를 돌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어미들만 보일 수 있는 강인함이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대 안아주고 다독여주니 그제야 마음 편히 울더이다.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내 셔츠가 다 젖어버렸던 것 기억나오?  그 와중에도 아이는 내가 돌볼 테니 편히 쉬라 했지만 아이가 아플 때 어미가 더 필요하다며 기어이 아이 옆으로 가더이다.  많이 놀라고 힘들었을 텐데.     


    어느새 그대는 어미가 되어가고 있었다오.  그래서 그랬나보오.  가정을 돌보는 그대 든든한 모습에 그만 나마저도 돌보아 달라고 했었나보오.  그대를 보호해주고 지켜주겠다는 다짐은 간데없고 나이 든 아이가 되어 어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내 모습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소.  내가 가정의 울타리를 든든하게 쳐주어야 그대가 안심하고 가정을 돌볼 텐데 그만 나의 성숙하지 못한 내면의 어린아이가 나타나버려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나보오.     


    사내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가 된다더니 정말 그러하더이다.  아이들은 커 가는데 되레 내가 아이가 되어 힘으로만 다스리려 했으니 참으로 가당치않은 일이었소.  때론 따끔하게 혼을 내주어야 하는 것도 맞겠지만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했건만 욱하는 성질을 어찌하지 못하는 바람에 늘 회초리부터 찾기 바쁜 것은 다른 방법들을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결과였소.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참고 기다려주어야 하지만 아이가 되어가는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나보오.  내면의 혼란스러움에서 나타나는 반항이자 거부감이었지만 언제나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응징이었으니 아이들도 참 힘들었을 거요.     


    천방지축이요 질풍노도라는 사춘기 시절을 그대 홀로 감내하게 만들었음을 그로 인해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이제야 조금 알게 되오.  아이들의 반항이 감당키 어려워 일을 핑계로 밖으로만 나돌았으니 그 반항을 어찌 감당하라고 그랬는지.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말없이 들어주고 보아주고 묵묵히 가슴에만 묻어두며 홀로 눈물 흘리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그대처럼 나는 그리할 자신이 없었다오.  가장의 권위에 흠이라도 나면 바로 매를 들어 훈계라는 이름으로 응징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더 이상은 매로 다스리면 안 되겠다 싶었소.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피해버리고 말았구려.     


    그래서 아이들에겐 어미의 포근함과 오래 참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보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부부가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며 양육하는 것 같더만 우리 세대에야 어디 그랬소.  그저 집안일은 언제나 어미의 몫이었고 바깥일은 아비의 몫으로 정해놓고 조금이라도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 게 미덕인줄로만 배우고 자라지 않았소.  그나마도 아비의 권위는 어미의 영역까지 침범하여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쉽게 이야기하고 가르치려고만 했으니 어미의 노고가 참으로 애처롭기까지 하오이다.  못 배워서 그랬던 것이오.  못나서 그랬던 것이오.  그래서 그대가 더 대단하게 여겨지오.  그대 참으로 훌륭한 어미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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