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하기 힘들고 싫었던 인정, 직면, 응시(2)
내가 태어났어요
이런 게 빛이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내 엉덩이에 무엇인가 와서 찰싹 하는 소리를 냈어요. 난 그냥 어? 하고 놀랐는데 저절로 울음소리가 되었어요. 나는 눈을 떠보려고 했는데 금세 떠지지가 않았어요.
잘 느껴지지 않았던 온몸에 무엇인가가 와서 닿아요. 순식간에 무엇인가가 내 몸을 자꾸자꾸 닦아내고 나서 흐르는 물을 느낄 수 있어요. 따뜻한 물은 나를 기분 좋게 해요.
내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과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처음엔 무엇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냥 익숙해져서 이대로 지내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배가 고플 때마다 짜증이 나요. 나는 소리쳐 울어봐요. 입속으로 엄마의 말캉한 젖꼭지가 들어왔지만 아무리 빨아도 젖이 많이 나오지 않아요. 내가 힘이 약한 걸까요? 여자 아이라서? 엄마는 자꾸 더 빨아보라고 해요. 그런데 나는 열심히 빨다가 지쳐버렸어요.
이제 태어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난 늘 배가 고파요. 울다 잠이 들었다 금새 잠이 깨버려요. 나는 그럼 또 울 수밖에 없어요. 엄마는 이제 미음을 끓여서 나에게 먹여요. 나는 배가 고파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냥 삼켜요.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미음이 들어있는 숟가락이에요.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렇게 배가 고플 줄 몰랐어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거든요.
~ 엄마 난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어요.
~ 엄마 더 빨리 먹고 싶어요. 너무 배가 고프거든요.
~ 엄마 난 언제부터 국수를 먹을 수 있나요?
~ 엄마 뱃속에서 맛보았던 잔치국수가 생각나요.
엄마는 나에게 말해요
ㅡ 주연아 미음이라도 잘 먹고 잘 크자
ㅡ 엄마가 젖이 안 나와서 미안해.
ㅡ 옆집 아줌마 젖이라도 먹지, 왜 안 먹어?
엄마는 두세 번 나를 어떤 아줌마에게 안겨주었어요. 그 아줌마는 나에게 젖을 먹어보라며 젖꼭지를 물려주었죠. 하지만 나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그 아줌마가 싫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엄마 냄새가 아니었거든요. 아마 이렇게 냄새에 민감한 건 엄마 아빠 모두를 닮아서일 거예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이가 이런 걸 어떻게 아냐구요? 모르겠어요. 그런데 알아요. 아마도 아기천국에서 세상으로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니 쌀미음을 덥석 덥석 잘 받아먹는 아이가 되었어요. 동네 아줌마들이 놀러와서 참 잘 먹는다며 이쁘다고 말해주었어요. 난 신기하게도 머리카락이 단발처럼 길게 자라서 태어났어요. 난 아직 내 모습을 거울로 본 적도 없지만 나를 본 어른들은 곱슬머리가 참 예쁘다는 말을 했어요.
나는 가끔 엄마 품에 안겨 어떤 아줌마 집에 가는데 그 집에는 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는 그 아줌마에게 많은 걸 물어봐요. 나 같은 아기를 처음 키우는 엄마는 궁금한 게 많지요. 아줌마는 이미 첫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 둘째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ㅡ 주연이가 잠투정이 심해요. 금세 자질 않아서 밤에 재우느라 힘들어요. 어떻게 하면 빨리 재울 수 있을까요?
ㅡ 애기들마다 다르대. 우리 큰애는 안고서 방을 한 스무 바퀴쯤 돌고 나면 자더라구. 그런데 작은애는 그냥 젖만 먹고 나면 젖꼭지 빼고 잘 자. 신기하지?
ㅡ 주연이도 엄마 젖을 배불리 먹으면 잘 잘 거 같은데 쌀미음을 먹어서 못 자는 거 같아요. 안쓰러 죽겠어요.
ㅡ 그래도 어떡해? 엄마가 젖이 안 나오는 걸. 콩쥐처럼 동네에 아줌마 젖이라도 먹으면 좋을 텐데. 그건 또 주연이가 싫다잖아. 주연이가 엄마만 좋아하는가봐.
ㅡ 아니에요. 애아빠도 곱슬머리 예쁘다 그러면서 퇴근하면 까꿍놀이도 해주고 그래요. 주연이도 아빠 보고 방실방실 잘 웃고 그러더라고요.
나는 사실 아빠가 오면 담배 냄새가 나서 싫어요. 그런데 웃으면서 뭐라고 말을 하니 나도 웃는 거예요. 그리고 엄마 아빠처럼 소리를 내고 싶어서 옹알이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는 하루종일 엄마와 있으면서 엄마를 많이 보고 있어요. 엄마처럼 앉아 있고 싶어서 엄마를 따라 걷고 싶어서 엄마처럼 서 있고 싶어서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나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어느 날은 누워 있다 뒤집기도 해보았어요.
어느 날은 누워있다 뒤집기를 했다 다시 또 뒤집기를 해서 눕기도 해봤어요. 엄마는 내가 이런 걸 하면 기분이 좋은가 봐요.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어주거든요.
엄마는 아빠랑 있을 때는 잘 웃지 않아요. 며칠전이 월급날이었는데 엄마가 월급 봉투 얘기를 하니 화를 내면서 또 밖으로 나가 버렸어요. 그럴 때면 엄마는 크게 한숨을 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를 바라봐요. 엄마는 결혼할 때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준비를 못 했대요. 그냥 아빠한테 몸만 와서 결혼을 했어요. 엄마는 그것 때문에 아빠에게 말을 잘 못해요.
아주 더운 8월 21일에 내가 태어났는데 벌써 11월이거든요. 엄마는 나를 위해 겨울 이불과 겨울 옷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돈이 없어요. 돈이 없으니 아빠에게 불만이 많은데 돈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면 아빠는 화를 내요. 그걸 듣고 있으면 나는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아빠가 화내는 얼굴은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빠가 화내는 얼굴을 볼 수 밖에 없으니 너무 무서워요. 아빠는 얼굴이 무섭게 생겼어요.
그래도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할 때면 아빠 얼굴은 한없이 밝아져요. 나는 이제 걸을 수도 있고 아빠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있어요. 아빠는 말을 알아듣는 내가 너무 신기했나 봐요.
ㅡ 우리 주연이 되게 똑똑하네.
ㅡ 주연이는 나중에 의사시켜야 되겠다.
ㅡ 주연이는 노래도 잘 할 거 같은데.
나는 잘 걸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엄마가 나물을 캐러 산에 갈 때면 항상 엄마에게 업어 달라고 해요. 엄마가 힘들다고 걸어가자고 해도 나는 자꾸 업어 달라고 해요. 엄마는 내가 고집쟁이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나를 업고 산에 가요. 나는 엄마랑 붙어있지 않으면 무서워요. 산에서 들리는 여러 소리들도 이상하고 산에서 나는 여러 가지 냄새도 이상하거든요. 하지만 엄마가 나를 포대기로 업고 있으면 엄마 등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아져요. 그리고 금새 잠이 와요. 나에게 천국은 엄마의 등이고 엄마의 가슴이에요. 그리고 엄마의 냄새에요.
산에서 내려오면 엄마는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해요. 그러면 나도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놓지 않아요. 아궁이에서 새빨간 불이 타는 게 무섭거든요.
아빠는 엄마에게 무섭게 할 때가 많아요. 특히 월급날 술을 먹고 와서 나에게 술냄새를 마구 풍겨요. 그러면 엄마는
나를 안고 구석에 앉아 있어요. 아빠는 또 술을 사 오라고 엄마에게 소리를 질러요.
ㅡ 빨리 술 안 사와?
ㅡ 술 살 돈이라도 주고 술을 사오라고 해요.
ㅡ 외상으로 사오라고!
ㅡ 외상도 한두번이지. 이제 외상 안 준대요.
ㅡ 뭐라고?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빠는 밥상을 별로 차버려요. 그리고 엄마를 때리죠.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을 못해요. 그리고 울기 시작해요. 엄마는 나를 안고 얼른 밖으로 나와 옆집으로 달려가요. 그러면 옆집 아저씨가 우리 집에 가서 아빠와 대화를 하는 거 같아요.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깜깜한 밤이 돼서 엄마는 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요. 아빠는 코를 골면서 자고 있어요. 엄마는 아빠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와 함께 잠이 들어요. 잠들기 전 엄마의 어깨는 떨리고 엄마의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려요.
아빠는 왜 엄마를 울릴까요
아빠는 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를까요
아빠는 왜 엄마에게 돈을 주지 않을까요
아빠는 왜 엄마에게 욕을 할까요
아빠는 왜 엄마를 때릴까요
나는 무서우면서도 이 모든 것이 궁금해요
아빠라는 사람은 원래 이런 걸까요
어쩌다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어요
엄마를 낳아주신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왔을 때나 돈을 제대로 가지고 오지 않으면 화가 나서 괜히 첫째딸로 태어난 우리 엄마를 때렸다고요.
그 외할머니를 피해서 도망왔더니 또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났다고요.
외할머니는 왜 엄마를 때렸을까요
외할머니는 왜 엄마에게 욕을 했을까요
외할머니는 왜 결혼하기 싫다는 엄마를 결혼시켰을까요
외할아버지는 왜 외할머니를 말리지 않았을까요
왜 엄마는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했으면서 외할머니에게 맞고 살아야 했을까요
내가 말을 좀 더 잘했더라면 이 모든 것을 물어보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 겨우 한 살이 지난 나는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네요. 그저 술 취한 아빠가 들어오면 무서운 아빠 얼굴을 보기 싫어서 엄마 뒤에 숨는 게 다였으니까요.
한 살박이 어린 나는 이 모든 경험이 먼 미래에 나를 불행하게 하고 나를 우울하게 하고 나를 죽고 싶게 만들 줄 몰랐어요. 만약 알았더라면 그때 고함을 지르고 그때 아빠를 마구 때려주었을 거예요. 그 작은 몸으로 그 작은 주먹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빠에게 고함을 지르고 아빠를 때려주었을 거예요.
아니면 30년을 더 겪어야 하는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죽었을 거예요. 내 삶에서 아빠가 지옥이란 걸, 엄마의 삶에서 아빠가 지옥이란 걸.. 내가 한 살일 때 알았더라면 난 정말 죽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죽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