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양파 Apr 11. 2016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 1,2

한 아이가 죽었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학교에서 한 아이가 죽었다. 자실일까, 타살일까? 알 수 없다. 그런데 죽은 아이는 한동안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그럼 아이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공중그네, 면장선거, 한 밤 중에 행진, 남쪽으로 튀어, 오 해피데이, 꿈의 도시, 소문의 여자 그리고 침묵의 거리에서까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단순히 엽기, 코믹만 있는 게 아니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함께 부조리에 대항하는 강력한 시그널이 담겨 있다. 일본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현재 우리에게 닥친 여러 가지 문제를 대신 꼬집어 주고 있는 거 같다. 특히 침묵의 거리에서를 읽으면서 그 느낌이 더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나구라 유이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아들이다. 부잣집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밉상 캐릭터가 됐지만, 그래도 녀석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같은 반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나무에게 떨어져 죽었다. 죽기 전에 함께 있었던 4명의 아이들, 겐타, 에이스케, 후지타, 가네코는 용의자로 몰리고 수사를 받게 된다. 이렇다 할 목격자도 증거도 없기에 얼마 후 아이들은 풀려 난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정확히 마지막 페이지에서 그 진실이 밝혀진다.



구와바타 시내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된지 3주가 지났다. 사인은 운동부실 2층 지붕에서 추락사. 하지만 그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직전까지 같이 있던 동급생 네 명이 숨진 남학생에 대한 상해 혐의로 체포, 상담소 송치되었지만 입건은 불발로 그쳤다. 학교 측은 집단 괴롭힘이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한 학생의 죽음이 작은 마을을 뒤흔들었다.
숨진 남학생은 작은 체구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예전부터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금품을 갈취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그런 전력이 있었기에 유족들이 '그런 애가 혼자 지붕에 남겨져, 스스로 위험한 짓을 했을 리가 없다.'라는 의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강요에 의한 행동이었거나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게 아니냐고 삼촌은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도 검찰도 아직 수사를 종결하지 않았다. 숨진 학생을 괴롭힌 소년들을 임의로 출두시켜 지금도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담당 검사는 "소년 사건에서 진술을 받아 내려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다지며 목격 증언이나 물증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부모들도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당 중학교에서는 유족의 요청으로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번 일에 관한 글짓기를 실시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이 내 자식이 쓴 글을 왜 허락도 없이 유족에게 보여줘야 하냐며 이의를 제기한 탓에 보류 상태다.
이 작은 마을 곳곳에서 각기 다른 불안과 분노가 휘몰아치고 있다. -다카무라 마오 기자- (본문중에서)



1, 2권으로 되어 있는 침묵의 거리에서는 1인칭 시점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들의 시점으로 되어 있다. 죽은 아이 부모의 시점. 용의자로 몰린 4아이들과 부모의 시점. 학교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한 학교 선생들의 시점. 지난번 소년범을 제대로 잡지 못한 일을 이번에 만회하기 위해 끈질긴 수사를 펼치는 경찰의 시점. 평범한 검사에게 처음으로 맡겨진 단독 사건, 승진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검사의 시점. 그리고 같은 학년으로 사건과 무관하지만 곁에서 아이들을 지켜봤던 친구의 시점.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동일하게 그들을 담아 냈다. 누구에게 더 주지도, 덜 주지도 않았기에 읽는내내 시점에 따라 객관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누가 봐도 죽은 아이의 부모에게 감정이입이 더 되겠지만, 작가는 치우치지 말고 냉철하게 판단하길 바라는 거 같았다.



그래서 냉철하게 판단해봤다. 아이의 죽음은 슬프다. 하지만 왜 아이가 죽었는지, 아니 그 전에 왜 아이가 왕따를 당했는지 전후 사정을 알아봐야 한다. 가장 힘들다는 중2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다. 모두 다 시장표 운동화를 싣고 있는데, 혼자만 명품 운동화를 싣고 있으며, 가여워서 도움을 줬는데, 돌아오는 건 늘 배신이었다면, 그래서 왕따가 옳다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리고 죽은 아이의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는 죽었는데, 용의자로 몰린 4명의 아이는 짧은 근신 후 너무나 일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학교도 다니고, 여름에 테니스 대회도 나간다고 한다. 내 아이는 좋아하는 햄버거도 못 먹고, 웃지도 화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들은 다 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들이 대회에 나가게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래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용의자 4명 아이의 부모는 다르다. 죽은 아이는 슬프지만, 우선 내 자식이 먼저다. 경찰에 잡혀 갔고, 풀려 나와서도 조사를 계속 받고 있다. 우리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닌데, 주변의 시선은 아이를 범인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거, 제발 알리고 싶은데 유족은 너무 과한 요청만 하고, 우리는 매번 피해자처럼 있어야 한다. 어느 부모나 내 자식이 먼저라는 데 동의를 안 할 수 없다.



사건이 벌어진 학교도 비슷하다. 유족에게 끌려다니고, 학부모들에게 끌려다니고, 선생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했던 나약한 교장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기로 한다. 


"나구라 학생의 죽음이 사고인지 사건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우리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매일 밤 그렇게 혼자 묻고 있습니다. 저는 유족과 함께 슬퍼하고, 함께 고통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더라고 인지상정에 따른 판단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책임은 전부 제가 집니다."(본문중에서)


1권을 지나 2권에서 200페이지가 지나도록 나약한 모습만 보였던 교장이 이렇게 변하다니, 늦은 감은 있지만 그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교장선생님이 지금 우리에게 있었다면...



침묵의 거리에서는 아이가 죽고 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와 왜 아이가 죽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과거 이야기로 되어 있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접점을 이루고 있어, 이게 과거인지, 현실인지 착각하게 만들지만 그래서 더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겐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날 학교가 끝나고 테니스 부 친구 다섯이서 부실에 모여 떠들다 운동부실 지붕에 올라갔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고, 그저 경치가 좋아서였다고 한다. 거기서 사카이와 가네코가 은행나무로 건너뛰었고, 가지를 타고 내려왔다. 겐타와 후지타는 올라온 대로 지붕으로 내려갔다. 나무로 건너뛰지 않은 건 바지를 더럽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구라를 비중에 두고 집에 갔다. 혼자 남겨 둔 건 나구라가 둔해서 짜증이 난 탓이었다. 늘 잇던 일이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본문 중에서)



겐타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걸 밝히려고 한다. 1권은 그저 자살, 타살 이것만 궁금했었다. 하지만 2권은 단순한 물음이 복잡해진다. 자살이듯, 타살이듯, 왜 나구라는 지붕에 올라갔을까? 다른 아이들은 다 집으로 갔는데, 왜 혼자 있었을까? 그리고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사다 바치면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는 이유는 뭘까? 물음표가 하나씩 지워지면서, 가장 근본적인 의문, 타살, 자살 여기에 포커스가 맞혀져 간다.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결말이다. 더 해줄 말이 많은 거 같은데, 아니 아직 끝나지 않은 거 같은데, 끝이란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끝이 난다. 자살, 타살 그 답만 알려주고 끝이 난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이후의 이야기인데, 그는 나에게 "궁금하면 상상해, 니가 무엇을 상상하듯, 그건 니 자유니깐." 이렇게 악올려주는 거 같다. 마지막 페이지로 가기 전에, 현재 이야기에서 결론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생뚱맞게 끝나버려서 많이 당황했다.



"그러면 안된다. 한 생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너희가 어른이 돼서도 매년 7월 1일이면 나구라 유이치를 떠올릴 거야. 그리고 그날 일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겠지. 자신을 속이려 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게 진리라는 거다." (본문중에서)


하시모토 검사가 겐타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울컥했다. "그게 진리라는 거다." 현재 나는 진리가 없는 곳에 살고 있구나.



"부인께서 바라는 건 뭔가요?" 하고 물었다.
"진실을 알고 싶어요. 그뿐입니다." (본문중에서)


책, 영화, 드라마는 언제나 결말이 있다. 아이의 죽음도 진실을 알 수 있고, 무시무시한 살인마도 끝내 잡힌다. 복수도, 배신도, 배반도, 외계인의 침공도 언제나 결말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 다르다. 이건 소설일 뿐인데, 자꾸만 현실과 접점이 되어버려서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소설 속 엄마도 이렇게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데... 소설처럼 명확하게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럴 거라면 믿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리사와 아키오의 나쓰미의 반딧불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