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소소한 연애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8년째 연애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어떻게 20대 청춘을 한 사람하고 보낼 수 있냐는 반응과 어떻게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좋아할 수 있냐는 이야기. 아니면 네가 청춘을 날리고 있다는 둥의 이상한 조언들...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 주제인가 보다.
시작부터 8년을 연애해야지! 하면서 시작한 만남은 아니었다. 그냥 사귀다 보니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상태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8년이 지나있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8년이나 만나셨어요?"라는 흔한 그 물음에는 대답하기가 참 곤란한 부분이 많다.
처음은 그냥 천천히 스며들었다. 내 마음에 내 머릿속에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흔한 표현이지만 스펀지속에 먹히는 물같이 천천히 그렇게 내 모든 곳 구석구석 스며들어왔다. 참 좋은 표현이다. 지금은 눈을 뜨고 감는 그 순간까지 모든 부분에서 같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세월과 정은 참 무시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을 가진 것들이다.
1년에 챙기는 기념일은 총 3개인데 바로 "0주년"과 "너와 나의 생일"이다. 사귀는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100일 단위의 기념일들은 챙기지 않게 되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100일 단위로 챙기면 점점 선물도 많아지고 참 부담스러워지는 부분들이 많아지기에 자연스럽게 저렇게 3개의 기념일만 남게 되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새롭게 다가올 년도의 다이어리를 주문하여 그 안에 다가올 년도의 모든 기념일과 행사를 적곤 한다. 그때에 항상 고민한다. 저 3개의 기념일을 적어도 되는 것일까? 아마도 이것은 연애가 주는 불확실성에 기반한 고민인 것 같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함께하였어도 서류상으로 함께하는 확실한 관계는 아니기에 연말마다 약간의 고민을 하곤 한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손은 적고 있다. 그 날의 기념일들에 기록하면서 그때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참 내 인생에 무섭게 스며들었구나.라는 생각은 언제나 하게 된다.
지인들과의 경조사 부분에도 애매한 부분들이 참 많다. 함께 오랜 세월을 겪다 보니 내 친구가 너의 친구이고 너의 친구가 내 친구인 경우가 많다. 너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의 경조사에 참석하다 보면 가끔 내가 너랑 헤어지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생각이니 굳이 고민에서 지우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자연스러운 헤어짐의 한 부분이겠지라며 혼자 진지한 생각을 하곤 한다. 진짜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으면서.
또한 가끔 놀라운 부분에서 상대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날 무심코 정리하던 책장에서 흘러나오는 사진과 편지들을 볼 때면 이 모습은 드라마에서만 보던 모습인데 내가 이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에 웃음이 새어 나오다가도 정말 내 모든 구석구석에 네가 있다는 생각에 놀라워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