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을 헤쳐나갈 모든 영자들의 순간을 응원하며
수영 강사님들은 회원들의 헐떡이는 모습을 제대로 된 강습 진행의 증거라 생각이라도 하는 것일까? 지난달 시험 기간을 핑계로 수영을 미뤘던 나에게 벌을 주겠다 작정이라도 한 듯 , 선생님은 지난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타이트한 수업 진행을 예고하셨다. 원활한 강습 진행의 증거를 보기로 작정한 듯한 선생님의 강습 하이라이트는 바로 자유형 4바퀴. (참고로 우리 수영장은 50m 수영장이라 왕복이 100m이다.) 4라는 숫자를 듣자마자 숨이 ‘턱’하고 막혀오며 명치 끝이 답답해져 왔다. 하지만 문제는 400m가 아니라, 온 몸을 엄습하는 공포였다. 이런 공포감으로 수영을 하는 순간 4바퀴를 평탄하게 완수하긴 글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젠장,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질 필요는 없었는데. 나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지, 앞으로 다가올 400m를 걱정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사이, 공포가 실현되고 말았다. 200m부터 삐걱대는 어깨, 데인 듯 따가운 기도, 제 기능을 잃고 자유분방하게 내려간 왼팔이 그 증거였다. 그야 말로 총체적 난국의 상황.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자, 한 바퀴만 쉰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달콤한 속삭임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려왔다. 그렇게 ‘그냥 멈춰, 말어?’를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다 어영부영 300m를 돌아버리게 되었다.
이미 체력은 바닥 난지 오래. 정신줄을 반 쯤 놓고 마지막 100m를 향해 물 속에서 벽을 찼다. 그 순간 신기한 일이 시작되었다. 벽을 찬 이상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다음 바퀴에 대한 걱정이 불필요해진 순간, 신기하게도 호흡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차분해진 호흡에 결국 끝을 봐야 한다면 조금 더 멋진 자세로, 조금 더 빠르게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밀려 왔다. ‘조금만 더’ . 온 몸이 외치자, 보이지 않는 마법이 입수하는 손을 한 뼘 더 앞으로 가져다 놓아주는 느낌이 들기 들었고, 나의 외침에 물살이 응답하듯 틈을 내주며 가속도를 붙여준다. 말 안 듣는 몸뚱아리와 다음 스트로크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법 같은 순간. 바로 이런 순간이 단순한 동작을 ‘나의 수영’으로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수영은 물속에서 특정 동작을 반복해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다. 한 동작만 반복하는 운동이라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수영을 놀리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인정한다. 빠른 플레이, 다채롭고 다양한 경기가 진행되는 여타 운동들보다는 지루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수영인들이라면 이런 조롱에도 끄덕 없이, 반복성의 비밀에 대해 무지한 그들을 속으로 안쓰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다들 알고 계시죠? 쉿! ) 반복으로 인해 이전 300m가 만신창이였더라도, 더 작게는 직전에 했던 팔 동작이 엉망이었더라도, ‘조금 더’를 외치며 뻗은 지금의 스트로크 하나의 반복으로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영의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영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기회이자 현실에 충실하라는 메시지이다.
다시 한 해가 돌아왔고, 숫자들은 늘 그랬듯이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매년 돌아오는 숫자를 22번 반복하며 지나온 큰 물결들을 돌아보니 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법이 반복되듯, 숫자는 반복되지만 한 스트로크가 만들어내는 거리, 내가 발전한 거리는 결코 작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수영이 나에게 일러준 것처럼, 반복되는 하루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조금이라도 더 나아간 현재를 위해 노력해야겠다. 나의 2023이 되도록, 모든 영자들의 영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