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Feat. 1Q84 & 1984, 데미안
어디론가 시간 맞춰 가야 가야하는 한 여자가 있다. 꽉 막힌 수도고속도로는 도대체 움직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초조하게 밖을 바라보던 여자는 택시 운전기사가 교통방송도 듣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택시 안을 둘러본다. 택시 자격증을 보면 분명 인가받은 택시기사인 것은 확실하지만 고급스러운 내부와 음향시설, 교통방송 대신 야나체크의 음악을 틀은 그는 어딘가 달라 보인다. 초조한 그녀를 눈치챘는지 그는 그녀에게 제안을 한다. 수도 고속도로 옆에 알려지지 않은 계단이 있는데, 그곳을 내려가면 지하철 역이 나오고 그녀가 가려는 장소로 시간 맞춰 갈 수 있을 거라고. 손님이 중간에 내린다면 오히려 그에게는 손해일 수도 있는데 그는 이상하게도 알려지지 않은 계단을 알려주고 '이런 방법도 있다'고 알려준다. 그 선택은 오로지 손님이 하는 거라는 말과 함께. 주인공은 망설이는 듯 하지만 고객과의 중요한 약속에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지 모른다.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그 계단을 내려오고 늦지 않고 고객과 만나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킬러로서.
'1Q84'의 이야기는 이렇게 택시 운전기사의 호의(?)로 시작된다. 그가 이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녀가 맞닥들이는 현실도 달랐을 지도, 그녀가 결국 만나야 했던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구원'이라고 불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녀는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로 들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고립된 세계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두 개의 달이 뜨는 곳'을 지나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으로 향해 간다.
3권이나 되는 긴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그 택시 기사는 누구였는지, 악의 근원처럼 보이던 '리틀피플'은 누구인지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것은 없지만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에 떨어진 두 남녀의 이야기는 강렬하게 남아 결국 조지오웰의 '1984'까지 읽게 됐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무자비한 세상에서 조지오웰의 이야기 속 두 남녀는 서로 남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찌 됐든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먹먹한 뒤끝을 남긴 1984, 이게 과연 해피엔딩인가 하는 의문을 남긴 1Q84. 서로 다른 엔딩을 향해 가는 두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색의 길로 안내한다. 그 길에서 나는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한 소년은 부모님의 세계와 크로머와 같은 질 나쁜 아이들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 데미안을 만난다. 부모님이 있는 성스럽고 정돈된 세계에서 크로머와 같이 뒷골목을 방황하는 세계로 이끌리던 소년은 오히려 크로머에게 협박을 받으면서 커다란 정신적 압박을 받는다. 그런 그를 알아본 데미안은 어떻게 했는지 크로머를 소년으로부터 떼어내고 그때부터 소년은 그를 따르게 된다. 그는 소년이 알고 있던 종교에 대한 해석이 아닌 또 다른 관점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갇혀 있던 알에서 깨어나 또 다른 자신만의 길로 향해 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는 작가의 서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한 인간이 자신의 '마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발견하게 되면서 끝을 맺는다.
주인공이 자신만의 길을 가며 끝맺지만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에는 이렇게 누군가의 호의가 있었다. 누군가 새로운 길로 안내하기도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렇게 주인공이 알고 있던 세계가 파괴되고, 기대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서면서 주인공은 성장하고 이야기는 한층 깊어진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대작가의 말과 누군가의 호의로 깊어지는 이야기를 보며, 월요일 아침, 모두가 떠나가 버린 시간, 세상에서 고립된 것만 같았던 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무수한 길을 바라본다. 어쩌면 내가 누군가의 호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 작은 호의가 나비의 날개짓처럼 누군가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걸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하며, 인간은 누군가로 살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는 한 모두 관심을 받을 경이로운 존재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