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라는 병은 의식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 참, 이 여행의 멤버에 대해 소개한 적이 없는 것 같아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려 한다.
동아리에 발 들이게 해 준 회장 언니와 동아리 언니 1명, 그리고 나와 다른 여자애를 포함하여 여자는 총 4명이었다. 남자는 우리 빼고 모두였다. 서울에서 7명으로 시작한 여행은 경기도를 지나면서 10명으로 늘었다. 엄청난 수였다. 이동하는 것 또한 일이 돼버리는 인원이었다. 이 중에서 나는 20살, 그는 21살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23살 위의 나에게는 선배라고 느낄만한 나이를 가졌었다.
그 날은 경상도로 향하는 날이었다. 어느 날과 다르지 않게 버스로 이동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진행했다. 오늘 내 옆에 앉게 된 건 바로 그였다. 그는 옆에 앉자마자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는 그 말에 일일이 대꾸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었나? 며칠 동안 굉장히 활기차고 재밌었던 거 같은데 내가 어색한가?"
나는 멀미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냥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즐겁지만 대꾸해줄 수 없는 배려였다. 하지만 이 말을 빌미로 어느새 대화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말도 놓고 그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친구를 만든 느낌이었다. 그가 말했다. "같이 사진을 하나 찍었으면 좋겠어, 비슷한 나이의 우리가 오늘 친해진 기념으로 말이야" 그렇게 나는 그의 옆에 활짝 웃음을 핀 채로 브이를 만들며 사진을 찍었다.
그와 경상도를 향해 달려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경상남도라고 했다. 경기도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 촌년이었고, 그와의 대화에는 재밌는 지역별 차이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음식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경상도에는 서울보다 음식점이 늦게 생기는데 특히 페이스북에 유행하는 체인점이 늦게 생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나는 혹시 내가 고등학교 때 유행했던 체인점인 애슐리를 가보았냐고 물어봤다. 그는 태어나서 애슐리라는 뷔페 음식점을 지금 처음 들어보았다고 말했다.
"서울 저희 동네로 놀러 오신다면 애슐리 뷔페 중 가장 좋은 프리미엄을 데려가 드릴게요! 물론 제가 쏠게요"
그는 좋다고 했다. 사실 이런 제안에 그가 선뜻 응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우리 동네까지 오기에는 큰 결심이 필요할 만큼 멀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나면 꼭 오겠다 말했다. 난 당연히 그가 마치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는 투의 말로 말했기 때문에 그때 그 대답을 흘려듣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주위 선배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미라는 병의 가장 큰 장점은 집중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그와 대화하며 처음으로 멀미에 대해 잊었다. 난 버스 안에서 이제 아픈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