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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양파 Oct 01. 2015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 무렵 누군가

아쉽다 아쉬워~

추리 소설 작가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작품은 소설보다는 영화로 먼저 만났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방황하는 칼날을 통해서다. 영화를 재미나게 봤으니, 기회가 되면 꼭 이 사람의 다른 소설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서점에 가면, 항상 오쿠다 히데오만 찾게 되는 바람에 늘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음식과 함께 작가 편식도 있어 항상 좋아하던 작가의 작품만을 찾다 보니, 매번 놓쳤던 거 같다. 그러나 인연이 있으면 만난다고, 오쿠다 히데오를 찾고 있는데 먼저 "그 무렵 누군가"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제목부터 뭔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거 같은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다. 334페이지의 분량에 총 8개의 소제목으로 되어 있다. 첫 페이지를 넘기고 그대로 빠져 들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을 잡기 위한 죽은 자의 애인과 왠지 범인일 거 같은 한 남자 그리고 그녀의 뒤를 미행하는 어떤 이, 초반부터 영화를 보는 거처럼 긴장감이 넘쳤다. 그런데 진행 속도가 너무 스피디했다. 범인일 거 같은 남자는 범인이 아니었고, 죽은 자의 애인은 벌써 실마리를 찾아 범인을 잡기 위한 덫을 놓았던 것이다.



어라, 우선 하나의 사건은 이렇게 끝나고 또 다른 사건이 이어지나 하면서 첫 에피소드 였던 "수수께끼가 가득"의 결말을 봤다.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니, 이런 장편소설인 줄 알았던 내가 착각을 했던 거였다. 총 8개의 단편 소설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내용이 너무 빨리 전개된다고  했어하면서 서점의 불편한 의자를 소파 삼아 두 번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이야기인, "레이코와 레이코"는 킬미, 힐미라는 드라마의 소재로 나오는 다중인격에 대한 내용이다. 한 여자가 어떤 남자를 죽였는데, 자기가 살인을 했는지 기억을 못한다. 그리고 갑자기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인물로 변하더니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도와준 변호사와 그의 남자 친구는 그녀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의 살인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그녀를 처벌할 수가 없다. 살인을 했던 그 인격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진술을 받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이야기도 마무리된다.



"들어봐 다중인격자인 척하면서 범죄를 저지른 건 나의 또 다른 인격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러면 이런 건 어떨까. 원래 성격이 광폭한 인간이 사람을 죽인 뒤에 온화한 인간인 척하는 것. 그리고 광폭한 짓을 한 건 다른 인격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본문에서)



다중인격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변호사의 남자친구가 말하지만, 변호사는 그냥 무시한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모습에서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면서 열린 결말로 끝난다. 여기서 잠깐, 단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이야기나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뭔가 사건이 꼬이고 그걸 다시 풀어내는 기발한 추리가 나와야 하는데, 사건이 일단락됨과 동시에 꼬일 거 같은 또 하나의 사건은 자살이나 또 다른 살인으로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그동안 명탐정 코난과 셜록홈즈를 보면서 추리극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져서 그런지, 에피소드별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세 번째 이야기인,  "재생 마술의 여인"은 소재가 너무 기발하다. 어느 부잣집 부부는 양자를 얻기 위해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그들에게 귀여운 사내아이를 양자로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입양을 담당한 주인공이 남편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잠시 남아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7년 전 동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 놓는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그가 했던 사건과 너무 닮아 있었다. 맞다. 범인은 바로 그였던 것이다.



경찰조차 단순 강도라고 했던 사건을 그녀는 혼자서 끝까지 추적했고 끝내 범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단편소설이니 여기서 이야기가  마무리돼야 하지만, 그녀의 끔찍한 복수는 이제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말이다. 여기까지 딱 좋았다. 복수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소름까지 돋았는데, 역시나 아쉬운 결말로 이야기는 또 그렇게 끝났다.



네 번째 이야기인, "아빠, 안녕"은 추리가 아닌 판타지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딸이 크게 다친다. 그리고 아내는 죽고 딸은 살아난다. 그런데 그 딸이 딸이 아니라 아내였던 것이다. 비주얼은 아빠와 딸이지만, 영혼은 남편과 아내로 그들은 살아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내이자 딸이 결혼을 한다. 누구랑?



다섯 번째 이야기인, "명탐정의 퇴장"은 셜록 홈즈와 왓슨을 생각나게 만든다. 영국의 유명한 탐정이 은퇴를 앞두고, 그동안 자신이 했던 사건에 대한 책을 만들었다. 책이나 쓰면서 평화롭게 보내던 어느 날, 본인이 해결했던 사건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그는 다시 한번 현역 시절을 만끽하고 싶어 그 곳으로 간다. 그러나 그 사건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해야 하나? 가장 허무한 결말이었다.



여섯 번째 이야기인, "여자도 호랑이도"와 일곱 번째 이야기인, "자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는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다. 분량답게 반전이나 복잡한 사건이 아닌 그냥 하나의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런데 왠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다. 추리보다는 역시 판타지라고 해야 할 거 같다. 가볍게 읽었지만, 결말에서 곰곰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이야기인, "20년 만의 지킨 약속"은 약속의 무서움과 약속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내용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 어린 여자아이가 처참하게 살인을 당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살인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느꼈던 두 남자는 그동안의 죄책감에게 벗어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는 20년 후 현재에서 시작되어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방법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 그동안 막장을 너무 많이 봤는지 결말을 보고 또 아쉬움에 허무함까지 들었다.



책을 빨리 보는 성격이 아니지만, 진짜 빨리 봤다. 그만큼 몰입도는 강했는데,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거 같다. 이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평가해서는 안될 거 같고, 아무래도 다른 작품을 읽어야겠다. 굳이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서점에서 충분히 다 볼 수 있는 분량의 책이다. 진정한 추리소설을 원한다면, 아쉽다고 할 수 있지만 기발한 소재에 각 에피소드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는 재미는 확실히 있다.



그렇게 책을 다 보고, 뒷 표지를 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여기 담긴 여덟 편의 이야기도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는 각기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소중한 작품들이다. 장편 소설 비밀의 원형인 아빠, 안녕, 명탐정의 규칙을 집필하면서 계기가 되었던 명탐정의 퇴장, 출판사에 작품을 보내 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 마감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처음부터 다시 새로 썼던 작품 자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등. 이중 레이코와 레이코, 수수께끼가 가득, 20년 만에 지킨 약속, 재생 마술의 여인 등 네 편은 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총 출동해 화제가 되었던 후지 TV 드라마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즈의 원작이기도 하다.



내가 읽어야 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드디어 찾았다. 비밀과 명탐정의 규칙 그리고 일드인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즈다. 이 작품들은 장편소설이라 더 많은 읽는 재미를 줄 거 같다. 오쿠다 히데오만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편식을 줄이고 다양하게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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