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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양파 Oct 11. 2015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 잡(THE JOB)

갑의 횡포에 맞서는 을의 고군분투기

더글라스 케네디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글이지만 영상을 보는 듯한 디테일한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바로 그것이다. 빅픽쳐, 행복의 추구, 파리 5구의 여인에 이어 "더 잡(THE JOB)"까지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의 소설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잡은 그 끝이 좀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 같아서 살짝 아쉬었다. 사물, 배경, 사람에 대한 나노 같은 묘사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엄청난 흡입력을 보여줬지만, 마지막 한 장을 두고 굳이 이렇게까지 몰입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질에 갑의 횡포에 힘든 적이 있었다면, 잠시나마 대리 만족으로 조금이나마 화병에 도움을 주는 책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잡은 총 3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섹션은 컴퓨월드라는 잡지에 광고 세일즈 맨인 네드 앨런(주인공)은 갑의 횡포에 직장을 잃게 되는 이야기다. 두 번째 섹션은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시나 갑의 횡포에 계속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런데 행운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온다고 그에게 기적적인 새로운 잡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그 잡이 그에게 행운이 아닌 불행이 된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섹션은 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한 갑의 횡포에 복수를 하기 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더잡의 주인공인 네드앨런은 세일즈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자신이 맡으면 단번에 해결하는 엄청난 능력자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전화로 충분히 어려운 광고도 척척 따내는 회사에서 인정하는 능력 있는 직원이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잘 나가던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가 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회사 인수로 인해 구조조정이라는 거센 파도가 닥치고 있을 때, 잡지 마감을 며칠 앞두고 광고를 하려고 했던 회사가 펑크를 내버린다. 본인 팀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어떻게 해서라도 처리를 하다 보니, 도덕적이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그래도 남들에게 정직하게 말을 못했지만, 결과가 잘 마무리되었기에 다 잘됐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에게 달콤한 속삭임이 다가온다. 본인 잘못은 절대 아니지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기 잘못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결과만을 생각하고 덜컥 그 속삭임에 빠져든다. 



그런데 세상 일이란 게, 네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법이다. 그에게 가혹한 형벌이 내리고, 자신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을 거 같았는데, 결과적으로 본인만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여기서 더글라스 케니디 소설만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주인공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즐거울 때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몰기 때문이다. 빅피쳐에서는 아내의 불륜남을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는 바람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했고, 파리 5구의 여인에서는 잘 나가던 교수가 농간에 빠져 프랑스로 도망 아닌 도망을 갔다. 더잡도 비슷하다. 최고는 아니지만, 나름 뉴욕에서 돈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직장에서도 쫓겨나고, 더불어 아내까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래저래 갈 데까지 간 네드는 정말 다시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고 느꼈다. 더구나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또 그눔의 갑의 횡포로 인해 회생불가 판정을 받게 된다. 더구나 그 갑질로 인해 한 사람은 자살까지 하게 된다. 네드도 그처럼 그냥 죽고 싶었을 거 같다. 그러나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하면서 보내게 된다. 



섹션 1은 좀 지루하다. 네드의 불행을 계속 지켜봐야 했고,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안 했기 때문이다. 뭐 잘난 인간이 회사에서 짤렸다고 이리도 슬퍼하나. 그러게 그동안 펑펑 돈 쓰지 말고 살지 하면서 네드의 불행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섹션 2로 접어들면서 나의 밤은 책과 함께 보내야 했다. 이때부터 책을 놓지 못하고 빠져들어 버렸다. 



그에게 다가온 달콤한 속삭임. 사모펀드를 관리하는 일이라, 그동안 했던 잡지 광고 세일즈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가 운영해야 하는 펀드가 신생 IT 회사를 찾는 일이라서 컴퓨터 관련 잡지 광고 일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갈데가 없는 네드에게 절대 놓쳐서는 안될 달콤한 속삭임이었기에 당연히 맡게 된다.



네드앨런의 심리상태가 이러지 않았을까?!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가게 된다. 회사에서 짤리게 만든 갑의 횡포에 맞서 같이 퇴사한 사람끼리 의기 투합해서 그 엄청난 갑의 횡포를 다시 되갚아 주겠지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고, 내용은 갑보다 더 한 슈퍼 갑이 등장했던 것이다. 섹션 1에서 살짝 복선이 있었는데 눈치채지 못했다. 암튼 갑에 슈퍼 갑까지 스케일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네드는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갑의 죽음을 목격한 게 된다. 그런데 그 죽음이 자신에게 모든 포인트가 맞춰져 가는 현실에 당황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네드는 슈퍼 갑의 횡포에 노예처럼 따르게 된다. 



아니라고 하면 살인자 혹은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당할 수 없기에, 그저 슈퍼 갑이 하라는 지시를 아바타처럼 수행하게 된다. 일을 하면 할수록 숨어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복수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작전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늘 아내에게 좋은 결과만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네드는 항상 그녀에게 통보만 해왔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녀에게 먼저가 아니라, 항상 나중이었다. 그런 그녀는 그래도 네드를 믿었지만, 끝내 그를 떠난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서로 간의 믿음이 사라져서다. 



그런 아내였지만 네드의 부탁을 이번에는 다 들어준다. 왜냐하면 결과 통보가 아닌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남자는 여자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하는 거다. 아내 말을 안 듣고 했다가 엉망이 됐으니 말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복수의 실마리도 찾고, 또 다른 그녀의 도움으로 확실한 증거까지 잡는다. 



그리고 슈퍼 갑에게 히든카드를 보여준다. 당연히 슈퍼갑은 서서히 몰락해 간다. 그런데 여기서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이 나온다. 슈퍼 갑 위에 슈~슈퍼 갑이 있었다. 네드는 슈~슈퍼갑에서 꼬리 자르기를 하라고 제안한다. 나라면 속 시원하게 다 없애버렸을 텐데, 개운하지 않은 결말로 끝이 났다. 



"그거 참 안됐군요. 나쁜 놈이 늘 이기는 게 세상 이치인데..... 어쨌든 앨런 씨의 인생은 앨런 씨의 몫이니까" 슈~슈퍼갑은 이렇게 말하면서 네드에게 빈자리가 된 슈퍼갑을 제안한다.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이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는데, 또 다른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에 영웅심리가 있다는 거 깜빡했다. 네드는 영웅답게 과감히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아내의 고마움은 안 네드는 다시 아내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래 나 없이 살아보니 힘들었지 하면서 받아 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이라면 넌 그렇게 살아야 해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상대를 말로 설득하려면 영화사나리오처럼 구조를 잘  짜야해. 일단 스피디한 전개로 충격을 안기고, 새로운 제안으로 주의를 끌고, 어떻게 이야기가 흐르게 될지 자못 궁금하게 만드는 거야.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만한 결론으로 못을 박아버리면 게임오버지. 고객에게 하는 말은 창작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명심해. 예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본문에서) → 세일즈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에도 적용될 거 같다.



세일즈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설득’이라 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 잡(THE JOB). 그 설득에 울고 웃는 이들이 많은 요즘이다. 



소설의 배경은 1998년이다. 구조조정, 인수합병,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등 당시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해 우리도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갑의 횡포는 여전하다. 그 당시 갑의 횡포는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보다 더 했을 거 같다. IMF였으니깐 말이다. 소설 속 네드처럼 갑의 횡포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네드는 제대로 복수를 했는지 궁금해진다. 이건 복수라기 보다는 목숨을 지키기 위한 울부짐 같았기 때문이다. 좀 더 명확하게 갑의 횡포에 복수를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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