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서른의 절반이 지나가버렸다.
22년, 나에게는 잊지 못할 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맞고 싶지 않던 서른을 맞이해버렸으니까 말이다. 청춘이라면 그 누구나 불안해하는 그 나이 "서른"이 나에게도 왔다. 갓 서른에게 아직 30대는 어색하기만 하다. 길 가다 설문조사를 하게 될 경우에도 의도치 않게 '20대 후반'을 체크한 후, 서른이 된 '나'는 30대를 체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른이 되기 전, 30살은 거창하고 대단한 나이일 거라 생각했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의 차이와 책임감은 어마 무시하게 달랐으니까, 29살과 30살은 그렇게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9살의 끝에서 30살을 맞이하기 전, 그냥 30살은 앞자리가 바뀌는 것뿐 많은 것들이 달라지지 않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른 살을 맞이하고 반년 넘게 흐른 지금, 그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마냥 기뻤다. 갓 어른이 된 '나' 자신에 심취했었고, 어른이 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 흔한 소주를 마시는 일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용돈을 가져볼 수 있었고, 대학을 다니며 자유롭게 연애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었다. 이제 부모의 동의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20대라는 그늘 뒤에 어느 정도 책임의 크기를 가릴 수 있었다. 나의 선택이 잘못되거나 힘들어도 '난 어리잖아', '처음 겪는 일이잖아'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나 자신뿐만 외부에서도 이해해줄 수 있는 나이가 20대였다.
하지만, 반기를 겪어본 서른 살은 많이 다르다. 이제 나는 어리지 않다. 이게 사회 속의 서른의 위치였다. 난 더 이상 어리지 않고, 내가 벌인 모든 일은 오롯이 '나 자신'이 처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 그 책임의 크기는 그늘없는 땡볕 아래에 어떤 그늘도 없이 온전한 크기를 보이고 있다. 또한, 내가 느끼는 책임의 크기와 남들이 보는 책임의 크기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많이 어린것 같은데, 아직 내가 짊어지고 갈 책임의 크기는 20대의 크기와 별 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사회는 아니라고 한다. 이제 서른 살의 책임은 나 자신이 느끼는 크기보다 점점 더 부풀어져 감을 느낀다.
크기의 딜레마 속에서 행동은 점점 더 굳어져간다. 전에는 과감히 두 팔 뻗어 행동할 수 있던 모든 일들에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책임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해본다. 그 후, 감당할 수 있는 크기임을 알게 될 때 두 팔을 벌려본다. 그리고 안으면서도 고민한다. 맞겠지. 감당할 수 있겠지. 이것이 30대인가 보다. 한번 더 깨닫는다.
대신 그만큼 사회에서는 서른 살인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책임에 대해 보상을 해주긴 한다. 회사에서는 직책과 연봉으로, 집에서는 자유와 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말이다. 갓 서른이 되었을 때는 이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난 보상을 원하지 않았고, 그냥 책임 없는 자유를 좀 더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똑같은 기간이 주어지고 나도 그중 한 명이니, 더 이상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받아들인 서른 살이었다.
그래도 서른 살의 나는 행복하다. 20대는 안갯속에 존재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믿고 걸어 나가면 걷힐 거라는 믿음으로 버텼었다. 현재, 그 안개는 시원하게 걷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그 속에서 길을 찾고 나아갈지 조금 알 것 같다. 이제 좀 더 편하고 쉬운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틀에 갇히는 삶이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좀 더 편안함을 느낀다. 이렇게 나이를 받아들이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