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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17. 2020

# 편지 넷 - 사랑의 속도

    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 건 줄로만 알았소.  그대를 처음 본 순간 그러했으니 말이오.  그때 내 스스로도 얼마나 놀랬던지.  그런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한 눈에 반한다는 것은 책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소.  작가들의 달콤한 거짓말이라 여겼소.  그랬던 내가 그대를 한 눈에 반하였으니 얼마나 놀랐는지 그대는 모를 것이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알 수 없는 것들로 가슴이 가득 차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오.  존재 하나로 그대는 내 가슴 속에 무수히 많은 것들을 집어넣어 작은 내 좁은 가슴을 이내 차득 차게 만들었다오.  숨이 가빠지고 호흡도 빨라졌지만 그대는 쉴 새 없이 넣어주었고 저항 한 번 변변히 못하고 그렇게 내 가슴은 풍선마냥 계속 부풀어 오르더이다.  만약 그대 앞에 서서 내 가슴에 가득 채워진 것들을 쏟아내지 않았더라면 곧 터져 버렸을 것이오.     


    처음 그대 손을 잡았던 순간 그대 손을 타고 올라온 열기에 내 온 몸이 타버리는 줄 알았소.  어찌 그리 작은 몸에 그리도 많은 열을 담고 있었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나에게 전달되었는지 모를 일이오.  그 열기가 내 온 몸을 감싸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소.  그 무엇도 부럽지 않더이다.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더이다.  그대 품던 열기는 행복으로 변하여 고스란히 내 속에 쌓였다오.     


    처음 그대 입술이 내게 허락되던 순간을 내 어찌 잊을 수 있겠소.  누가 볼까 부끄러운 마음도 없이 서로에게 집중하니 이내 하나가 되어 춤을 추었고, 하늘로 올라가는 연이 되어 세상 끝까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오.  오직 우리 둘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훨훨 날아갔다오.  현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더이다.  우리 둘 처음 경험한 입맞춤이었으니 참으로 어설펐을 것이오.  하지만 어설픈 솜씨일지라도 익숙한 것은 또 뭐란 말이냐 항변하듯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소.   내심 이걸 언제 끝내야하는지 몰라 막막하던 차였다오.  자연스러워야 할 텐데 하며 머뭇거리다보니 내 곤란해 하던 마음이 전달이라도 되었는지 이내 떨어지지 않았소.  서로 처음이면서도 초보처럼 어설프게 보이고 싶지 않아하던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킥킥 소리 내며 웃지 않았더랬소.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입에서 피식하는 소리가 새어나오며 당시 느끼던 감촉이 느껴진다오.     


    처음 그대와 한 몸이 되었을 때 가장 화려하게 불꽃들이 춤을 추었다고 여겼소.  내 작은 손짓 하나에 부끄러워 자꾸만 파고들던 그대의 몸짓에 화답하며 내 안에 담긴 열정을 그대에게 남김없이 전하려 했소.  작은 신음이 내 안에 혹여 라도 남은 것들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게 해주니 내 어찌 그대에게 작은 것 하나 남기고 넘겨줄 수 있었겠소.  그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방울들이 나를 향한 사랑의 열정임을 알기에 내 온 몸의 땀방울로 화답하였소.  그대 나에게 여인들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만 했던 고귀한 순결을 아낌없이 주었고 나는 그 순결의 보답으로 앞으로의 순정을 약속했소.  그 약속 아직까지 잘 지키고 있다오.     


    헌데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참으로 가볍소.  참으로 보잘 것 없는 나였소.  그대가 쉴 새 없이 넣어주던 장작들이 아니었다면 내 불꽃은 이내 사그라들어 버렸을 것이오.  그대가 쉴 새 없이 부채질 해주지 않았더라면 숨을 쉬지 못하여 이내 꺼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오.  내 안에 있던 사랑의 열기가 그대로 인해 존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인해 생명을 얻었고 그대로 인해 더욱 커지고 화려해졌음을 이제는 아오.  그대 진정 사랑을 아는 지혜자였소.     


    아이를 가진 몸으로 뒤뚱거리며 걸을 때 참 많이 힘들겠다 생각은 했지만 얼마나 힘든지 몰랐었다오.  어느 날 문득 배낭 짊어지고 행군을 하던 군인들을 보니 옛 생각이 나더이다.  군 시절 행군하던 때 한 친구가 그만 다리를 접질려 배낭이며 총을 나누어 들었는데 내가 배낭을 맡게 되었소.  근데 등에 있던 배낭은 그럭저럭 견딜 만 했고 움직이기도 불편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하나를 더 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소.  꼭 같은 비유는 아니겠지만 그대 힘들고 불편한 것이 그보다 더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소.  행군이야 며칠 상관이지만 임산부들은 무려 열 달을 그리 지내야하지 않소.  참으로 대단하더이다.  그걸 일찍 생각해 냈으면 참 좋았겠는데 아쉽게도 둘째를 가지고 나서야 생각이 났으니 나도 참으로 아둔하오.  그래도 그 후로 제법 힘이 되어주지 않았소?     


    아이가 태어나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며 칭얼거리는 걸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잠을 설쳐가며 보살피는 그대에게서 어미의 위대함을 보게 되었소.  나는 자다가 아이 울음소리라도 들릴라 치면 짜증부터 내며 그대를 깨우곤 했는데 그대는 먼저 알고 아이에게 달려가더이다.  입이 다 헐어 제대로 먹을 수도 없을 지경이건만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면 잘 먹어야 한다면서 그 고통을 참고 꾸역꾸역 먹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더이다.  그래도 그리 할 수 있었던 것이 어미이기 때문 아니겠소.  아비들은 결코 하지 못하는 어미만의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고 고결하오이다.  그것을 그대에게서 볼 수 있어 참으로 감격스러웠소.  참으로 존경스러웠소.     


    사랑은 그렇게 조금씩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고 느끼는 만큼 사랑하게 되더이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이더이다.  그대를 그렇게 조금씩 알아가니 때론 놀랍기도 하였고, 때론 기이하기도 하였고, 때론 귀엽기도 하더이다.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 고이 빻아 놓으니 사랑이란 것이 나오더이다.  그 사랑 불에 굽기도 하고 찌기도 하여 알콩달콩 나누어 먹다보니 그대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되고 내가 그대 안에 들어가 그대가 되더이다.  그렇게 서로가 같아지더이다.  그렇게 하나가 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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