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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약시 Jan 27. 2021

나랑 동갑이 아니라잖아.

시작부터 그가 낭만적으로 거슬렸다.

20살 대학생활의 시작이었다. 나의 대학생활의 목표는 취업이 아니었다. 재밌게 살기였다. 눌러 살아온 짧은 19년의 세월이 그렇게 서러웠는지 내 목표는 간략했지만 정확했다. 남들은 모두 취업스터디를 간다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의 20살 초반을 그런 취업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문에 붙어있던 토론 동아리 광고를 보았다. 그래 나의 대학생활은 이거다. 바로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저 해보고 싶은데요"


그 날 바로 동아리 회장과 만남이 주선되었다. 그 자리에 온건 총 2명이었다. 회장 언니와 한 선배. 나보고 무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난 그저 말하는 걸 좋아한다고 답했다. 말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선배와 언니는 날 보고 씽긋 웃었다. 그날 오후 문자로 공지가 왔다. "00일 00관 00실로 7시까지 오세요. 신입생이 올 예정입니다" 누가 봐도 그 신입생은 나였다. 두근거렸다. 그렇게 호실로 들어가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00입니다. 말하는 걸 좋아합니다. 다 같이 친해지고 싶어요.' 20여 명의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동아리의 일원이 되었다.


그 해 여름, 동아리에서는 14박 15일의 긴 여행을 기획하였다. 전국에 있는 토론동아리들과 연합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서울부터 시작하여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와 마지막으로 경상도를 찍고 끝내는 그런 긴 여정이었다. 재밌는 대학생활에 취해있던 나는 가장 먼저 참석하겠다고 손을 들었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14박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시작한 여행이었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모 대학교 총학생회관에서 쪽잠을 자며 밤새 토론을 나누었다. 사회문제부터 시작하여 사소한 대학생활과 나의 미래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었다.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끝없는 대화가 지속되었다. 젊은 밤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경기도로 떠났다. 경기도 모 대학 학생회관 앞에 한 무리가 서있었다. 우리와 같은 토론동아리 사람들이었다. 이 동아리 사람들은 참 신기한 눈을 가지고 있다. 뭔가 초롱초롱한 그런 눈이랄까.


우리는 토론을 하기 전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때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왔던 그가 앉아있었다. 나와 동갑이라던 그이가! 그는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21살 000입니다." 아. 21살이구나, 나와 동갑이 아니라는 생각에 진이 빠졌다. 나의 기대는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난 어렸고 외로웠고 그 속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날도 치열한 토론이 시작되었고 역시나 거의 밤새 논쟁이 오고 갔다. 어떻게 삶을 살 것인지 누구는 어떻게 논지를 펼쳤는데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등등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그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놀란 나는 그 얼굴을 쳐다봤다. 들킨 걸까. 내가 한 하품과 풀린 눈이 그 사람한테 닿은 것일까? 멀뚱히 그를 쳐다봤다. "재미도 없는데 산책이나 하죠, 이 대학 안 와봤죠?" 때 마침 재미없던 찰나였다. 즐거운 제안이었다. 선뜻 응한 나와 그는 함께 길을 걸었다. 그는 저런 철학적인 질문들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함께 대학 캠퍼스를 정처 없이 걸었다. 그날의 대화가 어떤 대화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밤 빛이 내린 대학 캠퍼스 길은 생각보다 낭만적인 길이었다.


다음 날,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싸고 길을 나설 때였다. 뭔가 인원수가 이상했다. "아 경기 동아리 사람들도 같이 떠나기로 했어. 같이 가고 싶대" 그렇게 우리 동아리 인원과 경기 동아리가 합쳐졌다. 기쁘면서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충청도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돈이 없는 대학생들이라 주로 버스를 타고 지역을 오고 다녔다. 버스 멀미가 심한 나는 항상 앞 쪽 창가 쪽에 앉기를 선호했고 그런 나를 위해 선배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희생해주곤 했다. 그런 배려를 알기에 멀미하는걸 굳이 티 내고 싶지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타기 전 몰래 약을 챙겨 먹고 봉지를 손에 쥐었다. 새로운 지역 동아리 사람이 추가된 만큼 정해진 짝이란 건 없었다. 무작위 제비뽑기로 짝을 정했고 나는 한 선배와 자리에 앉아 지역을 이동했다. 버스 이동시간은 사실상 잠자는 시간이었다. 밤새 치열한 토론 속에 지친 우리들은 항상 버스 안에서는 곤히 잠들곤 했다. 물론 그 속에서 난 잠들지 못했다. 심한 멀미는 나의 잠을 방해했다. 어쩔 수 없이 뜬눈으로 창문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충청도의 대학에서 또 다른 토론동아리 사람들과 만나 토론을 했다. 한숨도 못 잔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 결국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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