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배낭여행기_01.프롤로그
1963년에 태어난 선희씨는
1983년 매캐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대학교를 다녔고,
여행작가를 꿈꿨대.
소녀였던 선희씨는 어른이 됐고,
어느덧 사회인이 되어 결혼도 했지.
그러다 아이를 갖자 회사를 그만뒀대.
그렇게 24년의 세월이 흘러
54살의 선희씨는 공항 게이트에 서 있어.
딸의 첫 유럽여행을 배웅하러.
어제 혹은 오늘
하루하루 사랑을 하고
또는, 사랑을 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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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다
제 1화, 스며들 듯 배운 것이 사랑이었다.
490만 원.
2년 동안 꼬박 부은 적금 통장에 찍힌 액수였다.
비행기 표를 예매했고, 엄마에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그리곤 다음날 세계지도를 사와 머리맡에 붙이셨다.
여행을 2주 앞둔 어느 날
엄마는 달력 빼곡하게
내가 묵을 숙소와 전화번호를 적으셨다.
그게 엄마가 내게 건넨 애정어린 걱정이자 염려였다.
떠나는 날은 금세 찾아왔다.
공항에서 엄마와 작별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선 내가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마 한 번 더 뒤를 돌아 엄마를 볼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엄마보다
먼저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말도, 글자도, 셈도
그 모든 것을 엄마에게서 처음 배웠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난 어른이 되는가보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던 유럽에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지만
은연중에 엄마는 늘 곁에 있었다.
고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드는
엄마 생각은 쉽게 떨쳐 낼 수 있었는데,
좋은 것을 보고 있을 때 드는 엄마 생각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24살의 선희씨가 보고 싶었다.
24살의 선희씨는 숏컷머리가 근사했고,
늘씬해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시집을 늘 가까이했고, 유독 류시화 시인을 좋아했다.
그런 선희씨가 보고싶어 눈물이 났다.
나에게 있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엄마에게서 배웠으니까.
스며들 듯 배운 것이 사랑이었고,
걱정과 염려로 배운 것이 그리움이었으며,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은 헌신이었다.
그렇게 나는 첫 여행지,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너의 삶을 살아 딸래미.
입국심사를 끝낸 내 핸드폰에 찍힌 엄마의 문자였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떼는
딸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었다.
직접 찍고, 쓰는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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