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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Aug 13. 2017

당신이 두고 간 적막 앞에서
울지 못하는 생이 있다.

유럽 배낭여행기_02. 영국 런던

24살 나 홀로 유럽 배낭여행

02. 영국 런던



빅벤이 빛을 발하고

런던아이가 붉게 물드는 런던의 밤.


아무리 야경이 화려해도

연인들은 야경보다 더 반짝이는

상대의 눈을 응시한다.


런던 사람들이 알려준

로맨틱한 밤.


어제 혹은 오늘


또는, 사랑을 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


<TITLE>

사랑을 말하다.

제 2화, 당신이 두고 간 적막 앞에서 울지 못하는 생이 있다.




내가 열여덟이 되고,

당신이 스무 살이 되던 날이었다.

그 어느 날 당신은 문득 선물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그날 건네받은 책은 새 책이 아니었다.

책의 여러 페이지에 인덱스가 붙어 있었고,

후루룩 펼쳐 넘긴 책의 곳곳에는

당신의 필체가,

노란색 색연필로 밑줄 그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나의 표정에

당신은 말했다.


"그냥, 내가 아끼는 책이야"

그 책은 분명 당신이 아끼던 책이었다.


몇 번씩 드은 밑줄,

감탄과 영탄이 어린 메모

문장과 문장 사이는

당신의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홀로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좁은 런던의 호스텔 3층 침대에서도

그 책과 함께면 참 외롭지 않았다.




당신과 사랑을 하던 순간

우리는 종종 그렇게

당신의 흔적,

나의 흔적이 가득하게 남겨진 책들을 선물했다.


런던의 템즈강을 건너 빅벤을 바라봤다.

어둑해진 하늘

반짝이는 빅벤을 바라보다

문득 내 첫사랑이던 당신이 생각났다.

당신이 건네 준 첫 책이 제인 오스틴이었기 때문일 거야.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당신만의 사랑표현이었다.

표현에 서툰 당신이

가장 다정스레 건넬 수 있었던


"사랑한다"

는 말이었다.




사랑이 머물고

너로 물들던 나의 열여덟.

별보다 반짝이는 런던의 빅벤 아래에서

너를 생각하며

잠시, 이대로 첫사랑을 앓기로 했다.


겨울에 태어난 당신이

지독히도 싫어했던 장맛비 속에 세상을 떠났던,

4년 전의 어느 날.

그 시간들이 지난 오늘,

아직도 나는 그 책을 펼칠 때면

멍울진 무언가가 가슴을 누른다.




직접 찍고, 쓰는 유럽

<사진 무단 도용을 삼가 주세요>

COPYRIGHT 2016. J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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