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Feat. 셰익스피어 <햄릿> , 나짐 히크메스 <진정한 여행>

by 모몽

"To Be Or Not To Be..."


영화 제목으로도 나올 만큼, 문학에서도, 영화 대사로도 클리셰처럼 사용되는 문장이지만, 1600년 영국에서 그 무엇보다도 '핫'한 명문이었다. 사실 이 '사는가 죽는가'는 드라마에서도 문학 수업시간에서도 수도 없이 들어 너무나도 닳고 닳은 문장이고, '햄릿'의 줄거리며 주요 문장이며 다 아는 내용이라 거들떠 볼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갑자기 아름다운 오필리어의 그림에 이끌려서일까. 도서관에서 한참을 배회하다가 제목만 보고 지나치던 '햄릿'을 집어들었다. 빌려오고도 일주일 넘게 방치하고 있다가 어젯밤에야 다 읽었다. 피곤했지만 끝까지 읽지 않고는 자지 못할 것 같아 12시 넘어서까지 그 비극적인 결말을 보고서야 잠들었다. 피가 낭자하고, 주인공과 그가 아끼던 사람까지 죽고야 마는 내용을 보고서야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밤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꿈을 꿨다. 악몽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 꿈도, 어젯밤에 읽었던 햄릿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혼란스럽다. 왜 난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에 끌리고, 결국은 그 피가 낭자한 결말까지 보고 악몽까지 꿔야 했을까?



그래, 알고 있다. 난 그날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가까운 관계에 마음이 다치고 난 후였고, 그런 마음으로는 어떤 해피엔딩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슬픔보다 더 깊은 비극을 원했다. 햄릿은 그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해 준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것이 새아버지의 살인으로 인한 결과였음을 알게 된다. 한 나라의 왕인 새아버지에게 맞서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비극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햄릿은 많은 과오를 저지른다.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죽이고 결국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죽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그럼에도 그는 한 나라의 왕인 살인자를 몰아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햄릿의 비극적인 선택에도 그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원흉의 시작인 새아버지의 살인으로 인한 유가족이며, 피하기보다는 그와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싸움의 결과가 그 왕족의 자멸이지만 그는 명예롭게 죽는다.


죽음이 계속 이어지는 비극 속에 그나마 남은 한 줄기 같은 희망이라면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에게 이 비극을 알리라 말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보다 드러내기를 원했고, 죽어가는 왕자이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백성들에게 깨달음을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아침은 더디게만 오는 겨울 속에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상처받은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토록 상처를 받은 것은 그 관계가 너무나도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엄마라는 역할 속에 아이들의 그림자로 살아가며 점점 세상 속에서 지워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일까? 햄릿이 우리에게 주는 질문인 'To be, or not to be'가 사느냐 죽느냐의 질문이라기 보다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들린다.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떤 무기력이 내 몸을 덮쳐왔고, 그것은 상처입은 마음에서일지, 아니면 너무 안정된 생활에서인지 알 수 없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사회에서 내 역할을 포기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아프고 힘든 선택이었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가며 점점 나의 시간이 늘어가지만 가끔 어쩌면 나의 가야 할 길을 잃고 서성인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그렇게 창밖의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볼 때, 어디선가 읽었던 명문장이 다시 귓가에 멤돈다.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다시 도서관으로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냄새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신문에서만 나는 그 특이한 종이 냄새가 그리워졌다. 어쩌면 오늘은 무언가 쓸 수 있을 거라는 예감도.



진정한 여행

-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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