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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27. 2020

# 편지 열 - 이제 조금 철이 드나보오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어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문자라도 보내 하시라도 대화할 수 있건만 오히려 예전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소.  한 집에 살면서도 예전처럼 대화가 많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었으니 참으로 면목 없소.  결혼 전엔 어찌 그리 재미나게 말을 지어내었는지 나조차 모르겠소.  그땐 제법 다정하게 굴었는데 어찌 그리할 수 있었는지 가물가물하오.  평소 말이 없던 나였는데 그대 앞에만 서면 말이 많아지더이다.  그대 곁에만 있으면 아이가 되더이다.     


    그래서였던 것 같소.  그대로 인해 아이가 되어버린 나는 언제나 나를 위해 먹을 것을 달라고, 출근할 때마다 입을 옷을 챙겨달라고, 양말은 또 어디 있는지 빨리 찾아오라고 그렇게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나보오.  그대를 지켜주겠다 한 맹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대에게 나를 지켜 달라 졸라대는 아이가 되어버린 내가 얄밉지는 않더이까.  철부지 남편이 야속하지는 않더이까.       


    소파에 누워 이야기 나누다가도 이내 힘에 겨워 잠든 그대를 보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오.  그대에게 날개가 없기를 나 몰래 훨훨 날아가지 않기를 얼마나 기도했었는지.  하지만 그대 그렇게 나비되어 바람 되어 훨훨 날아가 버리니 그대 따를 수 없으니 참으로 서글프더이다.  어느새 훌쩍 자라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이지만 어미 잃고 저리 슬퍼하는데 나까지 연이어 가버리면 어쩌랴싶어 정신 바싹 차리고 살아가자 다짐하는 내 처지가 서글프오.       


    그대에게 잘못했던 것들을 죄 모아 글로 정리해 사죄하려 했건만 그대 이미 먼 곳으로 가버렸구려.  손에 쥔 전하지 못한 편지들을 어찌해야하오.  이제사 조금 철이 들 만하니 그대가 곁에 없구려.  이제는 그대 손 꼭 잡고 함께 병원에도 갈 수 있겠다 싶은데 병도 사라지고 그대도 사라졌구려.  오는 길에 파스 하나 사와 그대 가는 손목에 예쁘게 붙혀줄 수도 있건만 그대가 없구려.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집안 살림 걱정에 내 걱정에 부리나케 오곤 했는데 이번엔 언제 오려오.  아니 오지 마오.  이제 내가 가리다.  그대 거기서 편히 쉬고 계시오.  내 한 달음에 달려가리다.  혹여 가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갈 터이니 기다리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편히 계시오.     


    내 그대에게 참으로 고맙다 말하고픈 것이 있다오.  일출이 보고 싶다며 바다가 보고 싶다며 데려다 달라는 말에 정동진으로 가지 않았소.  참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던 정동진 말이오.  수평선 너머로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태양을 바라보던 그대가 힘없이 내 품에 안기며 쓰러졌을 때 주변 사람들 다들 놀라 난리가 났더랫소.  순간 나는 알겠더이다.  그대 이제 이렇게 가는구나하고 말이오.  주변 사람들은 웅성웅성 대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나는 평온하더이다.  그대를 품에 안고 있으니 만족스럽더이다.  그대 마지막 순간을 그렇게나마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외려 감사했다오.  많은 추억들을 쌓았던 정동진을 다시 그대와 함께 와서 감사했고 그대 마지막 가는 길을 내 품에서 배웅하니 감사했다오.       


    한참을 그대 내 품에 안고 있었더랬소.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흐르며 열기를 내뿜더이다.  그대 얼굴로 떨어지기에 고운 모습으로 가야지 하며 소매를 움켜쥐고 닦아주니 그대 고운 모습이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더이다.  그대 얼굴 한 번 닦고 내 얼굴 한 번 닦고 또 그대 얼굴 한 번 닦고 내 얼굴 한 번 닦고.  그래도 그대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그대 얼굴에 내 얼굴 대어 느껴보려 했소.  매서운 바닷바람에 그새 차가워져 버린 뺨이 서러워 내 뺨의 온기라도 전해주려 꼭 안고 있었다오.     


    하늘도 그대 가는 길 밝혀주려 먼동이 터오더구려.  그대 어둔 길에만 가면 꼭 넘어지곤 했잖소.  참으로 다행이지 싶었소.  그대 가는 길이 초행길이니 바래다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무척이나 서운했었소.  그대 혼자 보내려니 애달픈 마음 가득하였소.       


    지금은 어디쯤 갔소.  도착은 한거요?  아직 멀은거요?  이승에서 일주일이면 저승에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를려나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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