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하기 힘들고 싫었던 인정, 직면, 응시(3)
동생이 태어났어요
어느 날부턴가 엄마가 나를 업어주지 않았어요. 엄마는 배가 뽈록하게 나왔죠. 뱃속의 동생이 들어있다고 했어요. 나는 그게 뭔지 몰라도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 싫었어요.
나는 이제 밥도 잘 먹어요. 그리고 영양제도 먹어요. 이 영양제는 신기한 맛을 가졌는데 어느 날 엄마가 없을 때 선반에 있던 영양제를 꺼내 보고 싶었어요. 이불이랑 베개를 올리고 올리고 선반까지 손이 닿았지요. 영양제가 툭 떨어지더니 뚜껑이 열려서 떼구르르 굴러갔어요. 나는 영양제를 한 알씩 먹었지요. 그렇게 반통쯤 먹은 것 같아요.
엄마가 들어와서 화들짝 놀랐어요. 내 입을 벌리고 들여다보더니 등짝을 때렸죠. 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때리는 건 아빠가 하는 일인 줄 알았거든요. 엄마도 나를 때릴 줄 아는 것이었어요.
~엄마가 나를 때리다니
아마 크게 놀란거 같아요. 나는 이제 엄마도 무서워졌어요.
그리고 얼마 뒤에 동생이 태어났어요. 나와 동생은 연년생이라고 해요. 나는 8월에 태어나고 동생은 12월에 태어났거든요. 엄마가 무서워진 나는 엄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엄마의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었어요.
나는 코스모스 꽃을 좋아했어요. 엄마 등에 업혀서 다닐 때에 코스모스가 한 송이라도 보이면 꼭 꺾어 달라고 했어요. 꺾어주지 않으면 꺾어줄 때까지 떼를 썼었죠.
코스모스가 핀 냇가에 가고 싶어서 엉금엉금 기어서 혼자 집 밖으로 나간 적도 있어요. 엄마는 내가 어떻게 코스모스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신기하다고 했지요.
동생 돌보기에 바빠진 엄마를 보며 나는 혼자 노는 아이가 되었어요. 조용히 말없이 장난감도 없는 방에서...
그러다 동생이 어느 정도 자라 같이 놀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번엔 둘째 동생도 태어났어요. 첫째도 둘째도 모두 남동생이었지요. 나는 세상에 나온 지 4년 만에 두 남동생을 케어하는 완벽한 K 장녀가 되었어요. 그 누구도 가르치지 않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동생 돌보기를 해야 하고 동생을 잘못 보면 야단을 맞는 그런 K장녀가 되었지요.
나는 왜 장녀노릇을 한 걸까요
나는 왜 동생들처럼 철들지 않는 걸 못했을까요
나는 왜 엄마가 그렇게 슬프고 힘들어보였을까요
나는 왜 아빠를 닮아 효녀 노릇을 했을까요
아빠는 베트남 전쟁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나라가 돈이 없어서 베트남에 군인을 파견하고 돈을 벌었다지요. 그리고 베트남에 파병을 다녀온 대부분의 군인들은 집 한 채 정도를 살 수 있을 만한 돈을 벌어왔대요.
그런데 우리 아빠는 베트남을 다녀왔지만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대요. 할머니가 병이 나셔서 치료비가 필요했는데 아빠가 치료비를 모두 냈거든요. 자그마치 여섯 명의 남자 형제와 두 명의 고모가 있었는데 우리 아빠가 병원비와 약값을 모두 할머니에게 보내드렸다고 해요. 그래서 엄마랑 결혼할 때 아빠도 돈 한푼 없는 그냥 군인 아저씨였던 거죠.
그렇게 아빠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효자 노릇을 했대요. 그렇게 효자 노릇을 했던, 착한 아들이었던 아빠는 왜 엄마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또 결혼하기 전 막내 삼촌이 대학을 가고 싶어 했대요. 아빠는 삼촌이 다니던 고등학교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며 돈을 모아 막내삼촌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해주었대요. 이렇게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를 위해 희생한 아빠는 왜 엄마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나는 왜 아빠의 수많은 DNA중에 효도하는 것까지, 희생하는 것까지 물려받은 걸까요?
다행인 건 이렇게 아이들이 생기니 아빠가 조금 더 책임감을 느낀 것 같아요. 월급날이면 노름에 빠져 대부분 돈을 잃고 오던 아빠가 조금은 정신을 차린 것 같았지요. 그러나 세상은 아빠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얼마 되지 않은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군인들은 주식투자 대신 노름 투자를 즐겨 했었지요. 군에서 이를 알고 대대적으로 감사를 펼쳤다고 해요. 그때 아빠의 상사였던 못된 군인 아저씨가 아빠에게 누명을 씌웠다지요. 정작 계급 높고 돈을 벌었던 나쁜 군인은 이래저래 빽 써서 빠져나가고 , 계급 낮고 돈도 다 뺏긴 빽없는 아빠에게 책임을 지라 했다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는 어찌저찌 퇴직금을 조금 받고 직업군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요. 그리고 중식당을 하게 되지요. 엄마도 아빠도 모두 손재주가 있고 요리 솜씨가 있어서 아주 잘 될 것처럼 보였어요. 나와 동생들은 배고플때마다 다양한 요리들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술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동네 술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하지요. 술 친구들은 술과 음식을 먹고 외상을 한 후 잘 갚지 않았어요. 친해질수록 아빠는 술 친구들에게 돈 달라는 말을 더욱 못했어요. 그러면서 의처증까지 생겼지요.
ㅡ 아까 저 새끼한테 눈길 준거 아니야?
ㅡ 어제 ○○이랑 무슨 얘기 했어?
ㅡ 나 없을 때 찾아왔다며?그 새끼가 뭐라고 했냐고!!
ㅡ 넌 왜 아무한테나 막 웃어주고 지랄이야?
술이 문제였을까요
술친구를 사귄 아빠가 문제였을까요
외상이 문제였을까요
외상 값을 받지 못하는 아빠가 문제였을까요
의심 받으면서, 맞으면서 집을 못떠난 엄마가 문제였을까요
엄마를 못 떠나게 한 내가 문제였을까요
이제는 아기 천국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어요.
나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딱 한번 외할머니가 찾아온 적이 있어요. 외할머니는 처음 본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ㅡ 니 엄마가 너를 낳아서.. 너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야
나도 알고 있었어요. 엄마가 나 때문에 아빠를 못 떠난다는 걸. 그런데 외할머니가 그런 말을 하니 나는 더더욱 죄책감이 들었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맞고 사는구나
~나 때문에 엄마가 아빠랑 사는구나
~내가 죽으면 엄마는 아빠를 떠날 수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죽는지 몰랐어요. 어떻게 사라지는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내가 사라지면 동생들 때문에 또 엄마가 힘들겠지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동생들 잘 돌보고, 집 청소 잘하고, 엄마를 열심히 돕고, 돈 드는 건 절대 말하지 않기였어요.
엄마는 아빠 대신 일하느라 바빴고
아빠는 술 먹고 일하기를 쉬는 날이 많았어요.
결국 중식당을 처분하고나니 남는 돈이 하나도 없었지요. 그래서 아빠의 고향섬으로 가서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을 빌려 살지요. 우리 가족의 시골살이는 이렇게 시작돼요. 완전한 빈털털이 귀향살이.
베트남 전쟁을 다녀오고도, 직업군인을 십 년을 했어도
무엇 하나 남지 않은 서른 여섯살 가장의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을까? 가정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가난' 일 수 있는가? 생각해요.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아기 천국을 떠나온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 가봐요. 막내는 아기 천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알 거 같기도 하지만 바보 같은 막내는 노는 거밖에 몰라요. 동생들이 없었더라면 좋았겠어요. 엄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동생을 둘이나 낳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