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Feat.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퓨처셀프> <뼛속까지..>

by 모몽

오해로 인해 친구로부터 손절을 당한다. 그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대학을 다니고, 회사를 다니며 일상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 후로 맺는 인간관계에 어떤 결락이 있다는 것을 쓰쿠루는 알고 있다. 여러 차례 누군가와 진지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 전에 헤어지게 되고, 또 다른 연인과 연애 중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대학시절 평소의 방학처럼 고향에 찾았던 쓰쿠루는 여느 때와 같이 동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연락을 하지만 모두들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에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된다. 너와 친구를 할 수 없다는. 한 명 뿐이 아니라 무리로 같이 다니던 친구들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그는 너무 기가 막히기도(?) 해서 그 이유를 묻지 못하고, 그렇게 방학이 끝난다.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만 전의 일상과는 다르다. 제대로 먹지도, 일상 생활을 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그는 전과는 다르다. 단단해져 보이지만 그의 새로운 인간관계에는 깊은 결락이 있다. 그렇게 스쳐지나간 인연에 또 다른 연인을 만나고, 그녀는 쓰쿠루에게 그 옛날 친구들을 만나서 이유를 물어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쓰쿠루는 색채를 찾아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잃어버렸던 과거를 찾으러.



그가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서 그 이유를 묻는다고 해서, 떠나간 시간이 돌아고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최소한 과거의 자신과 화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헬싱키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선물 같은 말을 듣는다.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한때 열망으로 가득찼던 때 자기계발서를 참 많이 읽었다. 사실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내 자신을 몰아쳐서인지 하나 둘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로 10년. 전업주부 8년. 필라테스, 요가, 헬스, 수영 등 여러 운동을 스쳐가기를 7년. 브런치 작가가 된지 1년.


그럼에도 가끔 공허가 밀려올 때가 있다. 가족들 모두 잠들고 난 밤에 혼자서 SNS를 둘러보다가 광고로 만나게 된 자기계발서. <퓨처셀프>에는 클리셰 같은 말도 있었지만, 울면서 본 자기계발서는 또 처음이었다. 그가 제시하는 사례와 스토리텔링에 잊고 있었던 또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는 전쟁의 시대를 지나왔고, 또 어딘가에서는 전쟁의 시대를 치르고 있다는 것.



한때는 작가가 되길 열망했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세상에 끄집어 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지도map of consciousness'에는 수치, 공포, 분노 등 낮은 수준의 감정에서 용기, 수용, 사랑, 깨달음 등 높은 수준의 감정까지 발전하는 단계를 보여준다.


'결핍>필요>열망>앎'으로, 더 높은 수준의 감정으로 가게하는 하는 건 깨달음이다. 작가이길 열망했던 때, 여러 작법서를 섭렵하면서도, 오히려 난 백지 앞에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제 와 깨닫는 것은 '내가 작가이길 선택했고, 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글이 쓰여지지 않는 날에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그마저도 안 될 때는 사색으로.


우리는 정체성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당신이 가장 전념하는 것에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글쓰기의 고전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작가는 파병으로 잃은 친구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그에 대한 세부 기억을 들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고,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 인생의 작고 평범한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원자폭탄에 의해 전멸당해도 아무 할 말이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세부 그림은 기록으로 남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이것이 작가들이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라고 말한다.


한 해 동안 우린 누군가를 잃었고, 누군가의 세계의 지나쳐 왔다. 그리고 우리는 또 누군가를 만났고, 만날 것이며, 누군가의 세계를 누군가는 나의 세계를 지나쳐 갈 것이다. 불안 속에서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우리가 작가이며, 작가이길 선택했고, 작가의 눈으로 세상에 깨어있기를 선택했다는 걸 알 때만 세상에 해야 할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아무 말도 아무 이야기도 소용없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 대한 염증과 체념으로, 세상은 이래 왔고 이럴 것이며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평생 커리어우먼으로 살 것 같았던 내가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고, 글은 밥벌이 수단으로만 쓰던 내가 그저 세상에 할 말이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어제는 오랜만에 소설책을 샀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리고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택이라는 것도.


브런치에서 글을 읽으면서, 때때로 끄적이면서 우리는 침묵하기보다는 말하기를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공유하고 사유하기로 했다는 것. 그러기에 우리의 기쁨도 슬픔도 우주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세계를 이루는 아름다운 색채가 됐다는 걸 느낀다. 그것이 검정색이든 빨간색이든 그 다채로움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름다운 색채에 하나의 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점 하나에 담기는 고뇌와 번민을 느끼며.



"인간은 날 때부터 왕이거나, 영주이거나, 신하이거나, 부자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발가벗고 가난하게 태어나며, 삶의 비참함, 슬픔, 병듦, 곤란과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겪게 마련인데, 종국에는 죽게 된다...우리 마음을 인간애로 이끌고 가는 것은 우리들이 공유하는 비참함이다...이와 같이 우리의 연약함 자체에서 우리의 덧없는 행복이 생겨난다."
장 자크 루소 <에밀>