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개운하지 않아~
지하철에서 읽기 딱 좋은 200페이지 분량이기에 몇 시간만 투자하면 다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작가 편식이 심한 편이지만, 냉정과 열정사이와 도쿄타워는 재미나게 있었으니, 등 뒤의 기억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책 표지에 나오는 '에쿠니 가오리가 그리는 감성 미스터리', 감성 미스터리가 뭘까? 감성 좋아한다. 미스터리 좋아한다. 둘을 합친 감성 미스터리, 당연히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몇 시간만에 다 읽을 거란 나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고, 결국 이틀이나 걸렸다. 그리 어려운 글이 아닌데, 자꾸만 앞 페이지로 이동을 하는 바람에 200페이지 분량은 실제 500페이지 분량이 되어버렸다. 미스터리답게 계속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자꾸만 숨긴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달려왔는데, 종점에 왔음에도 그 비밀은 속 시원하게 밝혀주지 않고 끝나 버렸다.
결국 봤던 페이지를 계속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주인공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의 연결점과 진실을 스스로 유추해내야 한다. 잠시 딴생각을 하면서 책을 보게 되면, 엄청난 걸 놓칠 수 있기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성(?)을 다해 읽어야 한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진실이 있었다. 웬만하여서는 읽지 않는 역자 후기에, 포털사이트에 나와있는 책 소개까지 훑어 보고서야 미스터리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 뭔가 다이내믹한 사건도 없고, 격한 감정을 내비치지도 않고, 뭐랄까? 확실히 뭔가를 숨기고 있는데, 딱히 그걸 들춰내서 뭐하나, 이런 느낌이다.
감성 미스터리라고 멋지게 만들었는데, 그냥 엉성한 미스터리에, 촉촉한 감성만 남아 있는 작품인 거 같다. 결과적으로 내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 이런 소설은 진짜 짜증이 난다. 뭐, 화끈하게 밝혀지는 것도 없고, 그저 앞과 뒤를 연결해야 대략적으로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고, 저기 저 사람은 요기 요사람인가? 암튼 수학공식도 아니면서, 계속 빈칸을 채워 나가야 한다.
주인공 히나코, 그녀에게는 가공의 동생이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동생, 한때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가공의 동생과 함께 있는 걸로 만족하고 산다. 그녀가 사는 곳은 실버아파트, 여기에 그녀를 챙겨주는 옆집 아저씨가 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사고로 사람을 죽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히나코와 왠지 연결되어 있는 거 같은데, 그게 영...
히나코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그리고 남편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바람이 나서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그녀의 큰 아들은 그녀를 증오한다. 그리고 큰 아들에게는 예쁜 아내와 딸이 있는데, 어느 날 그들을 버리고 떠난다. 처음에는 엄마처럼 불륜 때문에 떠난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증오했던 엄마와 아내가 같은 인물로 보였던 사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뚱맞게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 일본 소녀가 나온다.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한 꿈과 고비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고지마 선생님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좀 이상하다.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히나코와 가공의 동생이 말하는 추억과 자꾸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단서가 하나 나온다. 그녀가 그녀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단서가 말이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실버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히나코, 그녀의 집은 아파트의 어느 집보다 적막하다. 타인이 보는 그녀는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독신녀이지만, 히나코는 혼자가 아니다. 돌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언제나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런 그녀의 집을 종종 찾아오는 이웃 남자는 히나코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과거의 진실을 자꾸만 들춘다.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여덟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서서히 맞춰지는 진실의 조각들. 그 조각들이 모인 귀퉁이, 귀퉁이마다 히나코와 그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슬픔이 조용히 스며있다. 사람이 살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거 같은 히나코의 방 안, 허망하리만치 고용한 풍경처럼.(표지에서)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여덟 사람의 이야기... 200페이지 분량 치고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설명이 좀 미흡한 거 같다. 감정이입보다는 자꾸만 관찰자 입장이 되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서서히 맞춰지는 진실의 조각들... 그래 이 조각을 맞추기 위해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어느 귀퉁이는 완벽하게 맞았는데, 다른 귀퉁이는 살짝 틈이 생겼다. 원래의 조각을 찾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읽어야 할거 같다. 그런데 별로 읽고 싶지 않다. 대충 맞추긴 했으니깐 말이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슬픔이 조용히 스며있다.... 히나코의 슬픔밖에 안 보인 던데, 그녀가 현대인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거 같고, 그저 나이 먹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나만 보이는 가공의 인물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은 부럽다.
딴지를 거는 건 아닌데, 올만에 읽을 책에 배신을 당한 거 같아 기분이 좀 안 좋다. 아무래도 엄청난 긴장감에 스릴 넘치고 쫄깃쫄깃한 미스터리 소설을 찾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